산울림 스며든 '찻잔'… 깨지 못한 채 식어버리다

강렬한 빛은 언제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예상치 못한 2집의 빅히트 이후 한껏 인지도를 높였던 록밴드 <노고지리>는 '제2의 산울림'이란 평가를 받으며 음악적 한계에 직면했다. <노고지리> 2집에서 '산울림'의 향기가 진동했던 것은 김창완이 이들을 조련하고 음악적 방향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찻잔'이 수록된 2집의 제작사는 서라벌레코드이지만 실제 제작사는 대성음반이다. 대성음반은 당대의 메이저 레이블 서라벌에서 독립한 이흥주가 설립한 신생 제작사로 음악적 재능이 있는 젊은 뮤지션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실제로 대성음반을 통해 제작된 <산울림>, <로커스트>, <어금니와 송곳니>, <따로또같이>, <장끼들>, <벗님들>, <꾸러기들>, <도깨비>, 정태춘, 하덕규, 강인원, 김원중, 구자형, 조인숙, 인희 등 80년대의 숨겨진 보석 같은 음반들은 무수하다. 이처럼 대중성은 부족하지만 무궁무진한 음악적 감성과 재능을 지닌 뮤지션들이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산울림의 김창완이 대성음반의 이사로 재직하며 음반 기획과 프로듀서를 겸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창완은 1977년 발표한 산울림 1집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후 왕성한 창작력을 선보였다. 창훈, 창익 두 동생의 군 입대로 <산울림>은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였지만 김창완의 감성 창작 샘은 봇물 터지듯 넘쳐흘렀다. 김창완은 <노고지리> 2집에 수록된 전곡을 작사, 작곡했고 편곡에서도 산울림 브랜드의 전형적인 감성을 이식했다. 멤버 구성도 기타와 드럼으로 구성된 기본의 2인조에서 묵직한 저음과 리듬감을 지닌 베이시스트 홍성삼을 영입해 산울림과 같은 3인조 밴드로 재편하는 변화를 통해 풍성한 사운드를 구현했다. 앨범의 히트에 고무된 김창완은 이듬해인 1980년 발표한 산울림 6집에서 <노고지리> 버전보다 저음역대로 편곡한 '찻잔'과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을 직접 리메이크를 했다.

2집의 성공으로 활동 동력을 제공받은 밴드 <노고지리>는 1980년 3집에서 음악적 독립을 시도했다. B면 수록곡 '갈테야'와 전통민요 '새야새야'를 제외한 8곡이 한철호, 한철수 쌍둥이형제의 자작곡으로 구성했던 것. 강력하고 세련된 록 사운드를 들려준 3집의 최대 히트곡은 한국적 이미지가 넘쳐났던 '광대'다. 이 노래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지상파 음악방송프로그램 MBC <영11>, KBS <젊음의 행진>등을 통해 전파를 타며 80년대를 록 전성시대로 견인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은 록 밴드가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는 자체가 희귀한 시절이 되었지만 1980년대 초기는 <노고지리>, <송골매>, <무당>, <마그마>, <로커스트>등 실로 다양한 밴드들이 지금의 아이돌 역할을 해냈다.

1981년 인기밴드로 떠오른 <노고지리>는 대성음반을 떠나 현대음향과 지구레코드로 전속 사를 옮기며 그해에만 2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최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운드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던 당시의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4인조로 개편해 발표한 4집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산울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했던 <노고지리>는 음악적 독립이라는 빛을 획득했지만 폭넓은 지명도를 안겨준 명곡 '찻잔'의 그림자는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찻잔'에 드리워진 산울림의 잔향은 너무도 강력했다.

의욕적이고 뜨거웠던 음악적 변신에 비해 빠르게 식어버린 찻잔처럼 1981년에 발표된 2장의 앨범은 흥행실패로 이어졌다. 이후 쌍둥이 형제 듀오로 밴드를 재정비해 1985년까지 2장의 앨범을 발표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들국화>,<다섯 손가락>과 헤비메탈 3강 밴드에 밀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노고지리>에게 '찻잔'은 화려한 비상을 안겨준 빛이었고 결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 같은 그림자였다. '찻잔'은 반짝 인기 후 사라지기보단 자신들을 대표하는 노래를 넘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명곡이 되었다. 이 노래는 시대를 초월하는 서정적 감수성으로 세월의 저편에 봉인되어 있는 추억을 깨우는 동시에 편안한 휴식을 안겨주는 위무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현재, 쌍둥이 형제는 경기도 김포에서 라이브카페 <노고지리>를 운영하며 노래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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