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땡'시절에 무려 5분 20초의 감동

대중가요에서 멜로디와 가사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노래를 듣는 이와 만드는 이 모두 이 질문에 명확한 정답을 내놓기는 힘들 것이다. 멜로디와 가사는 사람에 따라 그 중요성에 대한 우선순위가 극명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사실 국내 대중음악계는 전통적으로 작곡에 비해 작사 분야는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조용필 8집은 작사가 양인자의 존재감을 각인시켰고 작사의 중요성에 대한 음악계의 인식에 일대 혁명적 전환을 이뤄낸 명반이다.

주옥같은 명곡들이 넘쳐나는 조용필 8집은 밀리언셀러를 기록했지만 의외로 탄생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장문으로 구성된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때문이다. 이 앨범에는 총 11곡이 수록되었다. 양인자는 김희갑의 5곡 외에도 임석호가 작곡한 '내 청춘의 빈잔'까지 수록곡의 절반이 넘는 무려 6곡의 노래가사를 썼다. 당대 유명 작곡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꿈꿨던 조용필과 의기투합한 그녀는 한 참의 시간이 지난 후, A4용지 절반에 가까운 분량의 가사를 내놓았다. 초유의 장문 가사에 고민스러웠던 김희갑은 고민 끝에 인트로 부분은 랩 스타일로 낭송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제강점기에도 대화식의 코믹송인 만요가 있긴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는 1992년 이전까지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랩 스타일의 대중가요는 생소했다. 장문의 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 역시 발표 당시에 가사가 지나치게 길어 음반사 실무진에서 '말도 안 되는 노래'라며 난색을 표했다. 조용필 역시 그렇게도 모질게 연습을 했지만 "너무 긴 가사 때문에 3~4년 동안은 모니터가 없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방송계에는 '3분 땡'이란 속어가 위세를 떨쳤다. 이 말은 대중가요의 러닝타임이 3분이 넘으면 방송하기에 부적격한 노래로 취급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70년대의 히트곡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3분 이내의 노래들이다. 그러니까 당시에 대중가요는 길어도 3분 30초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는 말이다. 방송을 자주 타야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대중가요의 특성상 무려 5분 20초의 대곡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당연 이 노래의 히트를 예상한 이는 제작사인 지구레코드에도 거의 없었다.

실제로 이 노래는 음반 제작회의에서 앨범 선곡에서 누락될 위기에 처했었다. 야심차게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김희갑-양인자 부부는 "마지막 트랙이라도 넣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실무진과 실랑이가 오갔을 정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녹음이 끝낸 후, 김희갑은 임정수대표에게 노래를 들려주었다. 직원 모두가 만류했던 분란의 곡을 직접 들은 임대표는 놀라는 표정으로 지으며 앨범 타이틀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내정했던 실무진의 반대 의견을 뒤엎고 깜짝 결정을 내렸다. "이걸 타이틀곡으로 하지. 조용필이라면 그냥 말하는 것도 상품가치가 있어." 조용필 8집 1면 2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전격적으로 타이틀곡으로 결정되었다. 결과 또한 파격이었다.

모두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앨범발매 직후 빅히트가 터진 이 음반을 주문하는 전국 레코드상들의 아우성은 요란했다. 방송사들은 '3분 땡' 관행을 스스로 깨며 대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비롯해 같은 앨범에 수록된 '허공', 바람이 전하는 말', '그 겨울의 찻집'등 무려 4곡의 노래를 동시다발적으로 수도 없이 틀어댔다. 록 뮤지션으로서 음악적 성취를 이뤄냈던 7집 이후 조용필은 8집 수록곡의 동시다발적 히트를 통해 수용 층을 더욱 확장시키며 '국민가수' 발전하는 밑거름을 마련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조-김-양 콤비가 합작한 수많은 명곡 중에서 자타가 공인한 가장 인상적인 노래로 자리매김 되었다. 이 노래는 1998년 탄자니아의 벤자민 월리엄 무가파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국인들에게 자국의 대표적인 산인 '킬라만자로'를 널리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감사패를 받았고 2001년에는 문화훈장까지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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