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인생' 담은 한국 포크의 숨겨진 걸작

1970년대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흔히 김민기, 한대수를 언급한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각광받은 싱어송라이터는 단연 이장희다. 그는 뮤지션, 방송인, 음반 제작자, 그리고 사업가로 다방면에 걸쳐 멀티플레이어적 재능을 과시했던 인물이다.

또한 음악적으로는 기타리스트 강근식과 포크와 록을 결합한 '포크록' 사운드로 한국 포크의 새 지평을 열었던 7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파워음악인이었다.

4세 때 천자문을 뗀 신동이었던 이장희는 가수의 떡잎이 보여서일까 울보로 유명했다. 서울중2학년 때 삼촌 친구인 용문고1학년생 조영남이 들려준 기타연주와 노래에 반했다.

이후 삼촌의 기타를 빌려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 등 500여곡의 가사를 줄줄 외웠을 정도로 탁월했던 음악성에 비해 노래실력은 친구들로부터 음치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대단치는 않았다.

이장희가 추구한 단순한 화음, 쉬운 멜로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박한 가사는 '컨트리&웨스턴음악의 신'이라는 행크 월리엄스의 영향이 지대했다.

연세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이장희는 고교 동창생 유종국의 소개로 의예과 보컬그룹 '휘닉스' 멤버였던 윤형주와 첫 대면을 한다. 이장희가 멜로디, 윤형주가 하이, 유종국이 베이스파트를 맡으며 연세대 남성포크트리오 '라이너스'를 결성했다.

몇 달 후 윤형주는 송창식과 포크듀엣 '트윈폴리오', 이장희는 '베가본드'라는 록밴드를 결성하며 각각 음악적 방향을 달리했다.

이장희는 서울 공대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던 중 친구들과 주먹다짐으로 눈을 다쳐 왼쪽 시력이 엉망이 돼버렸다. 현미경을 오래 봐야 하는 전공도 문제였지만 책조차 오래 볼 수 없게 되자 학교까지 중퇴해버릴 정도로 좌절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나간 곳은 음악친구들이 있는 통기타가수들의 아지트였던 저 유명한 음악감상실 '세시봉'. 그곳에서 음악동반자가 되는 홍대생 강근식을 만났다. 첫 만남부터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포크듀오를 결성, 명동 '코스모스'에서 무명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1969년 강근식의 군 입대로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허송세월을 히던 이장희를 측은하게 생각했던 홍대생 화가 친구 이두식은 화실운영을 제의했다. 이장희의 히트곡 대부분은 이 시절에 탄생되었을 정도로 창작의 봇물이 터졌다.

'겨울이야기'는 외기러기 상태였던 당시의 우울했던 자신의 인생을 소설가 최인호의 도움으로 만들어본 토크 송이다. 송창식의 히트곡으로 널리 알려진 '애인'과 '비의 나그네'도 이때 작곡된 불후의 명곡들이다.

이장희의 음악적 뿌리는 포크지만 록 성향의 뮤지션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은 국내 최초로 무그 신디사이저 음악의 새장을 활짝 열어젖힌 새롭고 신비로운 사운드로 구현해 이장희를 정상급 가수 반열에 올려놓은 대부분의 히트곡이 망라된 3집 때문이다.

1973년에 발표된 이장희의 2집은 3집(1973년) 이전에 발표된 포크의 원형질을 담은 숨겨진 노래들이 집결해 있는 한국포크의 숨겨진 걸작이다. 70년대의 전설적인 포크 시리즈 음반인 유니버샬레코드의 '영 페스티발' 4집으로 장식한 이 앨범들은 그동안 실물구경이 쉽지 않았던 음반들이다. 생소한 무그 음악과 소박한 통기타 반주로 구성된 앨범 수록곡들은 그야말로 청년 이장희의 순수했던 데뷔 초창기 음악을 진수가 담겨있다.

이장희가 발표한 수많은 음반 중 가장 희귀한 앨범은 콧수염을 자른 준수한 청년 이장희의 사진이 장식된 '영 페스티발 4집' 그러니까 그의 2집이다. 총 7곡 중 이장희의 창작곡이 5곡이고 조동진의 곡과 번안곡이 한 곡 수록되었다.

이 앨범은 전자음이 배제된 순수 포크의 결정체에 가깝다. '헝클어진 내 머리', 송창식이 훗날 히트시킨 '애인'과 '비의 나그네' 그리고 조동진 곡 '마지막 노래', 번안곡 '내사랑 제인(Lady Jane)', 무려 11분에 달하는 한국 포크의 숨겨진 명곡 '꿈이야기'와 토크송 '겨울이야기' 그리고 '그대여 눈을 감아요'까지 이 앨범은 실로 명곡의 성찬이다. 특히 대중가요 가사에 언문일치를 도입한 최초의 토크 송으로 기록되어 있는 그의 첫 데뷔곡 '겨울이야기'가 이 앨범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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