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슬로프 하나 전세 낸 기분영화 '러브레터'의 감동 오버랩질주 후엔 뜨끈한 노천 온천욕 '환상'

눈 쌓인 노천탕에서 음미하는 '백색의 겨울'은 한 편의 훈훈한 영화처럼 포근하다. 영화 '러브레터'의 와타나베 히로코가 "오겡키데스카(잘 지내고 있나요)"를 외쳤던 설원이 바로 홋카이도의 한 스키장이었다. 사연 가득한 일본 북부 지방의 스키장들은 눈밭 질주 뒤 뜨끈한 노천 온천욕이 곁들여져 더욱 매력적이다.

스키, 보드 마니아들이라면 늦겨울 일본으로 눈을 돌려도 좋다. 국내 '콩나물 슬로프'와 달리 일본에서의 스키는 여유롭게 라이딩을 즐기는 '대통령 스키'와 눈가루 흩날리는 '파우더 스키'가 실현된다.

홋카이도의 대부분 스키장은 4월까지 문을 연다. 후라노, 사호로, 루스츠 등은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스키장이다.

홋카이도 지역은 한 해 평균 5m 이상 눈이 쏟아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수북이 눈이 쌓여 있는 식이다. 영화 '러브레터'와 '철도원'의 배경이 된 홋카이도의 설국에서 이별과 만남의 사연은 더욱 무르익는다.

스키장에는 천연 노천온천이 마련돼 있어 라이딩으로 노곤해진 몸을 따뜻하게 달랜다. 북쪽으로 겨울 시야를 돌릴수록 눈과 사연과 스키장은 넘쳐난다.

사호로 슬로프 설경
자작나무, 삼나무 숲 사이를 달리다

영화 '러브레터'의 상념을 간직한 채 설국 '사호로'로 출발한다. 미나미 치토세역에서 사호로 산이 위치한 신도쿠역까지 1시간30분. 차창 밖에는 폭설이 휘몰아친다. 겨울만 되면 홋카이도의 기차들은 자연스럽게 '눈꽃열차'가 된다.

신도쿠역에서 오비히로 거리를 따라 설경속으로 15분 접어들면 사호로 산을 만난다. 홋카이도의 상징도시인 삿포로에서 북동쪽으로 150㎞,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사호로 산(1,059m) 전체가 온통 스키천국이다. 가장 가까운 마을인 가리가치 고겐이 대낮에도 한산한 반면 사호로 산 일대는 겨울이면 스키 마니아들로 요동친다.

사호로 산은 커다란 백설기에 수십만 개의 양초를 꽂아 놓은 듯하다. 산 전체를 뒤덮은 눈밭에 20∼30m 높이의 자작나무 삼나무가 동화 속 세상을 만들어 낸다.

그 나무들이 경계를 이루며 스키장이 조성됐다. 총 16개의 슬로프 중 산 정상에서 시작되는 가장 긴 슬로프는 3㎞에 다다른다.

설국을 연결하는 마을과 도로
이곳에서는 '눈보라 스키' '대통령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일주일에 6일은 눈이 내린다. 바람 부는 날이 많아 눈발 속을 헤치며 스키를 타야 한다.

외부와 단절된 스키장에서는 대낮에도 슬로프 하나를 전세 낸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아무도 없는 눈밭에서 "오겡키데스카!(잘 지내고 있나요)"를 외쳐 본다.영화 '러브레터'의 감동이 순간 오버랩된다.

작은 숲속마을이 어우러진 후라노

한여름 라벤다 꽃밭으로 유명한 후라노 역시 겨울이면 온 세상이 눈밭으로 변신한다. 홋카이도의 정중앙에 위치한 후라노는 인구 2만 6,000명의 작은 스키타운이지만 스노, 스노보드 월드컵대회를 개최했으며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을 배출했을 정도로 명성 높다.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후라노 스키장의 자연설은 한층 더 가볍고 푹신푹신하다. 코스는 후라노코스와 북쪽 봉우리코스로 크게 나뉘는데 24개의 슬로프가 지그재그로 형성돼 있다.

스키장 옆 노천온천
후라노 시내와 오유카야마 연봉을 바라보며 질주하는 파노라마 슬로프 외에도 설경을 감상하며 자작나무 숲을 통과하는 슬로프 등이 친절하게 안배돼 있다.

후라노 코스는 쇼핑과 산책이 가능한 따뜻한 공간으로 이어진다. '닝구르 테라스'라는 작은 숲속 마을은 통나무 오두막집마다 전통 수공예품을 만들어낸다.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명소로 인기 높으며 밤의 정취가 더욱 독특하다. 후라노는 와인가게, 치즈공방, 과자가게 등을 둘러보는 길목 역시 아름다운 고장이다.

루스츠 리조트는 홋카이도 스키장 중 최대 규모다. 봉우리 3개가 이어져 스키장이 됐다. '루스츠'는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말로 '계곡과 계곡 사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쪽 산에서 스키를 타다 지치면 곤돌라를 타고 국도를 가로질러 다른 산으로 옮겨갈 수 있다.

슬로프만 37개, 슬로프의 총 연장 길이가 42㎞. 마라톤을 완주한다는 '즐거운 각오'를 해야 한다. 이곳의 한겨울 적설량은 5m를 훌쩍 뛰어 넘는다. 쌓인 눈이 채 다져지기도 전에 눈이 또 내린다. 눈밭은 4월 중순까지 유지되며 스키 마니아들에게는 '봄 스키'의 최적격지로 소문이 나 있다.

루스츠에서는 자작나무가 숲을 덮고 있는 설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넉넉해진다. 특히 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아름답다. 넓은 도야호의 한겨울 정취, 그리고 후지산의 모습을 닮아 '리틀 후지'로 불리는 요테이산의 설경은 빼어나다. 리조트에서는 시베리안 허스키가 끄는 개썰매, 빠른 스피드의 스노모빌도 즐길 수 있다.

후라노 스키장의 오두막
홋카이도에 왔다면 관문인 삿포로를 그냥 스쳐 지날 수 없다. 매년 2월 열리는 삿포로 눈축제의 여운은 전 시내를 감싼다.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시내 일대에 세워지는 얼음 동상과 눈 속에서 피어 오르는 야경들만 감상해도 아련한 추억으로 새겨진다.

●여행메모

가는 길=인천에서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으로 직항편이 운항 중이다. 홋카이도 내의 모든 열차는 JR패스로 탑승이 가능하며 역과 연계된 렌터카를 이용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역에는 한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있으며 작은 호텔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음식=홋카이도의 관문 도시인 삿포로 등은 라면, 맥주로 유명한 곳이다. 라면골목인 라멘요코초에서 맥주가 곁들여진 다양한 라면을 맛볼 수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테마의 라면 거리가 문을 열었다. 가격은 다소 비싸나 이곳 명물인 털게 요리를 맛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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