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박한 창법으로 사랑에 실패한 영혼 위로

장어집을 지나며 멤버들이 직접 작명했다는 <전기뱀장어>. 흔하디흔한 외래어가 아니면서도 강한 임팩트를 안겨주는 밴드의 이름부터 찌릿한 뭔가가 느껴진다.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시키고 무한 상상력을 안겨주는 그로테스크한 음반 커버아트는 또 어떤가! <전기뱀장어>의 1집은 마치 <언니네이발관> 1집 '비둘기는 하늘의 쥐'가 나왔을 때 느꼈던 감흥을 복원시킨다. 젊음이 생동하고 상큼하고 친숙한 이들의 사운드는 인상적인 팀 명이나 독특한 재킷 이미지처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전기뱀장어>는 지난해 무한 주목을 받은 루키밴드 중 하나다. 진심이 담긴 톡톡 튀는 가사와 수려한 멜로디는 "검정치마 이후 최고의 신인"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우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신인 뮤지션 육성지원 프로젝트 'K-루키즈' 연말결선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EBS '이달의 헬로루키', KT&G '밴드 인큐베이팅 5기',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에도 잇따라 선정되었다.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도 최강 루키밴드 <버스커버스커>와 '올해의 신인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이들이다.

2009년에 결성된 <전기뱀장어>는 밴드의 양 축을 구성한 김예슬(기타), 황인경(보컬/기타)을 중심으로 김나연(베이스)과 김민혁(드럼)으로 구성된 4인조 혼성 모던 록밴드다. 2011년 첫 EP<충전> 발표 후, 멤버 교체의 진통을 겪은 이들은 2012년 3월, 두 번째 EP <최신유행>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EP들은 밴드의 존재와 정체성을 알렸지만 구성은 다소 산만했다. 그래서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지금과 같은 성과를 예상한 대중은 드물었지만 중독성 강한 웰메이드 음악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정규 1집에는 총 13곡이 담겼다. 2번째 EP에 수록되어 존재감을 드높인 '송곳니'는 타이틀곡이다. '최신유행', '거친 참치들', '스테이크'등 이전 EP에 수록된 4곡을 다시 녹음했고, 공연에서 이미 선보였던 '화살표'와 '별똥별', '질투', '최고의 연애', '수중분만'등 신곡 8곡을 더했다. 자체 제작한 두 장의 EP에 비해 정규 1집은 사운드의 질감과 구성이 한결 매끄러워졌다. 이유는 선명하다. 소속레이블인 사운드홀릭의 대표 밴드인 <자우림>의 기타리스트 김선균이 프로듀싱을, 베이시스트 김진만이 믹싱에 참여해 설익은 이들의 음악에 연륜이라는 무게감을 덧칠했기 때문이다.

정규앨범은 세련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나 화려한 편곡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간결한 밴드 사운드로 집약했다. 우직하고 설익은 사운드는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재치 넘치는 가사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극복의 미학을 발휘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스트레이트한 밴드 사운드는 수려한 멜로디로 무장되어 자신들의 차별점을 확실하게 구현한다. 악기소리와 보컬의 적적한 밸런스 균형도 좋다. 무엇보다 요즘 유행하는 내지르기 식의 샤우팅이 아닌 힘을 빼고 순박하게 다가오는 창법은 사랑에 실패한 영혼에게 위로의 기능을 발휘한다.

앨범 타이틀은 '최고의 연애'다. 대중음악에서 남녀상열지사는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의 가사들을 보면 내가 중심이 된 찌질한 일상을 언급하는 노래들로 트렌드를 이룬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이들의 음악은 동년배들에겐 유쾌한 감성으로 30대에게는 질풍노도의 시절을 떠올리는 솔직하고 가벼운 잡담과도 같다.

'최고의 연애'는 과연 어떤 연애일까? 내면의 애틋함을 담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최고의 연애'로 규정한 것은 인스턴트식 사랑이 넘쳐나는 가벼운 시대적 정서를 뒤엎는 일종의 전복이다.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에 살아갈 동력을 제공하는 희망의 패러독스가 될 수도 있다. 이들이 말하는 불타는 청춘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진심을 담은 수줍은 고백은 곧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의 지향점을 의미한다. 궁상스런 젊은 세대의 일상을 변화무쌍한 감정의 변이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들의 음악이 앞으로 어떻게 채색되어 갈 것인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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