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가사가 술술~" … 5개월 만에 앨범 2장

불과 5개월이란 시간 동안 프로젝트나 싱글이 아닌 전혀 다른 질감의 정규앨범을 2장이나 발표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뮤지션이 있다. 바로 정차식이다. 그가 만든 두 장의 앨범이 한국대중음악계에 불어넣은 기운은 범상치 않다.

단기간에 연작으로 발표된 2집 '격동하는 현재사'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주위에서도 "1집의 좋은 분위기를 깨려 하느냐"고 말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좋은 평가보다 자신의 음악적 배설이 더 중요했다. 1집에서 각인된 황망한 이미지를 보기 좋게 깨고 싶었던 것.

1집 '황망한 사내'가 욕망을 거세하려 했다면 2집 '격동하는 현재사'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포로가 된 30대 후반의 남자를 표현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즐겁게 놀고 싶고, 예쁜 여자도 만나고 싶은 사내의 욕망이 격동하는 거죠. 나처럼 30대 후반의 남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낭만을 담고 싶었습니다. 1집에서는 쓸쓸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고 2집에선 걸쭉한 성인가요의 느낌을 내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뽕기'가 충만한 앨범이에요. '옷깃을 세우고' '삼거리 오뎅탕집' 같은 곡에서는 대놓고 뽕기를 발산했죠." (웃음)

2집 앨범엔 '기호 2번. 정차식'의 선거 포스터가 아롱새겨져 있다. 일단 진정성보다는 키치적인 이미지다. 그의 포스터엔 소속 정당도 선거판에 나온 정치꾼들처럼 근사한 공약들도 없다. 오직 욕망을 갈망하는 사내 '정차식'만이 존재한다.

그는 2집을 통해 시대를 역행하는 실소 가득한 행보가 될지라도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투쟁하며 고뇌하는 진정한 사내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기호 2번이라는 황망한 출사표를 던졌고 보기 좋게 당선이 되었다. 2011년 내놓은 솔로 1집은 부문 후보에만 올랐지만 2집은 올해 제10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록 최우수 앨범과 노래부문을 싹쓸이하며 2관왕에 등극했다.

1집 '황망한 사내' 발표 후 그는 몸이 아팠다. 첫 솔로독집 '텐고'를 발표하고 드라마 음악작업 후 곧바로 1집 작업에 들어간 무리한 강행군을 펼쳤기 때문. 사실 2집은 1집을 발표한 2011년 12월에 연속적으로 발표하려 했다. EBS TV 스페이스 공감 공연 때 관객들과 했던 약속 때문이다. 하지만 피로감이 극심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한 달이라는 기간을 보냈다. 2집은 1집이 획득한 평단의 호평에 대한 '나는 이거 말고 다른 것도 할 수 있다는'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음악적 보이콧이었다.

정차식은 "멜로디를 데모로 만들어놓으면 그냥 가사가 술술 나온다. 우연처럼 내가 어떻게 쓴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쏟아져 나온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24살 때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이 있다. 당선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는 평상시에도 시어를 되뇌고 가사가 떠오를 때 그 자리에서 받아 적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황망한 사내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2집에서 더 황망해졌다. 재미있는 것은 극한의 서정성과 텅 빈 공간감이 강력했던 1집과는 달리 2집에서는 전혀 이질적인 댄서블한 리듬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전작보다 듣기에 훨씬 수월하다.

2집 '격동하는 현재사'는 오장육부를 확 드러내는 솔직함과 해학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성을 구현한 우리 시대의 명반이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2012년에 발표된 정차식의 2집은 장르의 쏠림과 자본의 무소불위한 권력이 더욱 공고해진 대중음악계에 뮤지션의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증명했다. 자조적인 회한으로 가득 찼던 1집과 달리 2집은 수컷 냄새 가득한 날것 그대로의 욕망으로 꿈틀거린다. 질펀하고 화끈하게 한 판 놀아 보기를 염원하면서도 고뇌하는 모습, 비관적인 정서를 드러낸 가사도 적잖이 별스럽다. 정차식의 음악이 차별되는 이유다.

그의 음악은 한국대중음악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낯설고 새롭다. 이질적인 장르가 다양한 형태로 뒤섞이고 대폿집 젓가락 장단과 서구의 리듬까지 사이좋게 공존하며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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