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정훈 '철학을 켜다'에리히 프롬·마르크스 등 유명 철학자 30여명취재·인터뷰·회고록 등 독특한 형식으로 서술독자에 읽는 재미 선사

에리히 프롬
소크라테스를 취재하고, 를 인터뷰하고,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탐방한 기록. 마키아벨리가 청년에게 조언한 말과 엥겔스가 들려주는 마르크스의 삶, 버틀런드 러셀의 마지막 에세이까지 한 번에 볼 수 있는 책이 나왔다.

표정훈의 '철학을 켜다'는 독특하고 기발한 형식의 책이다. 일반적인 의미의 철학사, 인물로 보는 철학사가 아닌 그냥 철학자에 관한 책이다. 그 철학자들을 저자는 일반적인 서술 형식 외에 인물 자신의 목소리를 빌린 회고록이나 편지, 취재기, 인터뷰, 에세이 등의 형식으로 서술한다. 인물 각각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독자들이 덜 지루하고 읽는 재미를 느끼게끔, 글 형식을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는 '철학을 켜다'라는 의미를 라디오 방송의 'ON AIR'에서 따왔다고 한다. 대본의 틀에 따르되, 진행자와 출연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철학자의 삶과 텍스트의 큰 틀을 따르되 비교적 자유로운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 우리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켜는 것. 철학의 역사는 그러한 이야기를 켜기 위한 실마리"라고 설명한다.

이 책에는 30여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하면 떠오르는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취재원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70세의 나이로 아테네 정치문제에 연루돼 사형판결을 받은 재판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 곳에 있는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재판과정과 분위기를 전하고, 방청객들의 입을 빌리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통해 독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게 했다. 플라톤이 저술한 철학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엿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스 철학자이며 유물론자이자 에피쿠로스학파의 시조인 '에피쿠로스'편은 "나의 벗이여!"로 시작한다. 명예욕ㆍ금전욕ㆍ음욕(淫慾)이 아닌 빵과 물만 마시는 소박한 식사에 만족하고, 헛된 미신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우애를 최고의 기쁨으로 삼는 쾌락주의를 주창한 에피쿠로스가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했다.

인간의 정신에 대한 프로이트의 견해와 사회경제적 조건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통합하는 새로운 사회심리학의 문을 연 ''은 서면 인터뷰 형식이다. '분석적 사회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자유로부터의 도피'(1941), '사랑의 기술'(1956), '소유냐 존재냐'(1976)의 작가인 그에게는 10가지 질문을 던지고 소유와 자유에 관해 이야기를 듣는다.

저자는 제임스 러브록, 맬컴 엑스, 마틴 루서 킹, 마르코스 부사령관 등 현대의 활동가까지 다룬 이유에 대해서는 "이른바 '전문적인' 철학 영역의 바깥에서 실천하고 사고했던 인물들에게 감히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싶었다"고 밝힌다.

표정훈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와 한양대 기초융합교육원 특임교수로 일하며 동서양 고전을 강의한다. 저서로는 '탐서주의자의 책',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하룻밤에 읽는 동양 사상', 번역서로는 '중국의 자유 전통', '센스 오브 원더' 등이 있다. 을유문화사 펴냄. 1만5,000원.



정용운기자 sadzoo@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