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나미 리쓰코 '고전이 된 삶''사기' 표출한 사마천, '적벽부' 남긴 소동파조조 조롱했던 공융 등 대표 문장가 10인 다뤄

사진/연합뉴스
재밌다. 중국 문장가들의 삶이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들 못지않게 책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신간 '고전이 된 삶'은 중국 전한부터 청대까지 2,000년에 걸쳐 주목할 만한 중국 문장가 열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시대에 맞서 자기를 표현하려고 했던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삼국지' 연구와 '삼국지연의' 번역으로 유명한 중국 문학 연구자인 이나미 리쓰코가 그들의 삶의 자취를 더듬어 쓴 책이 원작이다.

동양철학자 김태완이 다시 편역을 맡아 2001년 국내 출간한 '중국 문장가 열전'을 다듬어 1부 '열전'으로 실었다. 새로 추가된 2부 '작품'은 '열전'에 소개된 문장가들의 명문을 뽑아서 한문 원문을 번역하거나 요약정리하고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저자는 사마천(전한), 공융(후한), 혜강(위), 안지추(남북조)를 '위기를 살아간 문인'으로, 소동파(북송), 양유정(원), 정판교(청)를 '쾌락을 추구한 문인'으로, 원진(당), 탕현조(명), 오경재(청)를 '이야기 세계의 창조자'로 분류했다.

남성 기능을 제거하는 궁형이라는 굴욕과 분노를 방대한 역사서 '사기'로 표출한 사마천, 유형의 몸임에도 삶을 즐기며 '적벽부' 등 2,800수나 되는 시와 엄청난 양의 산문과 수많은 걸작을 남긴 소동파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읽힌다.

연가ㆍ애가ㆍ연애 이야기와 같은 이성애를 정면으로 거론하는 것을 기피하던 당시 중국의 문학적 전통 아래에서 감정에 몸을 맡기고 에로스를 노래한 인물, 원진도 흥미롭다. 그는 중국 최초의 연애소설 작가이자, 자신의 연애 체험을 근거로 쓴 단편소설 '앵앵전'의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

'삼국지의 영웅' 조조가 환관의 양자 조숭의 아들인 것을 두고두고 조롱했던 '간 큰 남자' 공융도 만날 수 있다. 난세에 살면서 대담무쌍하게 조조와 대립하다 처형당한 그의 독설과 풍자, 촌철살인에 얽힌 일화도 소개한다.

저자 이나미 리쓰코는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시대를 살고, 뛰어난 작품을 창작한 인물을 골랐다"며, "역사 시문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문장가 열 사람의 모습을 열전 형식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중국 문학의 변천상을 구체적으로 더듬어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쉽게 접하기 힘든 명문들로 엮은 2부 '작품'도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사기'의 전체 서문이자 사마천 자신의 열전인 '태사공자서', 중국 최초의 미학논문이자 '소리에는 본디 슬픔과 기쁨이 없다'는 혜강의 예술철학을 담은 '성무애락론', 필화 사건으로 황주에 유배되었던 소동파가 적벽을 노닐다가 지은 걸작 '적벽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원진의 장편시 '연창궁사', 권위라는 권위는 모두 부정하고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던 반골 희곡작가 탕현조가 쓴 중국판 '사랑과 영혼'인 '모란정환혼기' 등이 실려 있다. 메멘토 펴냄. 2만5,000원.



정용운기자 sadzo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