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최이철 '음악신동' … '아이들 음악'의 뿌리

옛날 옛적, 한국대중음악계에 프로 뮤지션들이 한순간에 사라진 시절이 있었다. '긴급조치 9호' 발동 이후 세상이 숨죽이고 있던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찾아온 무주공산 시대가 그때이다. 1977년 시작된 대학생가요제를 통해 양산된 캠퍼스밴드들의 풋풋했지만 설익은 아마추어리즘의 아우성이 가득했던 당시, 진정한 프로의 음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밴드가 있었다. 록밴드 '사랑과 평화'다.

요즘 유행하는 힙합과 R&B 그리고 현저하게 힘이 빠졌지만 한때 엄청나게 각광받으며 주류음악계에 트렌드를 형성했던 '소몰이 창법'은 모두 흑인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펑키 사운드의 지존인 록밴드 '사랑과 평화' 또한 흑인음악 특유의 리듬감으로 무장해 당대 젊은이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클래식에 록을 접목하는 음악실험으로 1978년 당시 뜨거운 찬반 논쟁까지 불러왔다.

가수 이장희가 기획한 '사랑과 평화'는 갑자기 탄생된 밴드가 아니다. 그 전신은 1974년 결성된 록밴드 '서울나그네'다. 하지만 진짜 뿌리를 찾기 위해선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현재 한국대중음악의 주류음악계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자는 K-POP을 주도하고 있는 걸그룹, 보이그룹으로 대변되는 '아이돌' 가수들이다. 아이돌 가수와 음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90년대 중반 대형기획사들이 태동하며 연습생을 선발해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러나 한국대중음악계에서 '아이돌'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71년 최이철이 결성한 틴에이저 록밴드 '아이들(IDOL)'이 최초가 아닐까 생각한다. 록밴드 '아이들' 음반은 일반대중에게는 존재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 록 마니아라면 누구나 수집 아이템으로 군침을 흘려온 한국 록 음반사에 숨겨진 희귀음반이다. 또한 국내 최초로 'IDOL'이란 표기가 등장하는 음반이기에 한국 '아이돌 음악'의 뿌리 찾기에 더없이 소중한 사료다.

최이철은 17세 때 음악친구인 허경을 비롯해 친구 4명과 밴드를 결성했다. 1969년 고병희(태양음반 대표)의 주선으로 미8군 프로덕션 유니버샬 소속으로 오디션을 통과해 8군 무대에 섰다. 1시간짜리 패키지 쇼인 '데니스 쇼'는 데뷔 무대였다.

최이철과 멤버들은 당대의 인기 만화 캐릭터인 개구쟁이 데니스로 분장해 미군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6개월 후 연주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화양'으로 전속 사를 옮겨 당시 천재소녀로 미8군 무대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박활란 쇼'의 백 밴드가 되었다.

미 8군 무대에서 '음악 신동'이란 칭찬을 들으며 미8군 AFKN방송에도 출연했던 최이철은 밴드 '아이들' 시절, 웨스 몽고메리의 음악을 접하면서 리듬이 좋은 흑인음악에 빠져들었다. 당시 칙 코리아, AWB 등의 음악에 충격을 받은 그는 이내 흑인 펑키 리듬의 추종자가 됐다.

1970년 미 8군 무대를 떠나 서울 명동의 '오비스 캐빈', '닐바나' 등 수많은 클럽무대에서 활동할 때, 재즈 드러머 김대환의 주선으로 6인조 록밴드 '아이들(IDOL)'을 정식으로 결성해 역사적인 첫 음반을 발표했다. 1971년 2월의 일이다.

최이철은 "솔직히 데뷔 시절엔 음악이 뭔지도 몰랐다. 지금은 변했지만 옛날에는 트로트나 포크송을 아주 싫어했던 특이한 아이였다. 요즘 이 음반을 다시 들어보니 좀 민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 '아이들' 음반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음반이었다."고 회고한다.

희귀 아이템으로 명성이 자자한 록밴드 '아이들'의 음반은 사실 본격적인 흑인 펑키 사운드로 무장한 앨범은 아니다. 창작곡과 외국 히트 팝송,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수록돼있다.

그런 까닭에 이 음반은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그 사료적 가치로 무게중심을 이동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시작이 중요하듯 한국 록의 대중화를 꽃피웠던 '사랑과 평화'는 이 앨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