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극과 극 달리는 은유적 가사 압권

1997년에 결성된 모던록밴드 '허클베리핀'은 분노가 폭발하는 것 같은 파괴적이고 강력한 사운드만으로도 데뷔 시절부터 차별적이었다. 거기에다 삶의 허망함과 분노를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멜로디로 표현한 이들의 음악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지만 특히 1998년 발표된 1집 '18일의 수요일'은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등극한 명반으로 회자된다.

정규 5집에서 원칙이 깨어지긴 했지만 허클베리핀에게는 앨범 타이틀은 한글, 수록곡 수는 11곡, 재킷은 노란색만을 사용하는 일관된 원칙이 있었다. 앨범 바탕을 노란색으로 쓰는 이유에 대해 허클베리핀은 '원래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말한다. 그러나 사실 노란색은 병아리의 이미지에서 느껴지듯 따뜻함과 생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광기를 상징하는 색이라는 점에서 허클베리핀 앨범의 음악적 질감과 일맥상통한다.

앨범 타이틀을 한글로 쓰는 이유에 대해 리더 이기용은 '엄마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다소 엉뚱하고 순진한 이유를 댄다. 실제로 그는 현학적인 어려운 말 보다는 일상의 언어로 소통 가능한 표현을 선호하는 뮤지션이다.

최근 '대중음악SOUND'에서 음악전문가 36명의 추천 작업을 통해 진행한 '한국인디음악 명곡 100'에는 이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 '보도블럭'과 '불을 지르는 아이' 2곡이 선정됐다. 이처럼 많은 음악관계자들이 공감하고 있을 정도로 탁월한 이 앨범에는 이전의 한국대중음악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치열한 긴장감과 격렬한 허탈감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다.

모던록밴드 허클베리핀 1집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 있던 1998년, 즉 20세기가 저물어가던 세기말에 탄생한 걸작이다. 앨범이 발표된 당시는 온 나라를 휘청거리게 했던 IMF로 인해 부조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난무했던 혼돈스런 때였다. 문화적으로도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며 패러다임 자체에 엄청난 변화가 가속화된 시기였다.

가사를 쓴 이기용은 혼돈스런 아날로그 시대의 마지막과 큰 변화를 동반하며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디지털 시대 초창기의 틈바구니에서 불안감을 느낀 소위 '낀 세대'라 할 수 있다. 당시 동시대를 살았던 대중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21C 밀레니엄 시대에 대한 희망이 공존했을 것이다.

한국의 인디음악 명곡으로 선정된 '보도블럭'과 '불을 지르는 아이'는 세기말의 한국대중이 품었던 불안, 슬픔, 체념, 분노의 심리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라는 극과 극을 내달리는 감성을 은유적 가사와 완성도 높은 철학적 음악으로 들려줬다.

특히 타이틀곡 '보도블럭'은 기발하면서도 감정의 극과 극을 내달리는 은유적인 가사가 압권이다. 별다른 메시지도 없이 외계어만 난무하는 초딩 수준의 요즘 노래 가사와는 질감부터가 차별적이다.

'보도블럭'이 비트 강한 수많은 명곡들이 포진한 이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배치한 것은 이유가 있다. 세기말적 상황에서 야기된 불안과 분노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때려 부수는 펑크적 표현이 효과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시 이기용 자신이 품고 있던 복잡한 감성을 모두 담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했던 자신의 복잡한 감성을 단순히 밖으로 내지르는 일방적 질주가 아닌 내적인 폭발을 통해 불안하고 쓸쓸한 정서까지 표출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핵심적 감정을 담았지만 자기 분열적이고 세기말적인 쓸쓸한 정서가 돋보이는 '보도블럭'이 타이틀곡으로 정해진 것은 음악적으로 꽤나 적절해 보인다. 사실 '보도블럭'이란 제목은 이기용이 1968년에 일어난 프랑스의 사회주의 혁명인 '6.8혁명'을 다룬 영어 원서를 읽다 발견한 'beneath the paving stone beach'란 짧은 문장에서 나왔다. 해당 문장에서 영감을 얻은 이기용은 이를 모티브로 문장을 완성시켜 기발한 가사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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