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화국 시절 가위질됐던 명곡들, 30년 만에 부활

무당은 한국 최초로 헤비메탈 사운드를 표방했던 전설적인 록밴드다. 1980년 팝 아이돌 가수 레이프 케럿의 내한공연 때 세션밴드로 귀국해 선보였던 그들의 강력한 사운드는 80년대가 록 전성시대로 채색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 같았다.

기대감 속에 발표된 무당의 정규 1집은 헤비메탈 밴드의 진수를 느끼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노래의 원형을 가차 없이 훼손시킨 심의 제도와 상업성을 최우선에 둔 국내 음반 제작환경 그리고 열악한 녹음환경은 그들이 라이브 무대에서 구현했던 헤비메탈 록 사운드를 제대로 재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파워풀한 헤비메탈 사운드는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포성이었다.

록밴드 무당이 최근 성황리에 열렸던 제3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컴백공연과 더불어 미니앨범 'PAST&FUTURE VOL.1'을 발표하며 돌아왔다. 1983년 2집 발표 이후 무려 30년 만의 귀환이다.

신보에는 1, 2집 발표 때 심의에 걸려 수록할 수 없었던 2곡과 제목과 가사가 강제로 수정되어 왜곡된 형태로 발표되었던 2곡을 원형 그대로 복원한 4곡이 실렸다. 모든 곡은 이번에 다시 녹음했다. 앞으로 금지의 상처가 선명한 8곡과 신곡 8곡을 더해 4집까지 미니 앨범형태로 연속적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군사정권하에서 정상적인 음악활동을 할 수 없었던 리더 최우섭은 "가슴에 맺힌 한이 많지만 게을러서 그동안 음반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풀이 삼아 30년 만에 신보를 발표하며 돌아왔다"고 말한다.

무당의 컴백앨범은 'MD BAND'로 밴드명이 명기되어 있다. 군사정권에 의해 잃어버렸던 원래 이름을 복원시켰기 때문이다. 원래 무당의 밴드명은 영어 'MAGIC DANCE'다. 이들이 미국에서 귀국했을 당시는 밴드 이름과 노래 제목까지 영어로 사용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니언스'가 '양파들', '바니걸스'가 '토끼소녀'라고 활동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래서 국내 활동을 위해 미국 버클리대 마이크교수가 "한국의 무당은 춤 잘 추고 노래 잘하고 나중에 작두까지 타버리는 만능 연예인"이라며 추천한 이니셜 MD에 맞는 '무당'으로 밴드 이름을 결정했었다.

80년대 활동 당시, 레이프 가렛과 무당은 정동 MBC TV에서 마련한 특집프로에 출연했다. 방송에서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디스토션 사운드'를 뿜어대자 "기타소리가 이상하다"며 도중에 연주를 끊어버리는 사고가 3번이나 발생했다. 당시 방송관계자들은 마샬 앰프의 찌그러지는 소리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던 것.

무당의 음악은 신선했지만 국내 방송에서 수용하기엔 너무 앞선 음악이었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한 '무당'의 헤비메탈 사운드는 언론에 소개되며 소녀 팬들의 열광적 반응 속에 내한공연은 대성공을 거뒀다.

공연 후 에너지 넘치는 파워풀한 사운드를 선보인 무당에게 오아시스 레코드 석광인 문예부장이 관심을 보이며 찾아왔다. 처음 레이프 가렛과 무당의 음반이 동시에 기획되었다. 하지만 레이프 가렛 측의 반대로 무당의 음반만 제작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생겼다. 밴드 멤버들이 비자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홀로 남아 난감했던 리더 최우섭은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이중산과 베이스 박찬용, 드럼 황종수를 수소문해 녹음작업에 들어갔다.

음반제작은 난항이었다. 급조한 멤버들로 헤비메탈 사운드를 구현하기엔 무리였고 무엇보다 심의에 넣었던 곡 중 '프리랜서', '게임 오버', '투 레잇(때늦은 후회)', '슈퍼스타' 등 무려 8곡이 탈락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던 것.

당시는 5공화국의 출범으로 매일같이 데모가 벌어졌고 계엄령으로 서슬이 시퍼렇게 시절이다. 곡 심의 때 보안사직원이 "'때 늦은 후회'는 뭘 의미하는 것인가? '슈퍼스타'는 너무 야하다"고 하는 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형무소 안의 스토리를 담은 '춤추는 푸른 잎(인사이드 록킹 아웃)'의 '푸른 잎'은 사실 죄수복을 의미했던 노래. 당연히 탈락이 되었지만 문제가 되는 가사부분을 대폭 수정하는 가위질 끝에 통과를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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