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구림 초대전 '잘 알지도 못하면서'한국 1세대 전위예술가 생애 첫 미술관 개인전1960~70년대 실험작품… 유실·미공개 작품들 선봬한국 최초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 등 눈길

'공간구조'
지난 15일 서울시립미술관(SeMA), 백발에 꽁지 머리를 한 노 화백에게선 아티스트 다운 아우라가 자연스럽게 풍겨왔다. 그야말로 전위적이다. 한국미술 제1세대 전위 예술가인 김구림(77) 화백의 첫 인상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그리고 그의 생애 첫 미술관 개인전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16일부터 선보인다. 주로 1960~70년대 작품으로 이뤄진 회고전으로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뿌리를 보여준다.

전시 제목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김 화백이 건네는 해학과 풍자의 메시지로 지난 반세기 동안 미술사에서 심도 있게 조망 받지 못한 한국의 실험미술을 은유한다.

김 화백은 1936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다가 중퇴, 외국잡지를 보며 독자적인 창작의 길을 개척했다. 그는 회화68, A.G.그룹, 제4집단 등 한국전위예술의 흐름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그룹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또한 회화와 조각에만 집중돼 있던 한국의 60~70년대 미술계에 해프닝, 설치미술, 바디페인팅, 대지미술, 실험영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활동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동시에 시대를 앞서간 작품들은 "미쳤다""공산주의다"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김 화백은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활동하다 2000년 귀국해서도 꾸준히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1/24초의 의미'
이번 전시에서는 1960~70년대 실험작품이 주를 이룬 가운데 발표 후 유실된 작품들과, 에스키스로만 존재하고 기술적인 혹은 현실 제약적인 문제로 실현되지 못한 작품들이 비로소 세상에 선을 보였다.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1969년 제작돼 한국최초의 실험영화로 꼽히는 이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된 후 원본이 유실된 것을 16mm필름으로 복원한 작품이다. 차에서 본 고가도로 난간, 무언가를 내려다 보는 남자, 하품하는 남자 등 일상의 소소한 장면이 소리없이 지나간다. 1초에 24컷이 돌아야 현실의 시간이 되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김 화백은 60년대 말의 파편화된 일상, 시대상을 보여준다.

또한 1968년에 발표돼 필리핀에서 열린 '한국작가 11인전'에서 선보인 후 분실된 한국 최초의 일렉트릭아트인 도 만날 수 있다. 1970년 경복궁 내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했다가 주최 측이 전시장에 물이 차 다른 작품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일방적으로 철거했던 거대 얼음 설치작품 '현상에서 흔적으로'도 재현됐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 이숙경 큐레이터는 "예술 장르의 통섭이 일반화된 오늘날, 김구림의 작품은 시대를 앞선 급진적 실험의 선구로 그 역사적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칠순을 넘긴 김 화백은 요즘도 이전과 다른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내 삶의 방식도, 생각도 달라진다"며 "예정되거나 어떤 형식이란 게 없다. 작품도 변화기 마련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화백은 원하는 게 하나 있다고 했다. "내 평생 작업을 한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펼쳐 보이고 싶다. 아직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는 작품도 많은데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미술관에서 모두 전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10월 13일까지 전시. 02)2124-8868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