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관절염은 국가의 우환이다

몇 달 전 조간신문에서 '우리 엄마의 관절염은 국가의 우환이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필자에게 모성(母性)이란 단어를 되새기게 한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라면 누구라도 박장대소할 기사제목 또한 마음에 들었다. 어떤 정형외과 의사가 그 제목에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기사를 읽고 난 며칠 뒤, 40대 후반의 여자환자가 병원을 찾았다. 대뜸 "병원이름이 '달려라병원'이라서 한참을 웃었어요"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자주 듣는 말이라 그리 당황하진 않았지만 그저 가볍게 웃으며 "네"라고 대답한 뒤 진료를 시작했다.

전업주부인 이 여성은 다른 주부들과 마찬가지로 평소 집안일을 많이 한다고 했다. 운동은 매일 공원이나 산책로 걷기, 한 달에 1~2번 집 근처 산에 다니는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산에서 내려올 때 조금씩 무릎이 시큰거리다가 몇 시간 또는 하루 이틀 지나면 이내 괜찮아지는 증세가 반복된다고 했다. 정형외과에는 처음 온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친구 중에 무릎연골이 상해 수술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겁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는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마음(心)부터 살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마음 속에서 자신의 병을 확대해석하고난 뒤에야 병원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만 보더라도 자신의 고통에 쿨(Cool)한 환자는 거의 없다. 특히 40대를 넘긴 전업주부들이나 60~70대 여성들은 자신의 질환이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는 무거운 '짐'이 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꼬치꼬치 물었다. 많이 걱정이 되는가, 주로 무슨 일을 할 때 무릎이 아픈가, 집안 일 하면서 오래 서 있는 편인가, 주변에 계단이 많은가 등등. 돌아온 대답은 계단을 내려갈 때가 올라갈 때보다 훨씬 더 불편하다, 양반다리는 조금만 해도 힘들다, 쪼그리고 앉아 빨래하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한 자리에 1시간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다 등등.

정밀하게 진찰하고 간단한 X-ray 검사를 마쳤다. 다행히 관절염 초기증세다. 좀 더 전문적으로 설명하면 무릎 앞쪽에 과부하가 생겨서 발생하는 '무릎 관절 전방통증 증후군'이다. 40~50대 전업주부에게 많이 보이는 질환이다. 환자에게 진찰결과를 설명했다. "자꾸 무릎 앞쪽에만 힘을 많이 쓰면 그 부분에 있던 연골이 더 못 견디고 '이대로 가면 나(연골)는 정말로 나빠질 수 있어요'라고 연골이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다고 예를 들었다.

바로 그 때 이 환자에게서 되돌아온 대답이 필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저...혹시 유전되는 병인가요?" , "???.......!!!"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녀가 덧붙였다. "고등학교 다니는 우리 딸아이가 무릎이 좀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3~4초의 침묵이 흐른 뒤 필자는 환자의 안색을 살폈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절대 유전되는 병 아닙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릎에 과부하만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간단한 소염제를 드시면 증상은 바로 호전되실 거에요. 그리고 난 후부터 꼭 무릎 주변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을 하셔야 되요. 제가 무릎 운동에는 전문가에요. 그래서 주부 무릎 주치의라고 부르구요. 앞으로 좋아지는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가르쳐 드릴테니 힘들지 않게 운동을 배우실 수 있을 거에요. 따님한테도 배운 걸 가르쳐주시면서 같이 운동하시면 더 좋겠네요."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4대 중증질환이라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단어가 지난 대통령선거 때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국가가 나서 이런 중증질환을 해결해주는 것은 누가 뭐래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중요한 걸 우리는 잊으면 안 될 것 같다. 바로 우리 엄마들의 건강이다. 나아가 관절염도 유전되느냐고 묻는 엄마들의 지극한 자녀걱정 즉 모성이다.

진료실에서 접한 숭고한 모성 앞에 '우리 엄마 관절염도 국가의 우환이다!'라는 신문기사 제목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일. 관절염이 모성을 싣고 필자의 가슴 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 동안 떠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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