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질환=오십견'은 편견, 전문의 진단 필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효식품 김치. 갓 담근 김치가 시간이 지나 적당히 발효되면 많은 유익한 미생물들이 자라나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김치는 시간과 더불어 사람에게 더 이로운 식으로 변모하는 착한 '트랜스포머'라는 것.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들 중에도 자신의 질환을 김치나 된장 등 발효식품과 같은 이치로 이해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의사 입장에서 참 당혹스러운 일이지만, 김치종주국 한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니만큼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뼈는 그냥 두면 저절로 낫는데 뭐하러 병원에 가? 도가니탕이나 닭발 많이 먹으면 되잖아" 라든가 "연골은 시간이 흐르면 재생된다던데 수술은 왜 해?" 라는 생각. 그렇다면 정형외과 의사 입장에서의 반론. "뼈ㆍ연골이 도가니탕 먹으며 그대로 둬서 낫는 거라면 내과질환은 전부 아스피린만 먹으면 낫는 건가요? "

어깨질환의 국가대표 격인 오십견(五十肩)이 바로 그런 경우다. 어깨병이라고 하면 대부분 '오십견'이 생각날 만큼, 이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그야말로 인기검색어다. 10~20년 전만 해도 어깨질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어깨병을 그냥 오십견이라고 불렀다. 의사들도 그랬다.

진단이 제대로 안 되니 치료가 가능할 리 없었다. 병원에 가도 잘 안 낫고 그대로 둬도 고만고만한 병 오십견이란 인식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도가니탕과 닭발이 이와 함께 치료제(?)로 유행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어깨질환은 퇴행성이다. 그래서 50대 전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깨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해서 서른 가지가 넘는다. 가장 많은 게 '회전근개 질환'이라는 어깨 힘줄병이다. 이 질환은 암과 공통점이 있는데 증상이 심하지 않고 서서히 진행된다. 회전근개질환인데도 '어깨통증은 오십견'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의 환자들은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 병원을 찾는다. 힘줄이 파열될 정도로 진행되어 수술이 필요할 때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회전근개파열은 초기에 치료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다. 퇴행성 질환인데도 치료 후에는 이전에 하던 모든 운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1cm 미만의 작은 구멍을 통해 수술하는 관절내시경 수술로 회복도 매우 빠르다. 물론 통증도 거의 없다. 경험 많은 어깨전문의라면 1시간 이면 충분히 수술이 가능하다. 95%이상 좋은 결과가 나타나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깨질환은 20년 전만 하더라도 전문의가 없다시피 했다. 아무도 개척하려고 나서지 않는 그야말로 정형외과질환의 황무지였다. 필자의 대학교 스승이 대한민국 공식 어깨전문의 1호라는 사실이 어깨질환에 대한 그동안의 무관심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어깨질환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독자들 중에 어깨가 많이 아픈 분들은 제발 자신의 병을 무조건 '오십견'이라고 부르지 않길 바란다. 또한 오십견은 김치같은 착한 '트랜스포머'가 아니란 점도 명심했으면 좋겠다. 저절로 낫는 병이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일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수술 없이 치료할 수 있을 때에 정형외과를 찾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어쩌면, 수술하지 않아도 될 때 병원을 찾는 사람이 진정한 '생활의 달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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