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 때 해공대사가 창건'의기 논개'가 종종 기도 올리기도늦가을이면 오색영롱한 단풍숲 변신약수터 앞 버섯 모양 '유심정' 눈길

팔성사는 백제 무왕 3년 해공대사가 창건했다.
늦게 물든 가을빛, 나그네의 넋을 홀리다

글ㆍ사진=신성순 여행작가

흔히 ‘의기 논개’라고 한다. 의기(義妓) 즉 ‘의로운 기생’을 이름 앞에 달았지만 논개는 기생이 아니다. 의암 주논개(義巖 朱論介)는 1574년 9월, 훈장이던 아버지 주달문과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수몰된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 주논개의 고향이다.

17세 때 장수현감 최경회의 부실이 된 논개는 최경회가 전라우도 의병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훈련시킬 때 이를 뒷바라지한다. 최경회가 크게 무공을 세우자 조정에서는 그를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 진주성을 지키게 한다. 2차 진주성 전투 때 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낭군의 복수를 위해 기생으로 가장해 촉석루에서 열린 왜군의 승전연회에 참석한다. 이윽고 논개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의암으로 유인해 남강에 함께 투신, 순절한다.

논개가 생전에 종종 찾아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지는 팔공산 팔성사를 찾아간다. 널리 알려진 대구 팔공산이 아니라 전라북도 장수군에 있는 팔공산이다. 장수군민들이 아끼는 명산은 장안산과 팔공산인데 방화동, 덕산용소, 지지계곡 등을 품은 장안산이 휴양지로 사랑받는 반면에 팔공산은 아는 이가 별로 없고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비경으로 남아 있다. 장수 주민들의 ‘마음의 고향’ 같은 산이라고나 할까?

팔성사 입구의 사천왕 석상이 익살스럽다.
무왕 때 해공대사가 창건

전북 장수군 장수읍과 진안군 백운면에 걸쳐 솟은 해발 1,151미터의 팔공산은 주변에 역사와 성인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어 일명 성적산(聖跡山)이라고도 한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 산에 들어와 8명의 승려를 가르치며 머물러 팔공산(八公山)으로 불린다고도 하고, 팔성사(八聖寺)와 그에 속한 7개의 암자에 각각 1명의 성인이 머물러 팔공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김제 금산사의 말사인 팔성사는 백제 무왕 3년(603년) 해공대사가 창건했다. 해공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에 수도처로 삼기 위해 이 절을 세웠으며, 그의 제자 7명도 근처에 암자를 1개씩 지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초기에 폐사된 후에는 부속 암자 가운데 하나를 본사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운점사(雲岾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와 중기에 정심(正心), 영관(靈觀), 선수(善修) 등의 큰스님들이 머물렀다. 1974년 비구니 법륜(法輪)이 대웅전을 복원했고, 1991년부터 극락전과 삼성각, 성적선원 등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울창한 숲 고적한 분위기 인상적

버섯 모양의 정자인 유심정도 눈길을 끈다.
팔성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모니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탱화로는 후불탱화, 지장탱화, 신중탱화 등이 있다. 대웅전 뒤에 백제 유물로 추정되는 사리탑이 있었으나 1973년 도굴되었다.

극락전은 1991년 인법당을 해체하여 지은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아미타불상과 후불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인법당을 해체할 때 1438년(세종 20년) 성주(省珠)가 중건했다는 상량문이 발굴되었다. 성적선원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선방 건물로 석가모니불좌상을 봉안하고 있으며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팔공산 동쪽 기슭에 파묻혀 있는 팔성사는 호젓한 산사의 운치가 그윽하다. 내세울 만한 문화재는 없지만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 고적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한여름 무더위를 씻어주는 그 숲이 늦가을이면 오색영롱한 단풍 숲으로 변신해 감탄사를 연발시키지만 이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한적하게 늦가을 정취에 젖어들기에 이만한 곳도 드물다. 팔성사 일원의 가을빛은 매우 더디게 물들어 11월 중순 무렵에 이르러서야 절정으로 치달아 오른다. 우거진 송림 속에서 붉은 단풍잎과 샛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진 고혹적인 자태가 가을 나그네의 넋을 빼앗아가려는 듯하다.

소박하고 아담하면서 맑은 팔성사 계곡에는 푸른 이끼가 끼어 있다. 그래서인지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약수 맛이 산뜻하고 시원하면서 달다. 약수터 앞에 있는 버섯 모양의 정자 유심정(流心亭)도 눈길을 끈다. 마음을 흘려보내는 정자, 마음이 흐르는 정자, 흐르는 물에 마음을 씻어내는 정자, 뭐 그런 뜻이리라. 내친김에 팔공산으로 오르는 것도 좋다. 불과 1시간이면 울창한 숲과 억새밭을 헤쳐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찾아가는 길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이 어우러졌다.
대전통영고속도로 장수 분기점-장수 나들목-19번 국도-장수읍을 거친다. 장수에서 번암 방면 19번 국도를 타다가 개정 교차로에서 산서, 오수 방면 13번 국도로 1.9km쯤 달린 다음 우회전해 1km 가량 들어가면 팔성사에 다다른다.

대중교통은 서울 남부 터미널, 전주, 남원, 광주, 대전 등지에서 장수로 가는 시외버스 운행. 장수에서 산서 방면 군내버스를 타고 팔성사 입구에서 내려 15분쯤 걷는다.

# 맛있는 집

장수읍 개정리의 삼봉가든(063-351-8440)은 활성탄돼지고기와 오리 요리로 유명하다. 해발 500미터인 이곳은 기온이 낮아 돼지고기의 비계 층이 다른 곳보다 더 두껍다. 그래서 참숯가루인 활성탄을 섞은 특수 사료를 먹여 비계의 질을 향상시킨 것이다. 비계 맛이 기름지지 않고 쫀득하면서 고소하기까지 하다. 신선한 오리고기를 즉석에서 양념해 구워 먹는 오리주물럭과 인삼, 녹각, 대추, 마늘, 생강 등을 넣고 푹 고아내는 오리약탕도 인기다. 남은 국물에 찹쌀과 야채를 넣고 쑨 죽도 별미다. 번암면 죽산리에는 장수온천호텔(063-353-5555)이 있는데 이곳 구내식당은 각종 산나물 등 30여 가지 반찬이 따르는 산채정식으로 유명하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