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에는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무려 4,000 여 개의 처방이 있다. 여기에 각 질환마다 끝부분에 달려 있는 단방(單方, 한 가지로 된 한약처방)까지 처방으로 포함시킨다면 셀 수 없을 정도로 처방이 많아진다. 이 많은 처방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 처방 모두를 운용하는 한의사는 더더욱 없다.

동의보감의 '처방 색인'을 읽어 보면 같은 처방이 동의보감의 여러 문(門)에서 쓰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門)이란 질병을 나눈 단위로, 예를 들면 이문(耳門)은 귓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에 관해 써 놓은 부분이다. 즉 한 질환에 쓰여진 어떤 약이 다른 질환에도 자주 사용되며 여러 질환에 대해서 한 가지 처방이 사용됨을 말한다.

이성준 한의사가 <탕증으로 보는 동의보감>을 발간했는데, 동의보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방약합편 내의 처방과 정조 대의 탁월한 한의사인 강명길이 발간한 <제중신편>, 그리고 김정제의 <진료요감>에 수록되어 있는 처방을 상호 비교하여 중요도가 있는 889개의 처방을 1부로 구성하고, 빈도가 떨어지거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2,931개의 처방을 2부에 배속했다. 여기에 더해서 한의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50개 처방을 따로 모아서 가지고 다니면서 보기 편하게 얇은 책으로 구성했다.

이 책에 의하면 동의보감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처방과 그 처방 회수를 보면 사물탕(四物湯)이 136회, 이진탕(二陳湯)이 83회, 소시호탕(小柴胡湯)이 78회, 오령산(五苓散)이 57회,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이 56회다. 우리가 흔히 많이 아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도 18회 정도 비교적 많이 언급되어 있다.

다시 사물탕으로 돌아가 보자. 동의보감에 언급된 사물탕은 간질(癎疾), 객혈(喀血), 혈뇨(血尿), 식은땀, 각종 자궁질환, 생리불순, 대소변불통, 전포(轉脬, 임신 소변불통), 제림(諸㵉, 각종 임질), 교장(交腸, 누공이 생겨 특히 여성의 오줌에 대변이 나오는 증상), 어지럼증, 두통, 눈병 등 136회에 걸쳐 나온다. 사물이라면 언듯 사물놀이에 사용되는 북, 장구, 꽹가리, 징을 떠올리겠지만 숙지황, 당귀, 천궁, 백작약 4가지 한약재로 돼 있는 처방이 사물탕이다. 이렇게 많은 주치(主治)를 가진 사물탕(四物湯)에 대해 방약합편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보자. 사물탕은 방약합편에는 상통(上統) 68번에 있다. 주치증(主治症)이 통치혈병(通治血病)이라고 되어 있다. 혈(血)에 관한 모든 것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동의보감에 있는 136가지 질병의 특성을 방약합편은 혈병(血病) 하나로 본 것이다. 혈병(血病)에 해당되는 모든 증상에는 그것이 피를 토하는 객혈(喀血)이든, 코피가 나는 육혈(衄血)이든, 피가 부족해서 생리에 장애를 느끼는 사물탕(四物湯)을 써야 한다고 못 박은 것이다. 혈(血)이나 진액(津液)이 부족해서 혈허(血虛)증상이 나타나는 것에 쓰이는 것이 사물탕이다. 아마도 못먹고 일을 많이 해서 정혈(精血)을 소모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추측된다. 두 번째 많은 이진탕(二陳湯)은 담음(痰飮)이라고 불리는 몸에 생긴 노폐물을 없애는 처방이다. 동의보감에는 역시 여러군데 보이지만 방약합편에는 중통(中統) 99번에 보이고 주치(主治)가 통치담음(通治痰飮) 이라고 되어 있다. 앞선 칼럼에서 담음이 어떻게 생성되는 지는 충분하게 밝혀 놓았다.

2천년전 전한시대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그때의 사회가 지금과 거의 같다는 인식이 드는데, 동의보감 시대의 처방도 의외로 지금과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질환에 응용된 처방이라고 해서 많이 쓴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물탕은 고강도 비만관리나 편식으로 인한 영양결핍에, 이진탕은 운동부족으로 인한 노폐물 축적에, 소시호탕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도 많이 쓰인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