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깃든 자리 궁중식·서민음식 다양'석파랑' 궁중식 표방 한식… '형제추어탕' 3대 80년 업력두부 전문 식당에 발걸음 잦아… '장모님해장국' 우거지 맛 각별

석파랑 코스요리 후식.
구기동은 서울의 서북 면에 있다. 이 일대는 종로구의 여러 작은 동네들이 있으나 흔히 '구기동 일대'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4대문 중 북대문인 북정문(北靖門)과 북소문인 자하문(紫霞門)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 북정문은 청와대 뒤편에 있고 자하문은 구기동 언저리에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청운동이다. 자하문은 원래 이름이 창의문(彰義門)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에게서 보랏빛 향기가 나고 따라서 사찰의 대웅전 들어가는 문을 자하문이라고도 부른다.

한양 궁궐과 사대문, 사소문은 모두 조선 초기 삼봉 정도전이 기획한 것이다. 문 하나하나의 이름까지 모두 삼봉이 붙였다. 유학자 정도전이 불교식 이름 자하문이라고 불렀을 리는 없다. 원래 창의문이라고 불렀으나 민간에서 자하문이라고 불렀다. '자하(紫霞)'는 보랏빛 향기를 일컫는다.

창의문은 1395년(태조 5년)에 세웠으나 1416년(태종 16년) 폐문(閉門)된다. 조선시대에는 방위 '북(北)'에 대한 기피가 있었다. 북대문인 숙정문은 "음기가 들어오는 곳이다. 문을 열어두면 한양도성의 아녀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엉뚱한 이유로 조선시대 내내 닫혀 있었다. 북소문 창의문 역시 "조선 왕조의 안전을 위하여 닫아 두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따라서 닫았다. 북쪽은 북한(北漢), 양주(楊州) 등과 통하고 중국과 통하는 길이다. 중국과의 정상적인 교류는 서대문을 통하여 황해도-평안도를 잇는 길을 이용하되 반란과 외적 침입의 가능성이 있는 북쪽은 늘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창의문은 1506년(중종 1년) 다시 열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때는 능양군(후일 인조)일파가 이 문을 부수고 궁궐로 진입, 반정에 성공하여 인조를 옹립한다. 늘 문을 닫아두었던 덕분에 북정문과 창의문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옛날민속집.
구기동 일대는 조선말기, 세도가들의 별장 등이 있던 곳이다. 솔숲이 우거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다. 이곳에 조선말기 세도가 영의정 김흥근이 '삼계동별서(三溪洞別墅)'를 세웠다. 개인 별장이다.

이 별장을 흥선대원군이 억지로 취했다. 아들인 국왕 고종을 불러서 하룻밤 묵게 하고 "군왕이 묵은 곳을 신하가 사용할 수 없다"며 취한 후,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으로 바꾼다. 석파정의 건물 일부가 현재 한식당 '석파랑'의 일부가 되었다. 별관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현재 본관 건물로 사용하는 것은 순종의 계비 순정효 황후 윤씨의 옥인동 생가를 옮긴 것이다. 시할아버지와 손녀 며느리가 연관 있는 건물이 지금은 한 자리에 모여 있다.

'석파랑'의 음식은 궁중음식을 표방하는 한정식(韓定式)이다. 코스 요리의 구성도 좋지만 후식도 특이하다. 간결하고 깔끔한 서울 한식을 선보인다. 궁중음식을 표방하며 방식은 코스별로 나오는 정식이지만 '석파랑'의 음식은 엄밀히 따지자면 한식이다. 퓨전을 표방하지도, 전통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현대적인 음식이나 일정 부분 전통을 고수한다. 궁중에서 썼다는 식재료를 따지지도 않는다. 그 계절에 많이 생산되는,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한식이다.

발효음식은 과하지 않게 적절히 사용한다. 지방별 전통주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고급 한식집으로 유명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이 상당수 다녀간 집이기도 하다. 외국인의 발길도 잦다.

형제추어탕.
인근의 '형제추어탕'은 80년의 업력을 지닌 노포다. 현재 자리는 아니고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3대째 대를 잇고 있다. 원형 추탕은 서민, 하층민의 음식이었다. 추탕, 추어탕의 원형은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추두부탕'이다. 우리는 고려시대부터 미꾸라지를 먹었지만 기록은 조선 후기에 집중되어 있다. 추두부탕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하층민인 '반인(泮人)'들이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 청계천 일대의 걸인들의 음식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단백질이 귀한 내륙에서,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오랜 기간 먹어온 음식이다. '형제추어탕'은 개업 당시 상호 '형제주점'이었다. 그 후 '형제추탕'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또 바뀌었다. 서울, 중부지방은 '추탕', 지방은 '추어탕'이었다. 서울식 추탕은 미꾸라지 대신 미꾸리를 통째로 넣고 끓이는 방식이다. 붉고 칼칼한 국물이다.

'원조할머니두부'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유명한 두부집이다. 30년의 업력이다. 매일 새벽 직접 만든다. 생두부를 권한다. 김치를 곁들여도 좋고 양념장을 곁들여도 좋으나 갓 나온 두부만큼은 그대로 한 입 먹어보아야 한다. 콩 비린내 없이 고소하다. 강원도 지역의 햇콩을 쓰고 간수는 가까운 서해안에서 가져다 쓴다. 식사로는 순두부백반이 인기다.

'옛날민속집'은 별다른 장난 없이, 고생스러운 과정을 거쳐서 만드는 두부를 내놓는다. 보기 드문 흑두부도 있다. 콩비지백반은 돼지 뼈를 우린 육수를 쓴다. 김치, 무, 돼지고기 등이 콩 비지 맛을 더한다. 두부버섯전골도 좋다.

'장모님해장국'은 우거지가 들어간 선지해장국이 좋다. 사골을 푹 고아 국물을 내고 선지와 우거지를 넣어 진하고 개운한 맛이 좋다. 두부김치와 수육도 있다. 든든한 식사를 하기에도 좋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좋다.


할머니 해장국.
석파랑 코스요리.
원조할머니두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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