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는 바뀌어도 '옛맛' 그대로 서민 고단한 삶 함께한 음식 풍성… '청진옥' 해장국 대표적'장원집'족발, '감촌순두부'… '미진' 60년 된 메밀국수 전문점

청진옥 해장국
이른 아침 지게를 지고 한양도성으로 들어온다. 동대문은 나라님 행차 때나 열린다. 언감생심, 동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작은 동소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온다.

창경궁, 창덕궁 곁을 지나 '운종개'로 들어온다. 광화문 곁에 종이 있다고 해서 종루(鐘樓) 혹은 종로(鐘路)로 부른다. '운종개'의 뒷길을 들어서면 그나마 숨을 쉴 만하다. '운종개(雲從街)' 큰길가는 언제 높은 분들이 지나갈는지 모른다. 종루에서 청계천변으로 육의전이 펼쳐지는 화려한 곳이다. 운종가는, 사람이 구름같이 모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도 많고 물건도 많다. 나무꾼 주제에 이 길을 들어갈 수는 없다. 설혹 지나간다 하더라도 높은 양반들이 지나가면 길도 걷지 못하고 땅에 머리를 숙여야 한다.

운종가 뒤편에는 편하게 걸터앉아 밥이라도 한술 먹을 수 있는 주막이 있다. 땔감 지게를 지고 들어오는 이른 새벽, 여기서 우거지국밥이라도 한 그릇 훌훌 먹을 수 있다.

양반님들을 피하고 말 탄 높은 사람들을 피해서 다니는 길이라고 해서 이름도 '피맛(避馬)골'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숨이라도 돌리라고 만들어진 길일 것이다.

피맛골은 그런 길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여전히 반상(班常)의 구별은 있었다. 왕십리 일대에서 나물이 들어오고 동소문으로 양주골의 땔감들이 들어왔다. 상민들은 여전히 종로를 피하려 피맛골 일대에 나물과 땔감을 부려놓고 시래기, 우거지 푸짐한 국밥들을 먹었다.

청진옥 빈대떡
서울의 중심지역이다. 많은 건물들이 낡았고 골목들도 꼬불꼬불했다. 재정비, 재건축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결국 재개발되었고 오랜 추억이 묻어 있는 집들도 보금자리를 버려야 했다.

인근에 르 메이에르 타운이 들어섰다. 많은 인근의 가게들이 이 빌딩으로 입주했다. 손님들은 편해졌다. 한 건물에 많은 맛집들, 노포들이 모였다. 긴 세월을 지나며 쌓았던 그 기억들은 이제 잊어야 한다. 사라지는 것들은 아름답다.

'청진옥'. 해방 전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개업했다. 이름에 '옥(屋)'이 붙은 것은 일제강점기에 문을 열었다는 뜻이다. 문을 열 무렵에는 이른 새벽, 땔감을 지고 온 나무꾼 손님들이 많았다. 오래된 밥집 터가 재개발지역이 되었다. 재개발 기간을 넘기며 르 메이에르 타운에 분양과 동시에 입주했다. 이전하면서 가격이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렴하다.

해장국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함께해온 음식이다. 이전하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묻었고 한편으로는 옮겼다. 예전의 허름한 분위기를 추억하는 이들도 많다.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같은 당대의 문인은 물론 명배우 이예춘, 김승호씨 등도 단골이었다. 청진옥의 해장국을 가장 사랑한 건 보통 사람들이었다.

이주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옛날 분위기와 맛을 유지하는 것. 70년 세월을 함께한 무쇠 솥도 그대로 옮겼다. 선지와 내장을 푹 곤 다음, 된장을 풀어서 맛을 낸다. 칼칼하고 매운 맛보다는 담백하고 개운하다. 늦은 밤, 굳이 술을 먹은 뒤가 아니더라도 편안한 음식이다. 뚝배기 그릇에는 채소와 선지가 빼곡하다. 맛이 강하니 젊은 세대들은 너무 진하다고 평한다.

장원집 족발
'장원집'. 최고의 족발집이라는 표현은 과할는지 모르지만, 피맛골을 대표하던 족발 집이었다. 역시 피맛골 재개발로 인근으로 이전했다. 닭볶음탕이나 낙지 같은 메뉴도 있지만 역시 족발이 제일 좋다.

족발에는 밑반찬으로 양파초절임, 부추무침, 깍두기, 굴젓 등이 나온다. 대단한 찬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맛깔스럽다. 다행히 족발과도 잘 어울린다. 족발은 냄새 없이 잘 삶아낸다. 단맛이 적어 담백하다. 껍질의 쫄깃함과 살코기의 부드러움이 좋다. 족발만큼 인기 있는 메뉴가 있으니 빈대떡이다. 김치, 해물, 녹두가 있는데 역시 녹두가 가장 인기 있다. 술안주로도 가벼운 끼니로도 좋다.

음식의 구성은 북한식이다. 족발도 빈대떡도 서울에도 있었지만 북한에서 널리 먹던 음식이다. 빈대떡의 유래는 여러 종류다. 그중 하나는 지금 서울 정동 무렵이 빈대가 많은 빈대골이었고 그곳의 사람들 중 부침개 파는 이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예전 고관대작들이나 부자들은 서울 남대문 일대에서 떡을 가난한 이들(貧者)에게 나누어 주었고 '빈자를 위한 떡'이 빈대떡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비교적 믿을 만한 이야기는 중국의 병자(餠子)떡이 빈대떡이 되었다는 설이다.

''는 종로구청 앞에서 이전해 왔다. 예전에 비해 가격은 좀 오른 편이다. 대표메뉴는 순두부찌개. 일명 명동 식 순두부찌개라고 한다. 붉은 국물에 달걀이 들어가 있다. 육수는 사골국물을 쓴다. 맵지 않고, 개운하고 칼칼한 맛이다. 하얀 순두부와 콩비지도 인기 있다. 매일 새벽 직접 장을 보면서 식재료를 구입한다. 참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는 것도 직접 확인한다고 한다. 특이한 메뉴로는 머리고기가 있다. 네모지게 잘 만진 머리고기다. 느끼하지 않고 단맛이 좋다.

'미진'은 1954년 개업한 메밀국수 전문점이다. 메밀국수는 밀가루와 일정한 비율로 반죽한다. 메밀 면 특유의 맛이 살아있다. 육수는 다시마, 멸치 등 10여 종류를 사용하여 만든다. 단 맛이 특징이다. 양이 푸짐해서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장원집 녹두빈대떡

감촌순두부
미진 메밀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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