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처방 달라도 질환 치료의 본질은 같아

이제껏 인체에서 가장 기본적인 물질인 기혈(氣血)을 보하는 한약과 인체의 큰 기둥인 음양(陰陽)을 보하는 한약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대개의 한의사들은 진맥과 변증(辨證, 증상을 변별함)을 통해서 음양기혈의 허약함과 항성(亢盛)함을 판단해서 처방하게 된다. 그런데 진료를 오래할수록 몇 가지 특정 처방에 대한 편애를 하게 되는 데, 이상하게도 그 처방으로 많은 특정 질환을 치료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비방(秘方)이란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게 된다. 10년 이상 진료한 한의사라면 적어도 1∼2개는 비방이 있기 마련이다. 몇 대에 걸쳐서 비방이 내려온 곳은 간경화, 간암에 옥수동 버드나무 한의원, 중풍에 영천 손한의원, 불임에 경주 대추밭 백한의원, 갑상선질환에 춘원당한의원 등등이 대표적이다. 위 한의원의 경우는 가문 고유의 특정 비방으로 특정 질환을 잘 고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같은 질환이라 하더라도 체질과 건강정도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특정질환이 갖는 경향성을 잘 파악해서 비방이 나온 것 같다. 이들과는 다르게 한 처방으로 여러 질환을 잘 고치는 명의들도 있었다. 동의보감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물탕의 적응범위가 136개의 질환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박병곤 한의사가 저술한 <한방임상 40년>의 끝 부분에 보면 이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먼저 김보중(金補中)을 보자.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으로 많은 병을 고쳐서 붙여진 이름으로 남원의 김광익씨의 처방이다. 방약합편에 비해 황기, 진피, 당귀의 용량이 많다. 이 처방은 대표적인 기허(氣虛)처방 임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내원하는 모든 환자가 기운이 허해서 질병이 생겼다고 판단한 것 같다. 기허(氣虛)외에 다른 증상들이 있으면 그 증상에 맞는 한약을 따로 첨가해서 처방했으며 이에 대한 자료도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은 허육미(許六味)다. 말 그대로 육미지황탕을 잘 썼던 허씨의 처방이다. 전라북도 운봉의 허창수씨의 처방이다. 숙지황 16g, 산약, 산수유 각 8g, 복령, 택사, 목단피 각 2g으로 역시 방약합편과는 다르다. 허씨는 모든 질환을 음허(陰虛) 즉 신수부족(腎水不足)으로 본 것 같다. 증상에 따라 첨가하는 한약재가 역시 함께 실려 있다. 정평진(鄭平陳)은 평진탕(平陳湯)을 잘 쓰는 정씨라는 의미다. 평진탕(平陳湯)은 생소할 것이다.

앞선 칼럼에서 체내 노폐물을 없애는 처방인 이진탕(二陳湯)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이진탕에 소화제인 평위산(平胃散)을 합쳐서 처방한 것이다. 방약합편 중통 71번에 나오며 주로 식학(食瘧)을 치료한다. 식학이란 무절제하게 음식을 먹고 마셔 배가 고픈데도 먹으면 배가 빵빵해지고 땡기면서 그득해져서 명치끝이 뭉치는 것이다. 처방은 방약합편과 거의 비슷하다. 원산의 정봉조씨가 이 처방을 잘 응용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다음은 최오적(崔五積)이다. 전주의 최치문씨가 오적산(五積散)을 즐겨쓴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방약합편의 처방과 용량이 다르다. 오적산은 한사(寒邪, 찬 기운)에 의해 몸살감기와 같이 머리와 온몸이 아프고, 손발이 싸늘하게 변하고, 명치끝이나 아랫배가 아프고, 토하고 설사하는 증상에 사용된다. 너무 오래 추운 상태에 있으면 나타나는 증상들이다. 오적산은 요통환자에 한의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처방으로, 허리를 무리하게 사용하면 국부적으로 차가워지면서 순환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김사물(金四物)이다. 사물탕은 혈(血)이 부족(不足)한데 사용된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전북 태인의 김창호씨가 그 분이다. 처방은 동일하지만 한약의 양(量)이 방약합편의 용량보다 2배가 훨씬 많은 대용량이다. 각자 다른 한약을 써서 엇비슷한 질환을 치료하는 것을 보면 한의학으로 보는 생명관은 원융회통에 가깝다. 한의학에 갓 입문한 초보자라면 각 처방 뒤에 붙어 있는 증상에 따라 첨가하는 한약에 대해 공부해보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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