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계단 오르내리기에도 순서와 방법이 있다

가을엔 무릎이 아파 정형외과를 찾는 환자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십중팔구 무릎 앞쪽이 시큰거린다는 것. 이유를 물으면 대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대답하곤 한다. (1) “단풍구경 다녀왔어요. 이런저런 모임에서 여러 번 등산을 했더니 며칠 전엔 산을 내려올 때 무릎 앞쪽이 시큰거리더군요.” (2)“ 추워지기 전에 김장한다고 며칠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했더니 무릎이 시리네요.” (3) “우리 애가 고3이라서 교회(또는 절)에서 무릎 꿇고 100일 기도를 했더니 무릎이 이렇게 아프네요.”

단풍구경과 김장 담그기와 100일 기도!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세 가지 행동은 모두 무릎, 그 중에서도 무릎 앞쪽에 과부하가 걸리는 동작이라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무릎건강에 빨간불이 켜지는 동작들이라는 것. 이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누구라도 상식적으로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형외과 전문의 입장에서 앞서 언급한 세 가지 동작이 왜 무릎 앞쪽을 시리게 하는지 설명할 차례. 일반인들은 거의 모르지만, 무릎 앞쪽에는 슬개골이라는 뼈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뼈 뒤편은 연골이 덮여 있다. 이 슬개골의 연골은 맞닿아 있는 대퇴골 뼈의 앞쪽 연골과 항상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그런데 이 앞쪽 부분이 무릎 안쪽이나 바깥쪽과 다른 점은 연골과 연골 사이의 쿠션역할을 해주는 연골판이 없다는 것. 그리고 슬개골 주변은 무릎을 지탱하는 모든 근육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다는 점이다.

먼저 연골판이라는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 조직이 없다는 것은 무릎을 치료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입장에서는 일견 당연해 보인다. 무릎 안쪽과 바깥쪽은 걸을 때나 달릴 때 항상 체중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연골들을 도와주는 구조물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무릎 앞쪽은 체중을 지탱할 정도의 힘을 굳이 받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잘 할 수 있다. 따라서 연골판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상황이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양반다리로 앉아서 생활하거나 쪼그리고 앉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무릎 앞쪽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이런 생활습관에서 무릎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누적이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연골이 약해지고 결국 퇴행성관절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서양인들과 달리 무릎 앞쪽 연골판이 별도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재밌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또 하나, 무릎 주변 근육들이 작은 뼈 하나에 너무 많이 붙어있다보니 과로를 하는 순간엔 걷잡을 수 없이 염증이 심해질 수 있다. 일례로 지하철로 출퇴근 하며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이나 하이힐을 항상 신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조금 과장해서 50%는 슬개골 주변 인대의 염증(진단명으로는 슬개건염)이 생길 수 있다.

우리의 생활 습성상 이 슬개골이 어느 정도 과하게 사용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 포기해야 하나?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슬개골 연골, 인대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뭘까?

첫째, 가능하면 쪼그려 앉기를 피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자세로 일해야만 하는 분들은 목욕탕 의자를 하나씩 들고 다니기를 권한다. 그래야 무릎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계단 오르내리기를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방송에서는 운동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계단 오르내리기를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릎에 관련된 운동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계단 오르내리기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는 운동이다. 퇴행성관절염이 전혀 없는 사람도 한 번 잘못하면 관절염이 시작될 수도 있다. 또한 증상없이 관절염이 초기에서 중간단계로 진행되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단 무릎에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실내자전거 운동과 운동화를 신은 상태로 보통 속도로 3~40분 정도 걷는 운동을 먼저 시작하자. 그럼으로써 무릎 상태를 점검하고 기본근육을 만들자. 그 뒤에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가는 운동으로 좀 더 근육을 다듬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순서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무릎이 시큰거릴 때 “좀 쉬면 낫겠지”라고 생각하며 방치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뭔가 조금 예전과 다르게 이상하다 싶으면 꼭 정형외과 무릎 전문의를 찾아가 조언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정형외과 의사인 필자는 슬개골의 위력과 기능을 새삼 깨닫게 된다. 크기는 작지만 그 하는 일에서는 다른 큰 뼈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슬개골. ‘작은 것의 위력’을 슬개골은 매년 가을 즈음에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달려라병원 손보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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