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 금산사견훤이 유폐된 국보 62호 미륵전

일중 김충현이 편액 글씨를 쓴 금산사 일주문.
935년 3월, 후백제의 시조 견훤은 막내아들(9남) 능예, 딸 쇠복, 애첩 고비녀와 함께 금산사 미륵전에 유폐되어 파달 등 30여 병사의 감시를 받는다. 이미 69세의 나이로 노쇠해진 견훤이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장남 신검이 차남 양검 및 3남 용검과 모의해 아버지를 미륵전 지하실에 가두고 금강을 죽인 뒤 스스로 왕위에 올랐던 것이다. 병사들에게 술을 마시게 한 뒤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탈출한 견훤 일행은 그해 6월, 고려 장수 유금필이 점령하고 있던 나주에 이르러 귀순 의사를 밝힌다.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이 936년 9월,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도 뜻 깊은 금산사 미륵전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62호로 지정되었다. 금산사 미륵전은 높이 11.82미터의 거대한 미륵존불을 모신 법당으로 장륙전, 용화전, 산호전이라고도 불린다. 1층에는 대자보전, 2층에는 용화지회, 3층에는 미륵전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서로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미륵불의 세계를 뜻한다.

1층과 2층은 앞면 5칸, 옆면 4칸이며 3층은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로 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겉모습은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3층 전체가 하나로 터진 통층이다. 웅장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금산사 미륵전은 국내 유일의 3층 목조건물이어서 특히 소중하다.

문화재 즐비한 호남의 대가람

금산사는 599년(백제 법왕 원년)에 왕의 자복(自福)사찰로 세워졌다고 전해지지만 창건 기록이 모두 불에 타버려 확실하지는 않다. 그 후 진표율사가 762년(신라 경덕왕 21년)부터 766년(신라 혜공왕 2년)까지 중건했으며 1069년(고려 문종 23년) 혜덕왕사가 88당 711칸으로 재건하면서 창건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대가람이 되었다.

고려 경종 6년(981년)에 세워진 오층석탑.
그러나 정유재란 때인 1598년 왜병의 방화로 미륵전, 대공전, 광교원 등과 산내 암자 40여 개소가 소실되었다. 그 후 1601년(선조 34년)부터 다시 지어 1635년(인조 13)에 재건되었다. 또한 고종 때 미륵전, 대장전, 대적광전 등을 보수했으며 1934년에 다시 대적광전, 금강문, 미륵전 등을 중수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건물은 미륵전(국보 62호), 대장전(보물 827호), 대적광전, 명부전, 나한전, 보제루, 일주문, 금강문 등이며 석련대(보물 23호), 혜덕왕사진응탑비(보물 24호), 오층석탑(보물 25호), 방등계단(보물 26호),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당간지주(보물 28호), 북강삼층석탑(보물 29호), 석등(보물 828호)을 비롯해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면적 202,304㎡에 이르는 금산사 일대는 2008년 12월 사적 496호로 지정되었다.

봄 벚꽃으로 유명하지만 겨울 설경도 일품

천년고찰 금산사는 모악산 서쪽 기슭에 안겨 있다. 여기서 '금산'과 '모악'은 전혀 다른 말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같은 뜻이다. 모악산이라는 이름은 옛말 '엄뫼'에서 유래했다. 높은 산을 뜻하는 엄뫼는 한자가 들어오면서 '어머니의 산악'이라는 의미를 내포했다고 해서 모악(母岳)이 되었다. 또한 엄뫼와 같은 뜻으로 쓰인 '큰뫼'는 '큼'을 금(金)으로 음역하고 뫼는 산으로 의역하여 금산(金山)이라고 일컬었다. 결국 이 산을 모악 또는 금산이라고 불렀던 것인데, 사찰이 들어선 후에 모악은 산 이름, 금산은 절 이름이 된 것이다.

어쨌거나 호남평야에 솟은 엄뫼 모악산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산자락에 거찰 금산사를 안은 채 관광객과 등산객의 발길을 맞아들인다. 금산사의 넓은 경내와 10여㎞의 진입로 주변에 수만 그루의 왕벚나무가 빽빽하고 봄마다 탐스러운 꽃송이를 주렁주렁 매단다. 이 '호남의 벚꽃 제일경'을 찾아온 상춘객들은 탄성도 잊은 양,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늦가을, 단풍처럼 빨갛게 익은 잎사귀 또한 황홀한 빛을 발한다.

금산사에서 모악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
그러나 봄 풍경 못지않게 겨울 설경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싶다. 눈 쌓인 오솔길을 뽀드득뽀드득 걷노라면 앙상한 나뭇가지를 감싸 안은 눈꽃과 계곡 위로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밭이 운치를 은은하게 돋우다가 이윽고 사찰 경내에 다다르면 전각들의 지붕과 석탑을 뒤덮은 새하얀 눈이 아늑하면서도 포근하게 마음을 감싼다. 대적광전에서 굽어보는 너른 절마당도 눈부신 은세계를 이루며 겨울 정취의 대미를 장식한다.

■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경부고속도로-천안 분기점-천안논산(25번)고속도로-논산 분기점-호남(25번)고속도로-금산사 나들목을 거친다.

대중교통은 김제나 전주에서 금산사행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금산사는 김제에 속해 있으나 김제보다는 전주에서 오가는 시내버스가 더 자주 다닌다.

# 맛있는 집=금산사 입구 상가에는 모악산 일원에서 나는 질 좋은 산나물을 이용한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을 내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대부분의 집들은 봄마다 금산리 일대 농가에서 뜯어온 두릅, 고사리, 취나물, 혼잎 등 갖가지 산나물을 사모아 직접 삶아 햇볕에 잘 말려서 햇나물이 날 때까지 쓴다. 갖은 산나물과 함께 더덕무침, 도토리묵, 조기구이, 장아찌, 계란탕, 된장찌개 등 20여 가지 반찬이 따르는 산채정식이 푸짐하다. 돌솥밥에 고사리, 취나물, 콩나물, 상추겉절이 등을 곁들여 내는 산채비빔밥은 가격 부담이 없어 인기다. 많은 집 가운데 백제회관(063-548-4019), 느티나무(063-548-4036), 한일회관(063-548-4016) 등이 유명하다.

웅장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는 3층 목조건물인 금산사 미륵전.

대장전과 석등 앞에 벚꽃이 피었다.
해탈교 아래 계곡이 흰 눈으로 덮여 있다.
금산사 산책로를 따라 벚꽃이 피었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