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 년 역사를 이어온 삼년산성의 성벽.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석성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어암리)의 삼년산성은 오항산(오정산) 능선을 따라 둘러친 삼국시대의 석성이다. 1973년 5월 25일 사적 제235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약 23만 평방미터, 성의 둘레는 약 1.68km에 이른다. 5세기 후반 신라의 축성 기술을 잘 보여주며 돌을 이용하여 쌓은 대표적인 산성으로 평가받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산성은 470년(신라 자비왕 13년)에 쌓았으며 축성하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해서 삼년산성이라고 불린다고 전해진다. 이후 486년(신라 소지왕 8년)에 중수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오항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오정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납작한 돌을 이용해 능선을 따라 축조한 성벽은 한 층은 가로로 쌓고, 한 층은 세로로 쌓아 견고하고 웅장하다. 성벽의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른데 가장 높은 곳은 22미터에 이르며 너비는 8∼10미터 사이다. 삼년산성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있었는데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해 문의 구조를 모두 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성내에서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토기 조각과 각종 유물이 발견되어 오랫동안 성을 이용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서 또한 튼튼한 방어막으로서의 기능을 해왔던 것이다.

삼년산성의 성벽은 납작한 돌로 견고하게 쌓았다.
성벽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

삼년산성의 관문인 서문을 들어서면 연못과 만난다. 아미지라고 불린다. 누에나방의 눈썹, 가늘고 길게 굽은 아름다운 눈썹, 즉 미인의 눈썹인 아미(蛾眉)를 닮아서 그렇게 일컫는 것 같다. 부근 암벽에 음각되어 있는 아미지(蛾眉池)라는 글씨는 신라의 명필 김생(711~791년)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아미지 앞에서 성벽을 따라 드리운 길을 오른다. 겨울이어서 눈이 쌓여 매우 미끄럽다. 조심조심 눈길을 헤치면 남문을 거쳐 동문에 이른다. 동문에서 성벽 아래로 20미터쯤 내려가면 삼년산성이 자랑하는 삿갓 형태의 수구가 보인다. 이 수구는 성 안의 물을 배출하기 위한 것으로 밑에 받침이 있어 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바닥은 층층으로 돌을 포갰는데 한 사람이 기어 들어갈 만한 크기다.

동문을 지나면 언덕을 넘는다. 굽이굽이 이어진 성벽이 장엄하게 다가온다. 성벽에 몰아치는 바람소리가 긴 잠에 빠져들었던 역사의 함성을 일깨우듯이 들려온다. 민가 형태의 사찰인 보은사 위쪽에 자리한 북문은 최근 복원한 것이어서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다. 최첨단 현대 기술로도 옛 사람들의 성벽 축조 기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무리인가? 불현듯 선인들의 장인 정신과 기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문에서 남문-동문-북문을 거쳐 서문으로 되돌아오기까지 1시간 남짓 걸렸다. 눈이 없다면 한 바퀴 도는 데 사십 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아름드리 송림과 어우러진 99칸 선병국 가옥

선병국 가옥 주변에 펼쳐진 울창한 송림.
삼년산성은 북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신라의 최전방 기지로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매우 견고한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554년(신라 진흥왕 15년) 백제 성왕이 신라의 관산성(현재의 충북 옥천)을 공격했는데 그 당시 신라의 전투 부대가 삼년산성에 주둔해 있었다. 822년(신라 헌덕왕 14년)에는 김헌창 반란군을 이곳에서 물리쳤다. 또한 928년에는 먼저 삼년산성을 차지한 후백제 견훤이 이곳을 공격한 왕건의 고려군을 무찌름으로써 그 기세를 몰아 청주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임진왜란 때 우리는 평지성 싸움은 모두 패했지만 산성 싸움은 대부분 승리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삼년산성 덕분에 황간이나 영동 쪽에서 오는 왜적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자 왜적들은 문경새재로 돌아 쳐들어왔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튼튼한 문경새재의 산성을 버리고 충주 남한강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가 패함으로써 왜적의 한양 입성을 허용하고 말았다.

삼년산성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전단계인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완벽한 고증 없이 복원한 탓에 본디 그대로의 예스러운 자태와 풍치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지 못했다.

삼년산성에서 약 8㎞ 떨어진 보은군 장안면에 있는 선병국 가옥도 들러볼 만하다. 중요민속문화재 134호로 지정된 이 고택은 1919년부터 1921년에 걸쳐 세워진 99칸의 웅장한 기와집이다. 사랑채, 안채, 사당채를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만들어 담을 둘렀으며 집 전체를 다시 담으로 둘러싼 특이한 형태가 돋보인다. 삼가천이라는 큰 개울 가운데 삼각주를 이룬 섬 안에 위치하여 흡사 작은 여의도를 연상시키는 지형이다. 예스러움이 넘치는 한옥과 담장 주위로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어 정취를 더한다.

# 찾아가는 길

삼년산성에서 보은 쪽 산과 들을 굽어보았다.
보은 나들목에서 청주상주(30번)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보은읍으로 향하다가 삼년산성 이정표를 따라간다.

대중교통은 서울남부터미널, 동서울터미널, 청주, 대전 등지에서 보은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보은에서 속리산 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삼년산성 및 보은정보고 입구에서 내린다.

# 맛있는 집

보은읍내 보은농협 앞에 있는 신라식당(043-544-2869)은 충청도식 백반인 신라한정식으로 유명하다. 각종 나물, 젓갈, 장아찌, 자반, 조림 등 20여 반찬이 모두 깔끔하고 맛깔스러우며 특히 된장뚝배기 맛이 일품이다. 보은읍 어귀인 수한면 발산리에 있는 미락식당(043-544-4575)은 두부전골과 두부보쌈, 토종닭 한방백숙으로 이름난 맛집이다. 은행나무 숲, 물레방아, 분수대가 어우러진 분위기도 멋지다.


삼년산성 안의 민가 형태 사찰인 보은사.
선병국 가옥의 정문인 솟을대문.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