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여행자들의 '로망의 땅'에 대한 재발견

여행자들의 '로망의 땅'은 숨이 빠르다. 머리를 기댄 차창 밖으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늦은 밤, 어느 도시에 내려도 찾아 들 설렘은 파리에서 더욱 강렬하고 애잔하다. 고흐가 생을 마감한 파리 인근 마을과의 조우에는 가슴이 요동친다.

파리에서의 여행은 '고독'이라는 테마와 어울린다. 파리의 하늘이 새파랗던 아니면 우울 모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파리의 중심가인 샬렛 거리를 걷거나 에펠탑, 샹젤리제로 대변되는 흔한 관광지를 배회하더라도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폼 나게 깃을 올려 세우거나, 바람에 흩날리는 파리지엥의 스카프 향수향 너머로도 고독 모드 여행의 잔상은 묻어 난다.

깊은 계절에 만나는 파리 역시 잔뜩 '파리'스럽다. 누구나 레드 와인 한 잔에 낭만을 논하고, 세련된 패션에 눈을 지치게 하며, 고풍스런 건물들이 감싸고 있는 오래된 것에 현혹된다. 파리답지 못한, 회색 빛 빌딩만 높게 솟은 다른 나라의 수도들은 억울하게 저급한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로떼르담 성당이 솟은 시떼 섬으로 연결되는 파리의 골목들을 칭송하고, 세느강변의 다리 위를 서성거린다. 파리를 오가는 수많은 이방인들의 배낭 안에는 딱딱한 바께뜨 빵이 소담스러운 상징처럼 꽂혀 있기도 하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과 유람선 바토무슈.
파리의 뒷골목에서 만나는 여유

파리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여기저기서 무의식적으로 이뤄진다. 인파를 피해 지도에 표기 되지 않은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거나 어둑한 조명의 낯선 카페를 기웃거리게 된다.

파리에서의 여행은 반복과 함께 일종의 업그레이드 수순을 밟게 된다. 예를 들면 할인 쿠폰을 들고 세느강에서 바토무슈 유람선을 타는 것보다 퐁데자르 다리 난간에서 유람선을 발 밑으로 내려다 보며 한가롭게 앉아 있는 것이 운치 있다. '예술의 다리'라는 별칭답게 나무로 바닥을 채운 퐁데자르는 세느강의 다리 중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인데 해질녘 그곳에 앉아 병에 담긴 와인을 기울이는 것으로 파리지엥 흉내를 내볼 수 있다.

이왕 흉내를 낸 다면 시떼 섬에서 세인트 미첼 거리로 이어지는 노천카페에도 무심코 시간을 쪼개 볼 일이다. 볕이 드는 큰 도로에 늘어선 카페들의 테이블 좌석은 한 방향만 바라 보고 겹겹이 늘어서 있다. 마치 파리의 정경과 지나치는 사람들을 하나의 동영상처럼 감상하는 구조다.

여행자의 시선을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파리지엥들에게는 그들만의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다. 낯선 여행자라면 루브르 박물관의 고풍스런 작품을 꼼꼼히 둘러 봤다가도 늦은 오후가 되면 퐁삐두 센터앞에 앉아 독특한 건물을 바라보며 딱딱한 바케트와 책을 벗 삼는 모습이 몸에 익숙해지면 된다.

루브르 박물관.
고흐의 마지막 삶을 엿보다

파리에 대한 시선은 외곽으로 흐르면서 더욱 고즈넉해진다.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향하는 단골 코스가 귀에 친숙하지만 고흐가 마지막 작품 활동을 하며 생을 마감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들려 프랑스 시골마을의 한가로운 풍경에 심취해 보는 것도 좋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하는 열차는 파리에 사는 구성원들이 세련된 파리지엥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듬성듬성한 열차 자리는 촌스러운 시골 청년과 다양한 유색인종들로 채워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낯선 풍경은 몇 안 되는 동양인 관광객들이다.

고흐는 이곳에서 70여점의 마지막 작품을 남겼고 고흐의 생가는 1층이 아직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청, 교회, 공동묘지가 그림의 배경이 됐으며 세잔, 도비니 등 인상파 화가들도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는 옆집 아저씨같은 골목길 아뜰리에의 주인과 수다를 떤 뒤 고흐의 동상이 놓여 있는 한적한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도 좋다. 자신의 귀까지 자르고 자살을 선택한 천재 화가의 비극적인 최후는 머릿 속에서 잠시 내려놓은 채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파리를 즐기는 또 하나의 여유이자 방법이다.

고흐의 동상.
■ 여행팁

가는길=파리는 유럽 여행의 교두보와도 같다. 다양한 직항, 경유편 항공기가 파리를 오간다. 파리에서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는 페르상 보몽행 기차를 탄 뒤 퐁트와즈행 열차로 갈아탄다. 파리시내의 이동은 메트로가 편리하며 다양한 할인 티켓들이 있다.

레스토랑=셍 미셸 거리 뒤편의 먹자골목에서는 로컬 레스토랑에서 와인한잔에 식사를 곁들일 수 있다. 대부분 점심시간에는 와인과 메인음식이 포함된 세트 메뉴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는다.

기타정보=패션에 관심이 높다면 샹제리제 인근의 몽테뉴 거리에서 명품 숍들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라데팡스 지역의 신개선문 역시 파리의 새로운 단면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본 파리 전경.
오베르 쉬르 우아즈 거리 풍경.

글ㆍ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