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 껍질인 진피(陳皮)와 청피(靑皮) 위장 기운 돌게 해 체기 뚫어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은 천하에 ‘내로라’ 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민족과 직업의 귀천에 관계없이 잘 담고 있다. 그 속에 관포지교의 주인공인 관중(管仲)과 더불어 안영을 한데 묶어 ‘관안열전(管晏列傳)’으로 편찬하였는데 둘 다 제(齊)나라의 명재상이었다. 안영은 키도 작달막하고, 체구도 왜소했으며, 얼굴도 썩 잘생기지 못했지만 그와는 달리 대단한 지략과 담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제후(諸侯, 왕)를 수시로 들었다 놨다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었다. 안영이 초나라에 갔는데 그 때 마침 제나라 사람으로 초나라에서 도둑질을 하다 잡힌 죄인이 초왕 앞을 지나갔다. 초왕은 안영을 시험하고자 “제나라 사람들은 모두 도둑질을 잘합니까?”하니 안영은 눈도 깜짝이지 않고 “귤(橘)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지(枳, 탱자)가 되는데, 그것은 토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에 살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은 한 것을 보면 초나라의 풍토(風土)가 나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를 귤화위지(橘化爲枳)라고 한다. 귤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오늘의 주제는 귤과 지(枳) 즉 탱자에 관한 얘기다. 귤은 언 듯 보아서 순 우리말 같지만 위의 고사에서 보듯이 한자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귤은 귀한 과일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귀한 귤을 왕들의 조상들이 묻혀있는 종묘에 진상하고 황감제(黃柑製)라는 특별한 과거를 치렀다. 여기서 급제한 인물이 여럿 있지만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앞선 소도(消導)지제 칼럼에서 귤껍질인 진피(陳皮)는 시큼한 산도 때문에 산사(山楂)와 함께 음식물을 잘 삭여 소화가 되는 것을 돕는다고 했다. 물론 속쓰리거나 미식거리고 울렁거릴 때 같은 산이 많을 때는 사용할 수 없다. 진피의 진(陳)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는 의미이다. 동의보감 탕액편 제1편에 육진양약(六陳良藥)에 대해 나오는데 오래 묵을수록 품질이 좋은 한약 6종을 말한다. 낭독(狼毒), 지실(枳實), 진피(陳皮), 반하(半夏), 마황(麻黃), 오수유(吳茱萸)가 그것이다. 포만할 정도로 음식을 먹고 명치끝이 막히면 음식이 명치 끝에 있어서 그렇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물은 이미 소화가 되어 내려간 후다. 그렇다면 우리가 체기를 느끼는 것은 왜일까? 위장의 기운이 소통이 안 되어서 꽉 막힌 것이다. 이 기운을 돌게 해서 명치끝을 뚫어주는 한약재가 진피(陳皮)다. 진피는 소화제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비위장의 기운을 잘 돌게 하는 이기(利氣) 혹은 행기(行氣)의 기능으로서 소화를 돕는 한약재다. 그래서 분류도 이기제(理氣劑)로 되어 있다. 항상 명치 끝이 뜬뜬한 소화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겨울철 귤껍질을 말려 하루 3∼4개씩 넣어 다려서 따뜻하게 마시면 소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아랫배가 항상 차고 잘 체하는 소음인의 경우는 생강과 함께 다려서 차 대신에 한잔씩 하면 몸도 따뜻하게 녹일 수 있고, 체기도 잘 뚫어줄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청피(靑皮)는 귤(橘)의 미성숙과실의 껍질을 벗겨 말려서 사용하는 것으로 진피(陳皮)와 같이 소화작용이 있지만 간장(肝臟)으로 들어가서 간경락(肝經絡)이 지나가는 옆구리 부위나, 유방부위, 사타구니의 생식기 부위에 울체된 기운을 뚫어준다. 간(肝)은 스트레스를 담당하는 파극지본(罷極之本)으로 청피(靑皮)는 스트레스로 인해서 발생한 체기(滯氣)에 많이 사용할 수 있다. 청피는 진피보다 효과가 더욱 강해서 체질적으로 강건한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요즘같이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밥을 먹다가 체하면 청피(靑皮)를 쓸 수 있다. 진피(陳皮)가 포함된 처방은 너무나 많고, 진피는 임금약(君藥)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신하약(臣藥)으로 무수히 많은 처방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한약재다. 각박한 이 세상에 을(乙)로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무수히 많은 분들 있어서 갑(甲)이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을 갑(甲)질하는 사람은 알아야 할 것이다. 진피(陳皮)처럼 말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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