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두부 기원… 국산 콩의 풍부한 맛
강릉 '' 역사와 맛 지녀
속초 학사평 두부마을 '김영애할머니순두부'
양구 ''은 '착한 식당'으로도 유명
양양 '' 모두부 맛 수준급
두부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진다.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 두부 이야기'다.
교산 허균(蛟山 許筠)은 한평생 풍운아로 살았다.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인생. 강릉은 교산의 외가이자 정신적 고향이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許曄)은 동인의 영수로 경상도관찰사, 중추부동지사 등의 벼슬을 거쳤다. 중추부동지사는 종2품의 당상관. 허엽과 자식 허성(許筬), 허봉(許篈), 허균(許筠), 딸 허난설헌(許蘭雪軒)을 '허 씨 오성'이라고 부른다. 모두 문장이 좋았다. 천재 집안이었던 셈이다.
아버지 허엽은 1563년 삼척부사가 되었다. 지금의 강릉시 초당마을을 자주 지나다가 이 마을 사람들에게 처음 두부 만드는 것을 가르쳤다. 야사다. 두부를 만들려면 간수가 필요하다. 간수와 염전의 청결은 조선초기에도 문제였다. 문종 무렵의 기록에도 "간수가 깨끗하지 않으니 관리자를 처벌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이에 반하여 "염전은 원래 소, 닭 등 짐승이 드나드는 곳이니 염전의 청결을 문제 삼는 것은 곤란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허엽은 간수 대신 바닷물로 두부를 만들면 될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혹자는 허엽의 호 '초당(草堂)'이 초당두부를 만드는 초당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거꾸로 허엽의 호 초당이 두부 만드는 마을 이름 초당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허엽은 '초당두부'의 시작이다.
아버지는 두부 제조법을 알려주고 아들은 음식 인상기를 남겼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부자가 모두 음식에 관해 일가견을 가진 경우는 드물다.
'강원도 두부'를 이야기하면 흔히 '초당두부'를 떠올린다. 가장 오래된 집은 지금도 초당마을 솔숲에 있는 ''다. 입구 간판에 "원조초당두부는 1930년에 고 조동인 할머니가 간수가 아닌 바닷물로 두부를 만들었다"고 써 붙였다. 이미 450년 전에 '삼척부사 허엽'이 바닷물로 초당두부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으니 '처음'은 아니다.
강원도 두부는 '먹고 싶어서 먹었던 음식'이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메밀, 옥수수, 감자, 콩 등을 이용한 음식은 대부분 1960년대 이후 저잣거리로 나온다. 메밀국수, 막국수는 1967년부터 공사를 시작한 소양호 건설현장에서 '상업화' 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막국수, 옥수수막걸리, 올챙이국수, 감자전, 감자옹심이 등은 가난한 강원도 산골에서 어쩔 수 없어서 먹었던 음식이 오늘날 웰빙식품이 된 경우다. 두부도 그러하다.
미시령터널 부근에 '학사평 두부마을'이 있다. '콩꽃마을'이다. ''가 말 그대로 원조집. 순두부 위주로 음식을 내는데 국산 콩의 풍부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속초 갈 때 '아점'으로 추천한다.
''는 메뉴가 풍성하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모두부전골'이 독특하다. 심심한 육수에 모두부를 넣고 끓인 것인데 특이하다. 다른 두부 메뉴들도 좋고 밑반찬도 아주 깔끔하고 맛있다.
'(양양)' '전씨네막국수(인제)'는 막국수 전문점인데 두부가 아주 좋은 경우다. ''는 물 막국수, 비빔막국수와 더불어 모두부 형태로 두부를 내놓는다. 두부와 곁들여 먹는 김장김치가 대단한 수준이다. '전씨네막국수'는 100% 메밀 막국수와 더불어 두부를 내놓는다. 두부전골 형태다. 이른 아침에는 막국수를 내놓기 힘든 경우가 있다. 이때는 두부전골을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인제 백담사 입구의 '' 정식에는 두부구이가 포함되어 있다. 산초기름으로 구워내는 두부구이가 일품이다. 산과 들에 흔한 산초(山椒)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이제는 참 만나기 힘든 식재료가 되었다. 산초 향을 싫어하는 이들은 들기름 두부구이를 선택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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