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리 공룡알 해변과 보죽산이 어우러진 풍광.
우암 송시열이 한시 새긴 탄시암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숨결이 깃든 세연정과 부용동(데일리한국 2015년 3월 3일자 게재) 외에도 보길도에는 볼거리가 많다. 보배로운 보물섬 보길도를 대표하는 해안 절경으로는 탄시암, 예송리, 보옥리 등을 꼽을 수 있다.

고산 윤선도의 정적이었던 우암 송시열(1607~1689)도 보길도와 인연을 맺었다. 우암은 1689년 장희빈 아들(훗날의 경종)의 세자 책봉이 이르다는 뜻으로 상소한 글이 화근이 되어 제주도로 유배 가다가 풍랑을 만나 보길도 해안에 잠시 피신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한시를 바위에 새겨 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송시열 글씐바위'라고도 일컫는 '탄시암'이다. 보길도 동쪽 끝 선백도에서 수풀 우거진 오솔길과 해변 바윗길을 500미터 남짓 걸으면 이곳에 닿는다.

"여든셋 늙은 몸이 거친 파도 만리를 가노라. 한마디 말이 어찌 그리 큰 죄가 되어 세 번이나 쫓겨나니 신세 궁하구나. 북녘 하늘 님을 우러르며 남쪽 바다 믿는 건 바람뿐이네. 담비 갖옷에 옛 은혜 서려있으니 감격하여 외로이 눈물 흘리네."

이러한 뜻으로 그가 바위에 새긴 한시는 이제 찾기 어렵다. 안내판이 아니라면 글씐바위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변색되고 뭉개졌다. 비바람에 씻긴 탓도 있겠으나 서투른 탁본으로 심하게 훼손된 것이라 한다. 다만 기암절벽과 맑은 바다가 어우러진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헛수고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바로 앞으로 소안도가 잡힐 듯하다.

샛바우재 언덕의 전망대에서 굽어본 예송리 해변.
송시열 글씐바위 가는 길 도중에는 통리와 중리해변을 만난다. 통리해변은 백사장 규모가 아담하지만 앞바다 목섬까지 하루 두 번 바닷길이 열려 이색적이고, 중리해변은 고운 모래밭이 넓게 드리우고 송림이 울창해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보길도 으뜸의 비경 지대인 보옥리

예송리는 보길도에서 첫손 꼽히는 해수욕장으로 동글동글한 청환석이 약 1㎞에 걸쳐 깔려 있고 뒤로는 천연기념물 40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예송리 못미처 샛바우재 언덕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예송리 해변과 예작도 전경도 아름답다.

보길도에 가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서남쪽 끝머리의 보옥리가 바로 그곳으로 가는 길도 아름답다. 대풍구미에서 보옥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낙조 풍광이 그림 같아 일몰도로라고도 부른다. 일몰도로 중간 지점에 망끝 전망대가 있다. 팔각정 같은 건물이 우뚝 선 그런 전망대가 아니라 천연 전망대다. 해안 절벽 위에 자리한 넓은 공터로 바다를 전망하기 좋다.

망끝에서 굽어본 바다는 녹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신비한 색상이다. 코앞에 보이는 갈도, 미역섬, 상도 등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하다. 그리고 그 바다로 해가 진다. 푸른빛이 불그스레한 빛으로 바뀌면서 수평선은 해를 삼킨다.

망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해넘이가 그림 같다.
보옥리야말로 보길도가 숨기고 있는 최고의 비경 지대라고 감히 단언한다. 보옥리 마을 주차장에서 바닷가로 내려가다 보면 가느다란 계곡이 바다를 향해 졸졸 흐른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돌을 들추면 가재가 기어 나올 것만 같다. 내려오던 계곡 물은 자갈밭에 이르러 자그마한 천연 풀장을 이룬다. 그리고 이 물은 자갈 밑을 지나 바다로 흘러든다. 오른쪽으로는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 숲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바다로 떨어지는 단물내기폭포

보옥리의 보물은 맑은 계곡도 동백 숲도 아니다. 공룡알 해변으로 알려진 뽀래기 갯돌밭이다. 감탄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해변으로 내려선다. 완도 정도리 구계등도 이만큼 극적이지는 않다. 이곳 갯돌은 엉덩이만한 것에서 주먹만한 것까지 크기가 다양한데 하나같이 타원형으로 둥글둥글하다. 빛깔은 거무튀튀한 것도 있고 불그죽죽한 것도 있으며 점박이도 간혹 보인다. 밀물 때면 드나드는 파도가 갯돌을 쓸면서 내는 '자그르르' 소리가 참으로 신비롭다. 어떤 타악기도 이처럼 환상적인 음색은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공룡알 해변 서쪽 끝에는 보죽산이 우뚝하다. 해발 195미터에 불과하지만 뾰족 솟은 자태가 나무옷 걸친 거대한 수석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뾰족산이라고도 일컫는다. 바닷물 머금은 공룡알과 뾰족산의 기묘한 산세가 어우러진 풍광이 가슴을 울린다.

일행이 여럿이라면 배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아보자. 기섬, 갈마섬, 복생도, 예작도 등 보길도 주변의 새끼 섬들과 보길도 해안의 기암절벽이 탄성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눈길 끄는 것은 단물내기폭포다. 격자봉(적자봉) 남쪽 기슭의 이 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는 점에서 제주도 정방폭포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한결 맵시가 아기자기하다. 일직선으로 밋밋하게 떨어지는 정방폭포와 달리, 울퉁불퉁한 암벽을 타고 여러 단으로 나뉘어 굴러 내리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바위를 적실 정도로 수량이 적지만 비 온 뒤에는 장쾌한 물줄기가 바다를 삼킬 듯 쏟아져 장관이다.

바다 위에서 바라본 송시열 글씐바위.
■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

완도 화흥포항에서 노화도 동천항으로 가는 카페리 하루 10여회, 해남 땅끝에서 노화도 산양진항으로 가는 카페리 하루 약 15회 운항. 노화도에서 보길대교를 건너면 보길도로 들어선다. 노화도 동천항과 보길도 청별(면사무소 소재지)을 오가는 셔틀버스 운행. 청별에서 예송리 및 보옥리 방면 공영버스가 하루 5회씩 운행하며 택시도 다닌다. 자전거를 빌려 섬을 돌아보는 운치도 그만이다.

# 맛있는 집

보옥리의 보옥민박(061-553-6650)은 숙박 손님들에게 어촌정식을 제공한다. 생선조림, 게무침을 비롯하여 신선한 해산물과 나물류, 보말된장국 등을 위주로 차려낸 건강한 천연밥상이 입맛을 돋운다. 시골 할머니집을 연상시키는 포근한 분위기와 우거진 수목과 분재 등으로 꾸민 정원도 정취가 그윽하다.

어촌정식으로 이름난 보옥민박.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