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바위 아래로 진달래 꽃밭이 드리웠다.
꽃밭 아래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숱한 경쟁자들에게 비옥한 땅을 내어준 진달래는 척박하고 건조한 땅을 찾아 산으로 올라와 둥지를 틀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기피하는 산성 토양에도 적응할 줄 아는 강인한 생명력으로 스스로를 지켜왔다. 진달래는 참꽃나무라고도 불린다. 가난하던 시절, 배고픈 민초들이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보릿고개를 넘었다 해서, 먹을 수 있는 진짜 꽃이란 뜻으로 참꽃이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반면, 진달래의 사촌격인 철쭉은 독성이 강해 먹을 수 없으므로 개꽃이라고 불렀다.

진달래를 영어로 Azalea 또는 Korean Rosebay라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진달래의 원산지라는 명확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산 가운데 진달래꽃이 피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시야를 가리는 큰키나무가 없으면서 일정 지역에 넓게 군락을 이룬 곳은 그리 흔하지 않다. 더욱이 꽃밭 속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기에도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과욕까지 부린다면 여수 영취산이야말로 딱 들어맞는 진달래 명산이다.

영취산 곳곳에는 수십 년생 진달래나무가 축구장 140개 크기만큼 넓게 퍼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봉우재 남면의 진달래 군락지가 가장 화려하다. 흥국사 옆 등산로를 따라 40분 남짓 오르면 봉우재이며 여기서 남쪽으로 405m봉(평바위) 및 439m봉까지 진달래 꽃동산이 펼쳐진다. 이곳에 오르면 진달래꽃 저 멀리로 남해의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절경이 기다린다. 영취산 진달래는 3월 말부터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해 4월 초순 무렵에 활짝 피는데 올해에는 4월 3일부터 5일까지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호국사찰 흥국사 벚꽃도 뒤질세라 피고

405m봉은 평평한 바위로 이루어져 평바위라고 불린다.
진달래가 활짝 필 무렵이면 흥국사(興國寺) 일원의 벚꽃도 뒤질세라 피어 고찰의 분위기를 돋운다. 영취산 서남쪽 기슭에 앉아 있는 흥국사는 1195년(고려 명종 2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훗날의 변고(임진왜란)를 예견하고 ‘나라를 흥하게 하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관할하는 전라좌수영 산하의 의승수군(義僧水軍) 700여 명이 왜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운 호국사찰이었다. 그렇다면 ‘두견새가 목 놓아 울다가 피를 토해 물들였다’는 두견화 진달래는, 영취산에서만큼은 두견새가 아니라 수많은 의병들의 피가 서린 것인가.

흥국사는 1560년(조선 명종 15년)에 법수대사가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승병 훈련소 및 주둔지로서 의병 및 승병 항쟁의 중심지가 되면서 법당과 요사가 소실되었다. 그리하여 1624년(인조 2년)에 계특대사가 중창했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증축 및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 1984년 2월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된 흥국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 불조전, 봉황루, 적묵당, 심검당, 응진당 등 20여 동의 목조건물이 있고 보물 9점, 도지정문화재 4점, 문화재자료 800여 점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홍교

보물 396호로 지정된 흥국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물이다. 1624년 대웅전 중건에 참여한 마흔한 분의 승려들이 천일기도를 드리면서 어떤 중생이든 대웅전 문고리를 잡으면 삼악도(축생, 아귀, 지옥)에 떨어짐을 면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서원했다고 한다. 그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문고리를 잡고 소원을 빌었는지 쇠로 만든 문고리가 닳고 닳아 작은 구멍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대웅전 안에 있는 후불탱화는 보물 578호로 지정되었다. 1693년(숙종 19년) 비단천에 색을 입힌 그림으로 크기는 475×406cm이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6보살과 사천왕상, 6대제자, 6분신불 등이 그려져 있다. 이외에 노사나불괘불탱화, 수월관음도, 십육나한도, 목조석가여래삼존상, 강희4년 명동종, 목조지장보살삼존상‧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등도 보물로 지정되었다.

등산객들이 진달래 꽃밭 길을 오르고 있다.
흥국사 일주문 앞에는 아치형 돌다리인 홍교(무지개다리)가 있다. 개울 양 기슭의 바위에 기대어 쌓았으며 부채꼴 모양의 돌을 서로 맞추어 틀어 올린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紅霓)을 이루고 있다. 1639년(조선 인조 17년) 계특대사가 화강석으로 축조한 이 홍교는 전체길이 40미터, 홍예구(虹霓口)의 너비 11.3미터, 내면 너비 3.45미터, 높이 5.5미터에 이르며 벌교 홍교 및 선암사 승선교와 더불어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2년 3월 보물 563호로 지정된 흥국사 홍교는 지금까지 알려진 홍예석교 가운데 가장 높고 길어 더욱 가치가 높다.

여행 메모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천안 분기점-천안논산(25번)고속도로-논산 분기점-호남(25번)고속도로-익산 분기점-익산장수(20번)고속도로-완주 분기점-순천완주(27번)고속도로-동순천 나들목-17번 국도-주삼 교차로-중흥 삼거리를 거쳐 흥국사로 온다.

대중교통은 고속버스나 전라선 열차를 타고 여수로 온 다음, 흥국사로 가는 52번 시내버스 이용.

보물 396호인 흥국사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물이다.
# 맛있는 집

여수시 중앙동 로터리 옆골목에 있는 노래미식당(061-662-3782)은 노래미정식으로 유명하다. 재래식 된장을 풀어 담백하고 시원한 노래미탕 외에 각종 생선회와 해산물 등이 푸짐하게 따르는 노래미정식이 별미다. 한마디로 해물 진수성찬이라 할 만하다. 이 밖에 각종 해산물 메뉴가 다양하다.

여수시 중앙동 로터리 인근의 구백식당(061-662-0900)은 서대회무침과 금풍쉥이구이, 교동의 여흥식당(061-662-6486)은 장어탕과 장어구이, 학동의 원조명신(061-684-5509)은 낙지볶음으로 명성이 높다.


대웅전의 후불탱화는 보물 578호로 지정되었다.
보물 563호인 흥국사 홍교는 홍예석교 가운데 가장 높고 길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