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질환 또한 삼가는 습관이 우선돼야

[이성우 원장]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도 있지만, 정형외과 진료실에는 거북이처럼 목이 굽은 일명 ‘거북이 목’ 환자들도 있다. 그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거북목이라고 들었는데 교정을 할 수 있나요?” 필자의 대답은 보통 이렇다. “ 평소 습관 때문입니다. 스스로 삼가는 쪽으로 습관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TV사극 뿐 아니라 소설도 여러 작가의 손을 거쳐 서점 진열대에 선을 보였다. 이순신과 정도전을 거쳐 유성룡이라는 신중하고도 성찰적인 위인의 됨됨이를 본받자는 분위기가 드높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채워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진단한다. 한편에서는 이를 자신과 타자, 시간과 공간이라는 삶의 원재료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바로잡는 거울로 활용해야 하리라고 역설한다.

모두 옳다.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필자 또한 <징비록>에 대한 정형외과 척추전문의로서의 나름의 소회를 지니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대학시절, 필자를 현재로 이끈 지혜롭고 치밀했던 한 스승의 성실한 자기관리 그리고 더 나아가 환자들의 질환관리 태도를 <징비록>이란 책을 통해 떠올려보는 것이다.

사람은 뭔가에 집중할 때 목을 구부리는 경향이 있다. 대상에 시선을 더 잘 고정시키기 위해서 목을 구부리는 자세를 취하다보면 자연스레 목을 길게 앞으로 빼게 된다. 이런 자세가 굳어져 습관이 되면 쉽게 말해 ‘거북이목’이 된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겠만, 21세기 모바일 시대에는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거나 게임을 밤새 하다보면 거북이목을 닮아갈 확률이 높다.

<징비록>의 ‘징비(懲毖)’는 <시경> 소비편의 ‘예기징이비역환’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 ‘징비록’은 조선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다. 임진왜란 7년의 원인 및 전황을 기록한 책이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집필시기는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1년 정도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거북이목’이라는 말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저 단순히 목 부위만 검사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좁은 시야로 바라본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 “목을 바로잡아서 일자목이나 거북목을 고칠 수 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해 그건 불가능하다. 거북목 증상을 고치려면, 휘어진 척추부터 일자로 바로 잡아야한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한다. 그리고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성룡은 아울러 전황에 대한 경과, 전란 발생의 원인, 조정의 대응에서 드러난 문제점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필자의 스승이셨던 교수님 한 분도 정형외과적인 징비록을 기록하셨다. 적어도 필자가 볼 때는 그랬다. 그 교수님은 매번 수술이 끝나면 본인의 ‘수술노트’를 작성하곤 하셨다. 각각의 수술이 매번 다르므로 각 수술에서 주의할 점, 특이한 점, 수술시 느낀 점을 노트에 깨알같은 글씨로 기록하셨다.

필자도 그때는 잘 몰랐다. 그런데 요즘엔 매번 수술을 하면서 직접 기록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수술노트를 꾸준히 작성하고 있다. 필자의 수술노트도 어쩌면 징비록이랄 수 있을 것이다.

거북이목 환자들은 하늘을 향해 빳빳하게 고개를 들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목 뿐 아니라 척추까지도 오래오래 보전하며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스스로 삼가며 경계하는 마음으로 고개부터 들어야 한다는 것. 이게 바로 환자 스스로 써내려가는 자신만의 징비록이 될 수 있다. ‘징비’해야만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은 거북이목 환자 뿐 아니라 어떤 질환에도 적용될 수 있는 금과옥조일 수 있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수술노트를 쓰던 필자의 스승, 이를 본받아 실천하는 필자 그리고 환자 모두에게 심오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달려라병원 이성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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