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일수록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가 중요

[달려라병원 박재범 원장] 노인들은 원래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잘 안 한다. 진짜로 아프지 않아서 그러는 게 아니란 걸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런데 가족들마저 연세 드신 부모의 통증을 헤아릴 줄 모른다면, 부모들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아파야 한다. 다시 말해, 노인들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나올 때는 몇 년을 참고 참다가 하는 말이란 걸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헤아림이 바로 효도이자 사랑이란 걸 필자도 의사가 된 뒤에야 알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70대 여성 환자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진료실에 왔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으로 미루어, 무릎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서둘러 간단한 진찰과 엑스레이 검사를 했다. 이미 관절염이 상당히 진행되어 어지간한 치료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 심각했다. 생각 끝에 필자가 수술 치료를 권했고,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네요. 적은 보수지만 일도 하고 있죠. 게다가 아들딸들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텐데, 진통제나 주시면 먹으면서 버텨 보렵니다.”

맞다. 드물지 않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의 진료실에서는 어렵지 않게 위와 같은 환자를 만날 수 있다. 이런 환자분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다들 오랜 기간 질환을 앓아 왔다는 것 ▦수술 치료의 필요성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 ▦그러나 자신의 경제적 상황과 자식들 눈치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 등등이다.

노년인구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란 건 대한민국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상상보다 훨씬 많은 노인들이 많지 않은 보수를 받으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 그러다보니 자신의 병을 치료하는 기간에 혹시라도 실직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일하는 노인들은 계약직 육체노동인 경우가 많고, 며칠을 빠지면 해고당할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 자녀들의 지원을 받고 싶어도, 자녀들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알면서 지원을 바란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안타깝고 슬프게도, 노인들은 자신의 병을 꼭꼭 숨긴다. 때론 끝까지 아프지 않다고 거짓말로 가족들을 안심시킨다. 그래서 필자가 노령의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드리는 말씀이 있다. “빨리 치료 받으시고, 회복하셔서 일도 하시고, 손자들도 봐주시는 게 더 좋은 거 아닐까요?”

필자의 전문분야인 정형외과 영역은 생사의 문제라기보다는 통증으로 인한 삶의 질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통증을 경감시켜 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는 젊어지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일도 더 할 수 있게 되고 ▦어지간한 취미활동과 운동도 가능한 상태가 된다.

대부분의 관절ㆍ척추질환은 퇴행성이다. 따라서 치료시기를 놓칠 경우엔 쉬운 말로 ‘큰 공사’가 필요하다. 무조건 치료시기를 늦추는 건 그래서 위험하고 비경제적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치료를 받으면, 그만큼 결과도 더 좋고 비용도 절약된다. 일도 더 잘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건 당연지사.

지금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으면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빨리 병원을 찾아가는 게 오히려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퇴행성 질환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악화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아 계속 몇 년을 병원에 다녀야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론 그게 오히려 자녀들에게 심적, 경제적 부담이 큰 경우일 수 있다. 빨리 치료해서 자녀들의 도움이 필요 없는 상태로 회복하는 게 훨씬 이득일 수 있다는 뜻이다.

세월은 무상하다고들 한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3차원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이 들어 생기는 관절.척추의 퇴행성 질환을 잘 치료하면 남은 삶이 행복해진다. 잘만 치료하면 관절과 척추는 나이에 비해 더 젊어진다. 통증 없는 하루하루는 몸 뿐 아니라 마음도 더 젊게 해줄 수 있다.

단언컨대, 조기에 치료할 병은 암뿐만이 아니다. 퇴행성 관절 .척추 질환도 빨리 치료하는 게 좋다. 그게 바로 제2의 인생을 여는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필자의 당부 하나. 혹시라도 연세 드신 부모님이 이런저런 통증을 숨기고 계신 것은 아닌지 꼭 한번 헤아려보고 확인해 보시라. 바로 그 순간, 부모님의 환한 웃음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달려라병원 박재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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