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델발트 마을 전경.
신기루같은 황홀경이다. 눈앞을 가득 메운 웅장한 빙벽. 아이거 북벽이 전해준 새벽녘 감동은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의 지울 수 없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알프스를 찾으면 산악마을 그린델발트에서는 밤을 보낼 일이다. 새벽녘 어렴풋이 눈을 뜨면 산 등성이로 별과 달이 내려 앉는다. 융프라우 지역의 3대 봉우리인 아이거는 마을을 응시하며 '하얀 거인'처럼 우뚝 서 있다.

아이거는 산악 영화 '노스페이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영화는 초등 등정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청년 등반가들의 도전과 사랑을 담고 있다. 알프스의 3대북벽 중 하나인 아이거 북벽은 한때 등반금지령이 내렸을 정도로 험난한 코스였다.

아이거 북벽 아래서 별과 달을 벗삼아 하룻밤

그 숱한 도전의 삶이 얽힌 봉우리를 이제는 별빛을 벗 삼아 여유롭게 바라본다. 봉우리를 등지고 들어선 그린델발트는 전세계 청춘들이 집결하는 다양한 산악 액티비티의 아지트로 변신했으며 허니무너들도 찾는 낭만의 공간이 됐다. 정상을 향해 도전했던 험난한 산악인들과 알프스마을의 전설은 샬레 지붕을 스치는 바람에 뒤엉켜 있다.

그린델발트 트레킹.
인근 라우터브룬넨과 벵겐이 고즈넉한 마을이라면 융프라우요흐역으로 오르는 기점인 그린델발트는 설산의 쿵쾅거리는 전율을 쫓는 이방인들로 연중 북적거린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를 빌려 인터라겐까지 질주하기도 한다. 여름이면 빙하가 녹은 뤼취넨계곡으로 래프팅 마니아들도 몰려든다. 수천m 설산 속을 가르는 인근 피르스트에서의 패러글라이딩은 인터라켄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패러글라이딩과는 떨림이 다르다.

또 그린델발트 일대는 봄, 가을이면 트래킹, 겨울이면 스키천국으로 변신한다. 각종 액티비티의 보물창고인 그린델발트에서는 거리의 상점들 역시 액티비티 마니아들을 위한 용품들로 화려하게 채워진다.

설산의 짜릿한 전율 쫓는 액티비티의 아지트

업그레이드 된 가슴 서늘한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그린델발트 인근의 마르마르브루후 협곡으로 향한다. 깎아지른 절벽이 양쪽에 내리꽂힌 협곡 사이에는 120m 높이의 점프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점프대 양쪽에는 빙벽들이 날카롭게 솟아 스치기만 해도 몸이 부서질 것같은 공포감을 불러 일으킨다.

협곡 사이에서 뛰어내리는 점프는 이곳 사람들에게 '캐니언 점프(canyon jump)'로 불리며 아래로 급강하한 뒤 매달린 줄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협곡 사이를 가로지르게 된다. 위 아래에 보호장비가 완벽하게 착용되면 서명부터 받는데 대충 훑어보면 '이대로 죽어도 좋다', '어머니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모른다'는 내용이 농담반, 진담 반으로 적혀 있다.

아이거 북벽 아래 산악 열차.
협곡 사이로 번지점프 '이대로 죽어도 좋다'

올려다 보면 알프스의 준봉, 멀리 발 아래로는 마을들이 펼쳐진 사이로 점프를 하게 되는데 단 2초동안 느끼는 쾌감이지만 알프스, 그것도 알프스의 산자락에서 번지점핑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뿌듯하게 만든다.

심장 뛰는 감동의 체험은 그린델발트 인근 간이역 곳곳에서 가능하다. 100년 넘은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쉬니케 플라테에 오르면 야생화를 보며 트래킹을 하는 색다른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이곳 산장에서는 석양의 야외콘서트가 열리기도 하는데 정상 산장에 묵으면 아이거, 융프라우 등 봉우리들이 태양의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얼굴'을 바꾸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노곤한 산행후, 땅거미가 내리면 그린델발트 마을 노천바에 앉아 이곳 전통맥주인 루겐브로이 한잔을 마신다. 한낮에 눈을 지치게 했던 화려한 경관은 알코올에 희석돼 아득하게 뇌리를 스치고 지난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알프스 정상으로 별이 쏟아지는 정경만 바라봐도 그린델발트는 추억이 된다. 융프라우 지역을 찾는다면 아이거와 산악마을의 역동성이 숨쉬는 그린델발트에서 하룻밤 꼭 묵어볼 일이다.

■ 여행메모

피르스트에서의 패러글라이딩.
가는길=취리히까지 대한항공 직항편이 운항중이며 에티하드항공 등 중동지역을 경유하는 항공편도 매일 뜨고 내린다. 중동 경유 항공편의 경우 취리히 외에도 제네바도 취항해 출, 도착이 한결 편리하다. 인터라켄을 경유해 그린델발트에 도착한 뒤 하룻밤 묵으며 융프라우요흐에 오를 수 있다.

숙소=산악마을의 숙소들은 스키시즌이 지나는 5월부터 호텔가격이 저렴해진다. 그린델발트의 벨베데레 호텔은 아이거를 바라보며 하룻밤을 청할 수 있다. 그랜드 레지나 호텔은 외국스타들이 머무는 고급 호텔로 럭셔리 스파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린델발트 롯지에서 머무는 것도 색다른 휴식의 방법이다.

기타정보=그린델발트 등 융프라우 일대의 산악 마을들을 구석구석 즐기거나 마을, 간이역간 트래킹을 하려면 철도 노선을 2~6일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VIP 패스를 구입하면 편리하다. 열차 시간, 숙소 등 상세한 현지정보는 융프라우철도 한국사무소(www.jungfrau.c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이크 체험.

글ㆍ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