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시대 이미 널리 알려지고 즐겨다산 땐 배추김치 곁들인 냉면순조 때 ‘테이크아웃’ 냉면도우래옥ㆍ평양면옥 서울서 유명세

밤에는 숙직하는 군사가 있을 뿐이다. 궁궐 뜰로 산책을 나선다. 나는 조선의 23대 국왕 순조다. ‘순조’라는 이름은 나중에 붙여졌다. 올해 열한 살. 국왕 즉, ‘상(上)’이 되었다. 내 아버지는 정조대왕, 어머니는 후궁 수빈 박 씨다. 노론, 소론 따지는 양반네들 일은 어차피 알지 못할 노릇이다. 안동 김문들은 증조모 정순왕후와 늘 뭔가를 의논하고 있다. 정치니 국사는 그들의 일이다. 궁궐은 따분하다. 할 일도 없고 밤이 되면 입이 심심해진다. 남자인 숙수(熟手)들은 모두 퇴근했다. 냉면을 만들기란 불가능하다.

군직(軍職)에게 냉면을 먹자고 했더니 당연히 “마련할 수 없다”고 한다. 궁궐 밖 민가에서 냉면을 사다 먹기로 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가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냉면을 사러 사람을 보냈는데 뒤에 시립한 사람이 뭔가를 꾸물거리며 숨기고 있다. 삶은 돼지고기다. 그이에게는 냉면을 주지마라 했다. 그이는 돼지고기를 먹을 일이다.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나오는 순조 원년 ‘냉면과 삶은 수육’ 이야기다. 달구경 하던 순조가 냉면을 사다 먹는데 신하 중 하나가 돼지고기 수육을 숨겼더라는 이야기다. 순조는 그이에게는 따로 먹을 것이 있으니 냉면을 주지마라고 했다는데 이건 너무 옹졸하다고 이유원은 지적한다. 불과 11세의 어린 국왕이다. 속 좁다고 표현한 이유원이 오히려 옹졸하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있는 것은 궁궐 밖에 냉면을 파는 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순조 원년은 1800년이다. 이미 200여 년 전에 냉면을 테이크아웃 해줬다니 놀랍다. 그것도 한밤중에. 냉면 고명으로 돼지고기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적혀 있다. 물론 고종 때 기록한 이유원의 <임하필기>가 정확하다는 전제 아래의 이야기다.

냉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이보다 앞선 <다산시문집> 제3권에 나타난다. 다산 정약용은 황해도 해주에 고시관(考試館)으로 왔다가 서흥도호부사 임성운에게 시를 써준다. ‘냉면’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있는 그 시가 <다산시문집>에 남아 있다.

“시월이 되어 서관에 눈이 한자 되게 쌓이면(중략) 손으로 뽑은 냉면에다 시퍼런 배추김치라”라는 구절이다.

시월은 음력이다. 대략 11월이나 12월쯤 된다. 서관은 황해도 해주, 평안도 평양, 의주를 잇는 선이다. 그중 평양과 해주 등 주요한 거점도시를 서관이라 했으니 해주도 무방하다. 이 계절이면 눈이 많이 내린다.

문제는 ‘납조냉면(拉條冷麪)’이란 구절이다. ‘납면(拉麵=라면)’은 국수다. 우리가 ‘라면’이라고 부르지만 중국, 일본인들에게는 라면은 곧 국수다. 우리의 ‘라면’은 기름에 튀긴 ‘유탕라면’이라 해야 마땅하다. 국수는 손으로 길게 뽑는 것이다. ‘납(拉)’은 길게 뽑는다는 뜻이 있다. ‘조(條)’ 흔히 ‘길다’고 해석하는데 ‘끈’ 등을 의미한다. 결국 ‘납조’는 손으로 길게 뽑은 끈 같은 것‘을 말한다. 냉면이되 손으로 길게 늘인 것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조선후기의 그림에도 국수 뽑는 기계가 나온다는 점이다. 기산 김준근의 ‘기산풍속도첩’에는 국수를 눌러서 뽑는 기계가 나온다. 반죽을 얹고 사내가 몸무게 전체를 막대에 의지하고 벽에 발을 걸고 힘들게 국수를 뽑는 장면이다. 손으로 뽑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다산의 시대에도 이미 냉면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민가에서도 심심치 않게 해먹었던 음식이었다. 물론 길거리보다는 서흥도호부사 정도의 고위 공직자 집에서 노루고기와 더불어 먹었던 음식이었다. 이 음식이 바로 20년 후면 순조의 ‘테이크아웃’ 냉면으로 나타난다.

냉면의 고명으로 보이는 ‘숭저벽(菘菹碧)’도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숭저(菘菹)’의 ‘숭(菘)’은 배추다. ‘저(菹)’는 김치나 절임, 젓갈 등을 뜻하니 ‘숭저’는 배추김치다. 이때의 배추는 우리가 만나는 배추와 다르다. 오늘날의 개량종 배추는 녹색 잎사귀와 흰색의 대궁이다. 이때의 배추는 속이 차지 않은 얼갈이배추 정도다. 푸르다. 늦가을 얼갈이배추를 수확한 다음 저장한 배추김치는 ‘서관의 시월’ 정도면 시퍼렇게 익었을 것이다. 그래서 푸르다는 뜻의 ‘벽(碧)’으로 표기했을 것이다. 고춧가루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배추김치가 푸르다. 오늘날 동치미 정도를 얹고 ‘제대로 된 예전 냉면’이라고 주장하는데 틀렸다. 무김치가 아니라 고춧가루를 얹지 않은 배추김치가 맞다. 물론 백김치는 아니다. 푸른 백김치는 없다. 푸르다는 것은 고춧가루를 얹지 않고 별다른 고명을 더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통, 정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평양냉면을 내고 있는 집들을 몇 집 소개한다.

서울에서 비교적 평양냉면에 가까운 냉면을 내고 있는 전통 있는 집은 세 종류다. 하나는 ‘우래옥’이다. 한국전쟁 전에 문을 열었다가 전쟁 통에 문을 닫았다. 곧 다시 개업을 하면서 원래 이름 ‘서북관’을 ‘우래옥’으로 바꿨다. 냉면 값이 비싸다는 평가도 있지만 인기는 꾸준하다. 을지로 통의 ‘우래옥’이 본점이다. 음식 맛은 분점과 다르다.

이른바 ‘장충동 평양면옥’도 평양의 맛을 주장한다. 장충동과 논현동의 두 가게와 분당의 ‘평양면옥’을 맏아들, 원 창업주인 어머니, 그리고 딸이 각각 운영한다. 맛은 일정부분 같으면서도 분명히 다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이 세 가게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