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뼈 맞닿아 생기는 통증…뼈에 무리 가면 발생

정형외과 전문의인 필자가 제주도에 가면 꼭 하는 일이 있다. 유치원생 아들과 함께 말을 타는 것이다. 아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혼자 태울 수는 없고해서 말안장 위에 아들을 태우고 필자도 아들 뒤에 함께 탄다. 그럴 때마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말도 정말 힘들겠다. 허리에 무거운 안장과 사람들을 태우고 계속 흔들면서 눌러대니 등과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누군가는 이런 필자에게 직업병 아니냐고 되묻겠지만, 실제로 말들도 어릴 때부터 승용마로 길러지면 척추에 무리가 많이 간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성인들을 태우는 어린말의 척추 또한 온전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성장이 다 끝나기 전에 말의 등뼈에 무리가 많이 가면 나중에 척추뼈가 서로 닿는 키싱 스파인(kissing spine)상태가 된다. 말의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도 말과 똑 같다. 사례를 살펴보자. 70대 여자환자다. 오래된 허리 및 하지 방사통 때문에 MRI 촬영을 했다. 진단결과, 심하지는 않은 여러 마디 디스크 및 관절의 퇴행성 변화였다. 디스크 치료인 신경주사치료 및 주변 근육의 근막통증 주사치료를 받으며 지냈다. 3~4번의 치료 후에 허리 및 하지 방사통은 많이 호전되어서 만족하며 지냈다. 그런데 한달 뒤 어느 날 필자에게 70대 여자환자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이전보다 통증은 많이 덜해졌어요. 좀 살만 하네요. 근데 허리를 바로 펴면 허리 가운데가 아픈데 이게 좀처럼 낫지 않네요. 이것 좀 낫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필자는 “그래도 많이 나았으니까 약을 잘 복용하고 물리치료 받으면서 잘 지내시라고 말씀드려야 하나?(참고로 필자는 물리치료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한 진단 없이 하는 물리치료는 환자의 시간을 뺏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란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무책임하게 대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환자가 고통스럽다는데 면밀한 재진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시 MRI 사진을 보고 x-ray를 확인했다. 환자가 말한 통증부위와 증상을 참고하며 사진을 살피고 또 살폈다. 그 순간, 필자의 눈에 그 환자의 통증이 무엇 때문인지 원인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니, 번개처럼 스쳐지나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다름아닌 x-ray 및 MRI에서 환자가 불편하다고 하는 부위의 척추뼈 극돌기사이에 변성이 와 있었던 것. 몇 년 전에 다른 환자에게서도 이와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던 필자의 입에서는 외마디 탄성이 터져나왔다. “키싱 스파인(Kissing spine)!” 이 증상은 의학적으로 인터스피너스 버스티스( Interspinous bursitis)라고도 하고, 바스트럽스 디지즈(Baastrup’s disease)라고도 하는데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질환이다.

쉽게 말해, 이 질환은 과도한 척추의 전만(앞으로 볼록하게 굽은 양상/ lordosis)나 디스크의 퇴행성 변화가 원인이다. 이로 인해 척추 극돌기의 퇴행성 변화가 오게 되고, 때문에 극돌기 사이가 서로 닿게 되어 통증을 유발하는 병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말(馬)에게서만 나타나는 병이 아니고 사람한테도 발생하는 병인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워낙 생소한 병이라서 70대 여환자의 통증이 이것 때문이라고 확답하기엔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이럴 땐 환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환자의 대답을 통해 좀 더 정확한 진단을 해나가는 게 상책. 우선 환자에게 필자의 판단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나서 환자의 동의를 얻어 극돌기 사이에 주사치료를 조심스럽게 해드렸다.

그리고 1주일이 흘렀다. 필자 또한 무척이나 결과가 궁금했다. “그 할머니는 통증이 좀 멎으셨을까? 완전히 좋아졌을까?” 마침내 1주일만에 병원을 찾은 그 70대 할머니는 “ 정말 신기하네요. 허리 통증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이젠 하나도 안 아파요. 정말 고맙습니다”란 말로 필자의 마음을 가볍고 후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제주도에 가서 말을 탈 때마다 또는 TV에서 우연히 말(馬)이 나오는 영상을 볼 때마다 그 여자환자가 떠오른다. 키싱 스파인(Kissing spine)이라는 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 사람에게서도 발생하는 드문 질환이란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필자의 진단과 치료로 한 번에 증상이 호전된 그 환자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사람과 말(馬) 모두 무리하면 아픈 법이다.



달려라병원 이성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