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젠성 초마면 한반도 짬뽕으로

복성루
푸젠성 출신 화교 임오군란 때 건너와 일제강점기엔 코스 마지막 식사용 음식
1960년대까지'중화(中華)우동'으로 불려… '짬뽕'이란 단독 메뉴는 1970년대부터
''은 '하얀매운짬뽕'으로 유명… '' 짬뽕엔 화상의 그림자 길게 남아
'' 돼지고기, 홍합 푸짐하게 나와

지금까지 알려진 '짬뽕의 역사'는 대략 이렇다.

짬뽕의 시작은 중국이다. 그중에서도 남방 지역인 푸젠성(福建省)이다. 이 지역 사람들이 일본의 대외 무역의 중심지인 나가사키 지역으로 많이 진출했다. 짬뽕의 뿌리는 중국 '초마면'이고 변형은 일본 나가사키 짬뽕이다. 지금도 나가사키엔 당시 화교가 세운 중식당이 있다. '사해루(四海樓)'다.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인들도 나가사키 짬뽕과 한국 짬뽕 사이의 교류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일본 나가사키 짬뽕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고 있다. 물론 건면(乾麵) 혹은 즉석 생면 스타일이다.

이 지역에는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밥 굶기를 밥 먹듯 하니 '사해루'를 처음 세운 화교 중식당 주인이 유학생 등에게 음식을 나눠주었다. 국수를 만들고 주변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채소와 생선 등을 넣고 간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고향 음식인 초마면과 닮았다. 이게 오늘날 나가사키 짬뽕의 시작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어로 "밥 먹었느냐?"고 묻는 말이 바로 '샤폰, 찬폰'이고 여기서 짬뽕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이다. 푸젠성 출신 화교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찬폰'이 한반도의 인천 등으로 건너와서 '짬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신동양
한반도의 푸젠성 출신 화교들은 대부분 임오군란 때 한반도로 건너왔다. 임오군란은 청일전쟁에 비해 10여년 앞선다. 임오군란 때는 중국 푸젠성 등 남부 지역 사람들도 많이 건너왔지만 청일전쟁 때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산둥성 출신 화교들이 주력이다. 전체적인 숫자도 산둥성 출신들이 많았다. 오늘날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의 고향이 대부분 산둥성인 이유다.

중국 남부에서는 짬뽕의 시작이라고 알려진 초마면 등을 먹지만 북쪽인 산둥성 사람들은 대부분 짜장면의 시작인 '자장미엔(炸醬麵)'을 선호한다. 즉, 한반도의 화교 중 푸젠성 사람들은 초마면을, 산둥성 사람들은 짜장면을 주로 먹는다는 뜻이다. 물론 둘 다 서민들의 간편식이다. 청요릿집에서 주력으로 삼는 중화요리와는 거리가 있다.

짬뽕이나 짜장면 모두 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간편하게 먹었던 음식이다. 해방 이후 한참동안까지도 중식당은 청요릿집으로 불렸고 음식은 코스 식으로 화려하게 제공되었다. 청요릿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대단한 사치였고 접대였다.

오늘날 같은 '짬뽕 전문점' 혹은 짜장면 집 개념은 1960년대를 넘으면서 시작되었다.

밀가루가 귀하던 시절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중국산 밀가루를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유입했다. 경남 구포 지역이 한때 밀, 밀가루를 모아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지역이었다. 밀가루는 여전히 귀했다. 해방 이후에도 밀가루는 귀했다. 만약 밀가루가 흔했다면 한반도의 1950∼60년대 '보릿고개'라는 단어도 없었을 것이다.

빈해원
미 공법(PL) 480조에 의해서 1955년부터 한반도에 미국산 밀이 공급되었다. 밀, 밀가루 음식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반도에 급속히 보급된다. 짜장면의 첨면장이 '춘장'이라는 이름으로 대량 공장 생산, 대량 보급되는 시기도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무렵이다. 짜장면이나 짬뽕 모두 일제강점기에는 코스 음식의 마지막에 나오는 식사용 음식이었다. 화려한 요리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1960년대까지도 짬뽕은 '중화(中華)우동'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였다. 짬뽕이란 이름을 달고, 단독적인 메뉴로 팔린 것은 그 한참 후다. 굳이 그 기원과 역사를 찾자고 하니 임오군란 무렵, 청일전쟁 무렵의 중국 화교 한반도 진출, 중국 음식 초마면의 전래 등을 따질 뿐이다. '짬뽕'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1970년대 무렵부터다.

짬뽕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제일 큰 특징은 매운 맛과 붉은 색이다. 두 번째는 몇몇 채소와 더불어 오징어 등 해물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내륙에서 냉동 해산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다. 그 이전에는 돼지고기 등을 사용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의 등장으로 냉동, 냉장 해산물의 이동이 가능해졌다. 냉동, 냉장 해산물은 건어물의 자리를 대신했다. 첫 번째 등장한 것이 당시에는 흔했던 오징어다.

전북 익산의 ''에서는 '하얀매운짬뽕'을 만날 수 있다. 색깔이 희지만 청양고추 등으로 매운 맛을 냈다. 초마면은 희다. 한국 사람들이 매운 맛을 좋아하니 청양고추 등으로 매운 맛은 냈지만 화교들의 머릿속에 있는 흰 색깔은 포기하지 않았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을 사용하지만 한반도에서는 대신 중국인들이 잘 다루고 한국인들도 좋아하는 돼지고기도 사용했다. 한국과 중국의 기호가 혼란스럽게 섞인 것이다. 금강하구로 유입된 화교들은 일제강점기 후기, 충청도 남부지역과 전북 북부 지역에 정착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 등의 세트장으로도 활용된 군산 ''의 음식에도 화상의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다. 짬뽕은 붉지 않고 희다. 해산물과 채소 등이 적절하게 들어 있다. 고색창연(?)한 내부 분위기도 볼 만하다.

해산물 중 홍합은 중식당의 골칫거리다. 음식의 맛을 강하게 한다. 단점은 상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국물 전체의 맛을 흐린다는 점이다. 국물을 망가뜨릴 가능성도 높다. 돼지고기, 홍합의 사용으로 논쟁이 있었던 가게가 바로 군산의 유명한 점포 ''다. 푸짐한 양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전히 돼지고기, 홍합을 둘러싼 논쟁도 남아 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