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열도의 남단에 숨은 외딴섬

해돋이의 명소 향일암을 품은 돌산도 끝머리 금오산에 오르면, 남쪽으로 길게 늘어선 횡간도-금오도-안도-대부도-소리도 등의 유인도와 여러 무인도들이 남해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30여 개에 이르는 이들 섬 무리를 금오열도라고 일컫는다. 금오산에서 굽어보는 섬들이어서 금오열도라고 하는 건지, 금오열도를 바라보는 산이라서 금오산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를 굳이 따져 뭐하리. 매혹적인 자태로 바다 위에 뜬 채 어서 건너오라고 손짓하니 달려갈 뿐.

여수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금오열도의 남쪽 끝 소리도로 간다. 소리도 역포항에서 마을버스를 타면 이내 섬의 중심지인 연도마을에 이른다. 넓이 6.8㎢ 남짓한 소리도는 대부분의 섬들이 그렇듯 인구가 갈수록 줄고 있다. 1980년만 해도 2,600여 명에 이르던 주민이 이제는 600명가량으로 크게 감소했다.

연안에서는 김, 톳, 우뭇가사리, 미역 등의 해조류가 많이 나고 근해에서는 도미, 전어, 가자미, 멸치 등이 잘 잡힌다. 예전에 호황을 누렸던 전복 양식장은 사라졌지만 자연산 전복은 여전히 딴다. 외딴섬이지만 지하수가 풍부해 생활이 불편하지는 않고 보리, 마늘, 고구마 등 밭농사도 잘되는 편이며 방풍나물, 꼭두서니(천초) 등의 특산물도 자란다.

소리도는 삼국시대에 유배지를 탈출한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들어와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섬 모양이 솔개(소리개)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해서 소리도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현재 지도에는 한자어인 연도(鳶島)로 표기되어 있고 행정상 명칭도 연도다. 그러나 1910년 세워진 등대 이름은 여전히 소리도 등대이며 주민들도 소리도라는 정감 있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바란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비경에 감탄한 해상일주

섬 전역이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소리도는 해식애(海蝕崖)가 발달되어 있다. 긴 세월에 걸쳐 거센 파도에 따른 침식 및 강한 바람에 의한 풍화 작용의 영향을 받아 천태만상 바위들이 해안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이 비경을 제대로 보려면 배를 타고 섬 주위를 빙 돌아야 하지만 찾아오는 외지인이 드물어 유람선은 없다. 그래서 아쉬움을 표하고 있으려니 민박집 주인이 슬그머니 소매를 잡아끈다. 기름 값만 내면 자기 어선으로 한 바퀴 돌아보게 해주겠다는 것. 망설일 까닭이 없다.

소리도 해안은 참으로 멋지다. 이런 비경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의아할 정도다. 해안선 길이가 35.6㎞나 되어 2시간 넘게 출렁이는 파도에 시달려야 했지만 금세 시간이 흘렀다. 뱃사공이 하나하나 이름을 알려준다. 물개바위, 남근바위, 하늘담 뱀대가리, 불상바위, 낟가리바위 등의 이름이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특히 코를 빼어 닮은 콧구멍바위(코굴)와 코끼리가 바다로 긴 코를 늘어뜨린 듯한 코끼리바위, 보물을 감추기 딱 좋고 실제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주민들이 믿는 솔팽이굴 등은 놓치기 아까운 절경이다.

섬 남쪽 끝 대룡단에는 빛이 비치는 거리가 40㎞나 되는 소리도 등대가 위용을 뽐낸다. 등대를 지나 소리도 동쪽으로 돌아가니 섬 최고봉 증봉(230.5m)이 의연하게 솟아 있다. 그러나 뱃사공은 필봉산 시루봉이라고 말한다. 지도상의 표기인 증봉이 아니라 주민들이 대대로 불러온 필봉산 시루봉이라는 이름이 맞을 것이다. 뱃사공은 고려 말에 왜구가 자주 노략질하자 시루봉 정상에 청기와 망루를 세우고 수비대가 주둔했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숨 막힐 듯 장관인 오메가 해넘이

해상일주를 마치고 나서 산책길에 올랐다. 마을에서 30분 남짓 시멘트 길을 걸어 덕포해변에 다다랐다. 자잘한 갯돌들이 몽돌밭을 이룬 해변으로 호젓하게 해수욕을 즐기기에 알맞은 곳이다. 덕포 몽돌밭에서 숲길로 접어들어 20여 분 걸으니 소리도 등대가 반긴다. 등대에서 굽어보는 소룡단(소룡여)의 자태가 신비롭다. 등대가 서있는 대룡단이 용의 머리라면 소룡단은 용의 꼬리인 양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등대에서 20분쯤 내려가면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진 소룡단에 이르는데, 그 중간 지점의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솔팽이굴이 절묘하다. 해식애의 발달로 이루어진 U자형 암벽 중간에 기다란 코를 늘어뜨린 듯한 갯바위가 시퍼런 바닷물로 뛰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솔팽이굴에는 옛날 보물을 가득 실은 네덜란드 상선이 난파되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후 여러 사람들이 보물을 찾으려다 실패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보물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필봉산 허리를 감도는 산길로 들어섰다. 필봉산 정상은 국가시설로 인해 오를 수 없지만 의연한 자태의 봉우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는다. 1시간쯤 걸어 마을 부근 가랑포로 내려섰다. 가랑포해변은 자갈밭과 갯바위, 앞 바다의 까치섬이 어우러져 운치가 그윽하다. 한여름에도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다니 한가롭게 피서를 즐기기에도 그만인 듯싶다.

가랑포에서 연도항 부두로 발길을 옮기자 때마침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다.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아래로 모습을 감추는 석양이 숨 막힐 듯 장관이다. 더욱이 해와 수평선이 오메가(Ω) 모습으로 손잡는 순간을 만나다니……. 해돋이에서도 보기 어려운 오메가 현상을 해넘이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실로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 찾아가는 길

여수항에서 금오도-안도-역포(연도)를 잇는 여객선 하루 2회 운항. 약 2시간 소요. 문의 061-666-8092.

# 맛있는 집

소리도에는 별다른 맛집이 없고 민박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가운데 해녀민텔(061-665-3961)이 권할 만하다. 이 집의 안주인은 제주도 출신의 해녀로 이곳에 왔다가 소리도 총각과 결혼했는데 지금도 물질을 한다. 그래서 직접 채취한 해산물과 산나물 위주로 소박하면서 깔끔한 상차림을 낸다.



글ㆍ사진=신성순(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