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이북 음식 풍부…강릉, 지역 고유 맛 지녀피난민 정착 ‘아바이 순대’ 유명…강릉 옛 큰 고을, 재료 고유 맛 살린 음식들'단천식당','원조김영애할머니순두부','감나무집' 감자옹심이도'권오복분틀막국수' 여러 종류 정갈한 메밀국수

결국 다녀보니, 먹는 게 남는 것이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실제 여행을 다녀보면 “맛집을 다녔던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는 경우가 잦다. 좋았던 기억도 있고 “또 인터넷이나 블로그에게 속았다”는 경우도 많다. 인터넷은 죄가 없다. 숱한 정보들 중에 좋은 정보를 가려내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다. “음식은 인스턴트를 싫어하면서 정보는 인스턴트로 모으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知則爲眞看)”고 했다. 원문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곧 참으로 보인다(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조선시대 문장가 저암 유한준의 글이다. 서화 수집가인 석농 김광국이 서화첩 “석농화원”의 발문으로 저암이 쓴 문장이다.

“밥 한 그릇 먹는데 무슨 그런 요란이냐?”고 하면 역시 밥 한 그릇의 무게밖에 얻지 못한다. “돈 가지고 밥 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역시 돈 가지고 사먹는 밥밖에 얻어먹지 못한다.

음식은, ‘의식주’ 중의 하나라는 범위를 넘어선다. 잘 만든 음식은 한 시대의 모든 문화를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다. 몸을 움직일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밥을 먹는다면 그 정도의 밥 밖에 만나지 못한다.

속초와 강릉은 지근거리의 도시다. 고속도로나 자동차전용도로로 달리면 30분 남짓 걸린다. 그러나 두 도시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어느 쪽이 낫다, 못하다가 아니다. 속초는 야생의 냄새가 살아 있다. 이북 분위기도 짙다. 강릉은 상당히 정리가 되어 있다. 어딘지 모르게 질서가 잡혀 있는 느낌을 준다. 속초는 이북과 가깝다. 현재도 휴전선과 가깝지만 한국전쟁 무렵에는 전선과 가까웠던 도시다. 이북 출신 피난민들이 자리 잡기 좋았던 여건이다. 언젠가 돌아가리라 믿고 전선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속초에 순대 관련 음식이 많은 이유다. 지척 간에 있으니 속초의 아바이순대가 강릉에도 전해졌다. 강릉 시내에도 순대집들이 더러 보인다. 그러나 속초처럼 ‘아바이마을의 순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단천식당’이 방송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 다른 음식점보다 더 맛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같은 값이면 유명 식당에 가겠다고 마음먹는다. 줄이 길다. 옆의 식당들도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복잡하지만 ‘단천식당’ 정도는 아니다. 어느 집을 갈는지는 선택이다.

강릉은 ‘도호부(都護府)’가 있었던 큰 고을이다. 속초, 강릉에 모두 ‘교동(校洞)’이 있다. 교동은 ‘향교말’이다. 향교가 있던 곳이 교동이다. 강릉 교동은 오래된 향교가 있던 곳이다. 속초에는 향교가 없었다. 초, 중, 고등학교가 많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다. 교동과 도호부가 있었던 강릉은 큰 도시다.

속초, 강릉에 모두 이름난 두부집이 있다. 강릉의 ‘원조초당두부’는 그 시작을 삼척부사를 지냈던 초당 허엽과 연관 짓는다. 교산 허균의 아버지다. 이미 5백년 된 이야기다.

두부는 그 유래부터 정확치 않다. 북방 유목민족들의 ‘우유-치즈’에서 ‘콩-두부’가 유래했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다수설이다. 중국인들은 “유안의 두부가 맛있다”는 식으로 ‘중국 두부 기원설’을 주장하지만 정확치는 않다. 두부의 유래부터 흐릿한 판에 ‘삼척부사 허엽의 초당두부’는 전설에 가깝다. 그것도 5백 년 전이라면 더욱 더 신빙성은 떨어진다.

속초의 ‘원조김영애할머니순두부’는 그런 스토리텔링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허망하지는 않다. 속초 시내에서 미시령 터널을 향하다가 오른쪽에서 ‘콩꽃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콩꽃이란 표현은 드물다. 언제 들어 봤는지 기억도 아물아물하다. 그런데 콩꽃이라니. 정겹다. 두부와 콩, 콩과 콩꽃을 연관 지었다. 콩꽃마을의 두부는 아련하고 아름다울 것 같지 않은가?

속초 콩꽃마을의 ‘원조김영애할머니순두부’는 비교적 정리된 도시풍의 냄새가 난다. 깔끔하다. 좋은 식재료로 두부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인근의 콩을 이용한다. 물론 콩꽃으로 만든 두부는 아니다. 이른 아침의 깔끔한 순두부는 도시의 ‘물에 담근 공장제 모두부’와는 다르다. 어느 곳이 더 맛있다고 굳이 따질 일은 아니다.

물어볼 일도 아닌데 굳이 물어봤다. 강릉에는 ‘신동옥옛날분틀메밀국수’라는 집이 있었다. ‘분틀’은 예전에 막국수나 메밀국수, 냉면 등을 만들던 나무 기계다. 이집 군데군데 분틀이 있어서 막국수 마니아들은 이집의 분위기를 즐겼다. 이 식당이 올 초 무렵 느닷없이 “문을 닫았다” “주인이 바뀌었는데 음식은 여전하다”는 등등 말이 많았다. 알고 보니 이름만 바뀌었다. ‘권오복 씨’는 ‘신동옥 씨’의 남편이다. 왜 바뀌었냐고 물어봤다. 대답이 없었다. 그냥 메밀국수만 먹고 나왔다. 언젠가 ‘권오복 씨’에게서 “우리 집은 거피한 메밀녹쌀을 사용하니 막국수가 아니라 메밀국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국산 메밀을 사용하고 여러 종류의 정갈한 메밀국수가 있다. ‘일본 소바 스타일의 메밀국수’도 있다. 속초에는 명태, 코다리 등을 넣은 함흥식 냉면이 유행한다. 이 차이도 참 재미있다.

속초중앙시장은 속초관광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속초관광시장 골목 안에 ‘감나무집’이 있다. 감자옹심이 수제비로 유명해진 집이다. 속초 교동에 있었던 감자옹심이, 감자전 집 ‘사돈에팔촌’은 문을 닫았다. 이제 속초에 가면 옹심이를 먹으러 ‘감나무집’에 갈 일이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