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꼬맹이들끼리 작은 싸움이 벌어질 때면 상대방의 기를 꺽어 줄 요량으로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뭔가 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식카뿐다’란 말을 내뱉는 것을 많이 들었다. 표준어로 바꾸면 ‘식혀버리겠다’ 정도 쯤 된다.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내 뱉었겠지만 무슨 말인지 알았다면 식겁(食怯)했을 것이다. 식겁도 알고 보면 ‘겁을 먹다’란 한자어다. 사람은 주변보다 항상 체온이 높다. 그래서 식으면 죽는다.

이전 칼럼에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선결조건이 물과 불이라고 했다. 한의학적으로 불은 심장(心臟)이 주관한다. 그래서 심장의 불이 꺼지면 사람은 죽는다. 이 불을 군화(君火)라고 한다. 불 중에 임금에 해당되는 불이라는 뜻이다. 이와는 대비되는 불이 있는 데 이를 상화(相火)라고 한다. 군화는 온 몸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서 어디서나 36,5도로 균일하게 하는 불이다. 반면 상화는 과로나 스트레스 염증반응 등으로 몸이 비정상적으로 열이 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래서 상화가 발생하면 몸 전체가 골고루 같은 온도를 띠는 것이 아니라 온도의 편차가 많이 벌어지게 된다. 열은 뜨겁고 가벼워서 위로 치솟는 경향이 있어 위로 열이 나고 아래로 싸늘하게 식어가는 상열하한(上熱下寒)이 상화를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 한의학에서 열을 끈다는 개념은 주로 상화의 불꽃을 가라앉힌다는 의미이다. 청열약은 습기가 끼어 한증막같은 열기를 잡아야 하는지, 사막같이 습기가 없으면서 일시적으로 가벼운 열기를 잡을 건지, 혈(血)이 열을 받아서 코피가 나는지, 멍이 잘 드는지, 열로 인해서 염증반응이 진행되어 그걸 치료해야하는지, 오랫동안 미열이 물러가지 않은 것을 치료할지에 따라 한약이 다 다르게 투여된다.

청열약은 불을 꺼야 하므로 성질이 찬 것들이 많다. 식사를 마치면 위장에서는 음식물을 삭이기 위해 전신의 피가 위장으로 몰려 위장의 온도가 상승하게 되는 데 이를 위장의 부숙(腐熟)기능이라고 한다. 즉 익히고 삭이는 기능에는 꼭 열(熱)이 필요한 데 청열약을 장복하게 되면 위장의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므로 청열약을 사용할 때는 언제나 주의해서 써야 한다. 평소 위장이 안 좋은 분들은 먼저 위장을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는 건위제(健胃劑)를 사용해서 보강한 다음 청열약을 사용해야 된다.

청열사화약(淸熱瀉火藥)은 청대 섭천사(葉天士)가 구분한 위기영혈(衛氣營血)변증에서 볼 때 기분(氣分)에 열이 들었다는 뜻이다. 열로 인해 혈(血)이 졸여지거나 곪게 되는 것 같은 혈분(血分)에는 병이 들지 않는 경우로 열만 치솟아 오르는 경우다. 이 때 석고(石膏)를 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석고다. 주성분이 황산칼슘이다. 석고를 사용할 때는 그대로 쓰거나 구워서 쓴다. 생 걸로 쓰면 피부나 근육에서 나는 열을 잡아주고, 갈증을 없애준다. 구워서 바르는 용도로 쓰면 고름이나 열상(裂傷) 때문에 벌어져 있는 피부 근육 부위가 잘 아물게 된다. 석고는 소양인의 주된 한약이지만 열이 날 때면 많이 사용되는 한약이다. 상한론(傷寒論)에서 석고가 나오는 처방이 4가지 정도 있는데 주치는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활맥(滑脈)이 뜰 때 쓴다고 되어 있다. 주로 백호탕(白虎湯)류에 많이 쓰였다. 사상체질에서도 소양인 조문에서 석고가 많이 보인다. 심지어 양독백호탕(陽毒白虎湯)이나 지황백호탕(地黃白虎湯)에는 1첩에 무려 석고를 한 냥(37.5g)까지 쓰고 하루에 75g까지 쓴다. 양독백호탕은 대변이 꽉 막혀 그 여파로 독소가 피부에 반점을 유발시킬 때 그 독소를 없애기 위해서 사용하고, 지황백호탕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가슴에 울화가 맺혀 가슴이 미어터지고 이보다 더 나가서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고 하는 정신적인 현상이 있을 때 사용한다. 최근에는 소양인 아토피 환자에게 석고와 생지황을 써서 많이 호전된 경우가 있었다. 아토피가 나을 때 팔꿈치나 무릎 뒤쪽에서 각질화된 껍질이 없어지는 상태를 보면 마치 때가 벗겨지듯이 허물이 없어지면서 매끌매끌한 피부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석고의 힘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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