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돼지국밥 원형, 울산 신구 맛집안동ㆍ진주 음식문화권 영향… 밀양 돼지국밥 부산에 전해져울산 '이화원' '함양집' 등 유명

이화원
"(전략) 근년에는 객인(客人,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나오는 수가 전보다 조금 줄었으나, 경술년·신해년·임자년 세 해 동안에 삼포(三浦)에서 쓴 수를 살펴보면 대개 4만 5백여 석(石)이니, 만약에 흉년이 든다면 국가에서는 장차 어떻게 대접하겠습니까? (중략) 양료를 지나치게 받는 것과 배를 잴 때에 중선(中船)을 대선(大船)이라 하고 소선(小船)을 중선이라 하여 외람되게 양료를 받는 것은 다 향통사와 주인왜(主人倭)가 도모한 것입니다.(후략)"

<조선왕조실록> 성종24년(1493년) 윤 5월8일(음력)의 기사다. 제목은 "이극돈이 경상감사로 있을 때 일을 아뢰다"이다.

이 무렵에는 왜인들이 세금을 내고 우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다. 기록을 보면 배의 크기로 고기를 받았으며 이를 베로 바꾸어 세금에 충당했다. 조선으로서는 '삼포'를 열고 왜인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 나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선초기인 세종 조에 이미 이 삼포는 정식으로 왜인들에게 문을 연다.

삼포(三浦)는 지금 동래(東萊)의 부산포(釜山浦)와 웅천(熊川)의 제포(薺浦, 내이포), 그리고 울산(蔚山)의 염포(鹽浦)다. 모두 경상도다. 이곳에 왜인들이 머무는 왜관(倭館)을 두고 왜인의 교통ㆍ거류ㆍ무역을 허용했다. 웅천은 지금의 진해 언저리다. 제포는 진해 웅천동에 있던 포구. 이 삼포는 나중까지 역사에 오르내린다. 중중 때인 1510년, 왜인들은 대마도의 협조를 얻어서 '삼포왜란'을 일으킨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이 지역이 경상우도, 좌도의 끝이기 때문이다. 한양에서 낙동강을 분기점으로 경상도를 보면 왼쪽은 안동-경주 일대이고 오른쪽은 진주를 중심한 지역이다. 좌도의 제일 아래 부분과 우도의 제일 동쪽이 바로 진해, 마산, 부산, 동래, 울산 지역이다. 이 지역의 음식은 모두 멀리는 안동 일대, 가깝게는 진주 일대의 음식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부산은 동래에 속한 작은 포구였다. 부산이 큰 도시가 된 것은 1925년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부산은 대 일본 무역항 노릇을 했다. 한반도에서 착취한 물산들이 부산 일대를 통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다. 역사가 짧으면 좋은 음식이 자리 잡기도 힘들다. 여름 휴가철, 부산, 울산 일대로 여행을 가는 이들은 이른바 '부산음식'의 뿌리에 대해서 한번쯤 되짚어 볼일이다.

동아일보 1935년 5월11일 신문에는 소설가 이무영의 "영남주간기(嶺南走看記)"가 있다. 주인공 '이 형'은 진해에 도착한 후, 함안을 거쳐 의령에 다다른다. 한밤중에 현지에서 신간회 활동을 하는 '하형(河兄)'을 만나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다는 대목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의령에서 '한밤중 냉면 배달'이 가능했다는 뜻이다. 냉면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의령에 냉면이 있었으면 '부산음식, 밀면, 냉면' 역시 부산 인근의 대도시에서 부산으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피난시절 피난민을 통한 유입'은 엉터리다.

돼지국밥도 경상좌도 지역에서 널리 먹었던 음식이다. 당시 큰 도시였고 영남루가 있는 밀양의 돼지국밥이 여전히 유명한 이유가 있다. 대구-경주-밀양 선을 잇는 지역에서는 이미 돼지국밥이나 고기 먹는 문화가 널리 알려졌다. "북에서 피난 온 피난민들이 돼지국밥을 알려주었다"는 말은 억지다.

밀양의 시장 통 안에 가면 몇 번 씩 길을 물어야 겨우 찾을 수 있는 후미진 곳에 '단골집'이 있다. 할머니 몇 분이 운영하는 작고 허름한 가게다. 수육과 돼지국밥이 있다. 방아 잎이 양념으로 나온다. 대단한 맛이나 기품 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돼지국밥의 원형을 보려면 한번쯤 가볼 만하다.

밀양의 '동부식육식당'도 전통이 깊은 집이다. 읍내에서 제법 먼 곳에 있다. 메뉴를 보면 '돼지수백'이 있다. 수육을 중심한 백반이다. 소수육과 돼지수육이 모두 가능하다.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는 것도 가능하다. 메뉴를 잘 보면, 부산의 돼지국밥이 밀양에서 영향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단골집' 수육과 돼지국밥
피난시절, 부산은 한국 경제, 정치, 사회의 중심지였다. 사람이 몰리고, 시장이 서면 국밥집들도 문전성시를 이루게 마련이다. 부산 인근에서 부산으로 유입된 사람들이 자기 고장의 음식으로 문을 열었을 것이다.

부산이 동래에 속한 작은 포구였다면 울산은 경우가 다르다. 울산, 울주군은 오래 전부터 큰 도시였다. 공단이 들어서면서 울산은 급격히 대도시화 되었다. 고래 고기와 각종 회가 좋았던 곳이지만 이제 대도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맛집들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은 한식 전문점이다. 해산물 위주로 밥상을 차리지만, 나물반찬이나 각종 장류들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한상차림을 위주로 각종 코스 요리가 나오는데 해물들과 더불어 각종 장류를 잘 사용한 나물, 밑반찬들도 짭조름하다.

울산의 는 주인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집이다. 주인이 돼지갈비를 구입하여 직접 갈비를 매만진다. 갈비부터 각종 밑반찬까지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울산 시청 앞의 '함양집'은 비빔밥 전문점이다. 함양은 진주 문화권의 경남 함양이다. 이미 80∼90년 전에 문을 연 노포. 진주권의 비빔밥이 일찍 울산으로 진출, 자리를 잡은 경우다. 반가의 음식이다. 비빔밥 위에 계란 지단을 올리고 전복도 한 조각 올린다. 영남 지역에서 '보탕국'이라 부르는 탕국도 그럴 듯하다.

'울산숯불갈비'

'함양집' 비빔밥
'동부식육식당' 돼지수백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