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의 음식 인심은 '두레 밥상'전통

대원식당
"호남 음식에는 개미가 있다"… 호남 특유의 맛, 삭힌 맛 해석

순천 ''다른 데서 찾기 힘든 '진짜 굴젓'일미

해남 '' 김 장아찌 별미, 전골도 수준급

담양 '' 호남밥상의 푸짐함과 깔끔한 솜씨, 떡갈비 유명

전주'' 채소부터 각종 장류 수준급인 뷔페식 한식밥상

대원식당 '진석화젓'
"밥은 하늘이다"는 표현이 있다. 밥이 가장 소중하고 밥은 공평하다는 뜻도 포함한다. 예전에는 먹는 것이 가장 소중했다. "밥이 하늘"이라고 이야기할 때는 늘 호남이 먼저 떠오른다. 호남의 밥 인심, 음식 인심이라고도 이야기한다.

왜 밥, 밥 인심, 음식 인심을 이야기하면 호남이 먼저 떠오를까? 예나 지금이나 호남에는 곡창이 발달했다. 너른 평야가 있고 바다의 생산물도 솔잖게 많다. 산도 적당히 높다. 산에서 나오는 산물도 넉넉하다. 한마디로 먹을거리 대부분이 비교적 넉넉하다. 심한 수탈만 없으면 호남의 먹거리는 넉넉하다.

농경사회는 지역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협업하지 않으면 농사는 불가능했다. 기계화가 되기 전, 사람의 손으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두레'가 없으면 농사를 짓는 것은 힘들었다. 호남의 '밥 한술도 나눠먹고,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인심'은 그래서 가능했을 터이다.

외지 사람들은 "호남에 가면 4인상, 2인상을 내놓는 통에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농경사회의 밥상은 '두레 밥상'이다. 어울려 일하고 밥은 늘 여럿이서 나눠먹는 식이다. 밥상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그릇 하나 놓고 이 음식 저 음식 가리지 않고 나눠먹는 방식이었다. 그 전통이 남아서 호남의 밥상이 되었다.

'밥'은 나눠 먹는 것이고 더불어 먹는 것이다.

함씨네밥상
휴가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가을이 시작되었다. 휴가지 맛집의 마지막으로 호남밥상을 이야기한다.

"호남 음식에는 개미가 있다"고 표현한다. '개미'는 '知味, 지미'가 아닐까, 라고 추정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1670년경에 발간된 안동 장 씨 할머니의 조리서가 바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이 책 이름에 '지미'가 등장한다. 맛, 맛을 안다는 뜻이다. '개미'는 호남 특유의 음식 맛, 삭힌 맛, 남도의 정취가 있는 맛 등으로 해석한다.

분명한 것은 호남의 장맛이 '호남 음식 개미'의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문화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중식(中食)은 불 맛, 일식(日食)은 칼 맛, 한식(韓食)은 삭힌, 발효의 맛"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 중 삭힌 발효의 맛이 바로 호남 음식의 '개미'와 닿아 있다.

레비 스트로스가 말한 한식의 핵심, 발효의 맛은 바로 두장(豆醬), 어장(魚醬)의 맛이다. 콩으로 시작되는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 등과 생선을 삭힌 젓갈의 맛이다. 넓게는 생선을 발효시킨, 삭힌 홍어와 제대로 바람을 맞은 과메기, 잘 말리고 삭힌 굴비의 맛이다. 김치는 채소를 중심으로 발효시킨 음식이다. 김치를 만들 때도 우리는 젓갈을 넣는다. 밥상에는 두장의 핵심인 된장찌개가 놓이고 김치와 젓갈 등이 더불어 자리한다.

서양 음식의 핵심은 소금이다. 왕이 사형수에게 말했다. "그대는 사형수다. 다만 내 입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면 그대를 용서하겠다" 사형수는 조리사였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왕이 다시 말했다. "조건이 있다. 음식을 만들되, 소금은 쓸 수 없다". 사형수는 절망한다.

전통식당
서양 음식을 가장 맛있게 만드는 '양념'은 소금이다. 이에 비하여 한식의 핵심, 한식의 맛은 장맛이다. 우리는 집집마다 각자의 장을 빚어 사용했고 이 장맛이 음식의 맛을 갈랐다. 장독대는 소중했고 장맛의 변화로 "며느리를 잘 봤다" 혹은 "며느리가 잘못 들었다"고 표현했다. "집안이 망하려니 장맛이 변하더라"는 표현도 있다.

늦휴가를 가는 이들, 호남으로 음식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게 몇몇 '장맛이 좋은 집들' '호남 특유의 맛이 살아 있는 밥상'을 내는 집들을 소개한다. 볼거리 중심의 여행과 더불어 호남의 '장맛 투어'도 권할 만하다.

진귀한 식재료가 아니라 흔히 만나는 식재료로 맛있는 밥상을 차려내는 집은 순천의 ''이다. 늘 권하는데, 이집의 '진석화(眞石花)젓'은 다른 곳에서는 만나기 힘들다. 석화는 굴이다. 진석화젓은 '진짜 굴젓'이다. 소금 간으로 굴젓을 담그면 대부분 고춧가루를 사용한다. 고춧가루 없이 젓갈을 담근 후, 2년 정도 두면 고운 갈색의 물이 흘러내린다. 젓갈을 좋아하는 사람은 밥을 비벼먹기도 한다.

웬만큼 젓갈을 많이 본 사람들도 김 장아찌는 만나기 힘들었을 터이다. 단맛과 짭조름한 맛이 더불어 풍부한 음식이다. 손님들이 단맛을 좋아하니 예전에 비해서 퍽 달아졌지만, 해남의 ''에서는 여전히 수준급의 김 장아찌를 내놓는다. ''은 고기 전문점이다. 손님상에서 직접 끓여내는 전골이 수준급인데 더불어 내놓는 김치, 장아찌 등이 조금도 허술하지 않다.

담양의 소쇄원을 가는 사람들은 가는 길에 만나는 ''에 들러도 좋다. 호남밥상의 푸짐함과 더불어 깔끔하게 차려내는 솜씨도 아주 좋다. 한식집인데 떡갈비가 수준급이어서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이집 밥상의 특징은 식당에서 직접 관리하는 장맛에 있다. 제법 넓게 트인 마당에 크고 작은 장독이 여러 개 있다. 상당히 정갈한 음식이다. 장맛이 수준급이니 밥상의 음식도 당연히 맛있다.

성내식당
호남고속도로 전주IC를 지나는 이들에게는 일부러라도 ''을 가보길 권한다. 전주IC에서 불과 5분 거리다. 뷔페식 한식밥상인데 청국장, 간장, 된장, 고추장 등이 흠잡을 데 없다. 조미료 없이 내놓는 음식이 아주 정갈하고 맛있다. 두부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이가 내놓는 밥상이다. 채소부터 각종 장류와 후식까지 수준급이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