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간이역인 다키가와역
낯선 땅에서 경험하는 여행의 살가움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더욱 강렬하다. 홋카이도 비에이는 일본사람들에게 꽃구경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마을을 채색하는 것은 온통 아기자기한 꽃들이다. 전원 풍경을 오가는 열차와 꽃, 유럽풍 마을 등 잔잔하고 탐스러운 세상이 펼쳐진다.

삿포로, 오타루로 대변되는 홋카이도의 낭만적인 정서는 중심부로 다가설수록 좀 더 시골스럽고 아늑하다. 비에이는 예술가와 자연 애호가들이 사랑한 땅이다. 사진 작가 마에다 신조의 갤러리를 비롯해 마을 곳곳에 아트 갤러리와 앙증맞은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비에이는 역앞 풍경부터가 정감 넘친다. 유럽풍의 마을에는 파스텔 톤으로 단장된 건물들이 늘어섰다. 해질 무렵이면 가로등 불빛이 촉촉하게 마을을 적신다. 소담스런 집들에는 건축 연도가 지붕아래 새겨져 있다. 스위스의 샬레 가옥들이 세모지붕아래 ‘나이’를 써놓아 고풍스러움을 더했듯 이 마을도 세월의 더께가 어깨너머로 느껴진다. 역 앞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고 그 자전거를 타고 언덕 꽃밭 구경에 나설 수 있다.

수십여종 꽃이 흐드러진 언덕들

여름을 단장했던 라벤더가 지고 나면 10월까지 사루비아, 해바라기 세상이다. 사계절을 의미하는 시키사이노오카 언덕은 수십여종의 꽃이 구릉을 가득메운다. 전기차를 타고 꽃밭을 오갈 정도다. 푸른 풀밭과 가을꽃 뒤로는 다이세쓰산의 산자락이 물결처럼 흐른다. 비에이에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신에이의 언덕’ 외에도 CF의 배경이 된 각종 테마나무들이 자태를 뽐낸다..

비에이의 해바라기 꽃밭
이곳에서는 비에이와 인근 후라노를 오가는 테마열차가 또 명물이다. 노로코호로 불리는 열차는 전원풍경이 가득한 마을과 간이역을 가로지른다. 창을 바라보고 나무의자가 놓여있는 것도, 손으로 줄을 잡아당겨야 열리는 오래된 창문도 분위기 넘친다. 창밖으로는 황금들판과 꽃밭세상이다.

일본 최대 다이세쯔산 국립공원

비에이를 품은 다이세쯔산 일대는 커다란 품안에 일본의 은밀한 자연을 품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이세쯔산 국립공원의 규모는 2309km²로 일본 최대 규모다. 2000m가 넘는 준봉들 가운데 홋카이도에서 가장 높은 아사히다케 봉우리(2290m) 역시 그 한 쪽에 위치했다. 산등성이 초입 산장에는 아사히다케 온천이 솟고, 구름인지 연기인지 분간 안 되는 길목에는 고산식물과 야생동물이 얼굴을 내민다. 산 전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영험한 봉우리 주변은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산 아래가 맑더라도 비옷은 필수. 1100m~1600m 구간을 오가는 로프웨이의 종착역에는 장화를 빌려주기까지 한다. 정상을 에두르는 길에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가가미, 스미타미 등의 산정 연못까지 아득한 길은 뻗어 있다. 이곳에서 구름을 헤치며 걷는 묘미가 또 색다르다.

다이세쯔산은 봉우리를 흐르는 구름만큼이나 계절이 빠르다. 8월말 도쿄의 날씨는 35도. 이곳은 긴팔 옷을 덧입어도 찬 기운이 느껴진다. 6월에 시작된 봄은 8월말이면 이미 가을을 맞는다. 산자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키 작은 관목에도 단풍이 물든다. 정상부근에는 9월이면 첫눈 소식이 전해진다.

추억의 노로코 열차
비에이와 다이세쯔산 어느 곳에서 잠을 청하든 홋카이도의 싱그러움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꽃향기에 젖은, 숲 냄새로 채워진 밤하늘의 공기만은 청량하게 다가선다.

여행 메모

▲가는길=인천에서 삿포로 신치토세 공항으로 직항편이 운항중이다. 삿포로에서 비에이까지는 아사히카와를 경유한다. 타키가와역을 경유해 단칸짜리 열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삿포로에서 비에이까지는 열차로 2시간~2시간 30분 소요.

▲숙소, 음식=다이세쯔산 초입에 온천과 어우러진 숙소들이 있다. 비에이 역앞에서 묵으며 자전거를 타고 시내구경에 나설 수도 있다. 홋카이도의 관문 도시인 삿포로 등은 라면과 맥주로 유명한 곳이다. 라면골목인 라멘요코초에서 맥주가 곁들여진 다양한 라면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다소 비싸나 이곳 명물인 털게 요리를 맛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기타정보=일본의 열차는 큰 불편 없이 여행도 하고 관광도 즐길 수 있는 패스들이 꽤 잘 갖춰져 있다. 단칸짜리 열차나 테마열차 모두 일본 철도 패스인 'JR패스'로 이용할 수 있다. 홋카이도내 이동은 역과 연계된 렌트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부분의 역에는 이미 한국어 안내판이 설치돼 있으며 작은 호텔에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수십여종의 꽃으로 단장된 시키사이노오카 언덕
유럽풍 분위기의 비에이 마을

글ㆍ사진=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aular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