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품이 어우러진 혼무라지구
우리 땅에도 이런 섬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좁고 오래된 시골마을에 들어서면 한 편의 예술작품과 조우하는 섬 말이다. 시코쿠 가가와현 세토내해의 나오시마는 '예술의 섬'이다. 오래된 빈집에 미술가들은 정성이 깃든 현대작품을 꾸몄고, 건축미가 도드라진 미술관들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다카마츠항을 벗어나니 정신이 아득하다. 한 여행 잡지(콩드 나스트 트래블러)에서 나오시마를 '꼭 가볼만한 세계 7대 명소'로 선정했다는 소문부터가 달콤하다. 유람선 갑판 위에는 가로등과 벤치가 놓여 있고, 섬으로 향하는 청춘들은 날 선 바람에도 대부분 달뜬 얼굴이다. 웬만한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던 섬마을은 10여년 만에 가가와현의 새로운 명물이 됐다. 섬 속의 예술작품을 만나기 위한 여행에도 훈풍이 불었다.

폐허의 섬에 '미'의 온기가 깃들다

멀리 외관으로만 보여지는 섬은 평범하다. 바다를 지나며 스쳐간 세토내해의 섬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높은 굴뚝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나오시마는 한때 구리 제련소가 있던 섬. 90년대까지만 해도 외면됐던 폐허의 땅에 한 기업가와 건축가의 손길이 닿으면서 변신은 시작된다. 1989년부터 시작된 재생 프로젝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고, 여의도만한 섬에는 한해 3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나오시마 미야노무라 포구에 닿으면 '예술의 섬'의 흔적은 도드라진다. 사진 속에서 봤던 야요이 구사마의 붉은 '호박'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순환버스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빌려 섬 깊숙이 들어서면 평범했던 섬은 숨겨진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신사를 개조한 아트하우스
포구 반대쪽 혼무라 지구에서는 섬마을과 예술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보여준다. 섬 안의 기교 넘치는 미술관들 보다 이곳의 가옥들은 나오시마의 가치를 더욱 살갑게 덧칠한다. 삼나무를 태워 담장을 세운 갈색 골목길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100년이 넘은 오래된 빈 집과 염전창고 등이 복원돼 현대미술작품이 녹아들었다. '이에 프로젝트'로 불리는 아트하우스 프로젝트는 단순히 예술가의 손길만 깃든 것은 아니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작품에 참여해 숨결을 불어 넣었다. 작품에서 만나는 숫자 하나, 공간 하나에도 섬마을의 자취와 예술을 엮으려는 노력은 스며 있다. 언뜻보면 이질적인 현대작품들은 이미 어촌마을의 일부가 됐다.

신사를 개조한 '미나미데라'는 그중 단연 돋보인다. '빛의 작가' 제임스 터넬의 솜씨가 발현된 작품으로 허름한 외관의 내부에 들어서면 아득해지는 공간과 빛의 세계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7개의 아트하우스를 둘러보는 티켓(긴자는 별도)이 1000엔. 여행자들은 천천히 마을길을 거닐거나 자전거를 빌려 골목을 누빈다. 아기자기한 골목에는 담장 낮은 가게와 민박집도 들어서 있다. 골목을 벗어나면 작은 부두로 연결된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베네세하우스와 지중미술관을 건립하며 섬에 현대예술의 이정표를 찍었다. 나오시마 재생 프로젝트의 커다란 산물인 베네세 하우스는 바다를 안고 고즈넉한 해변에 위치해 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숙소, 미술관, 레스토랑은 다소 이국적인 자취로 섬을 단장한다. 건물 안팎과 해변가에는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2004년 설립된 지중 미술관은 독특한 형태가 눈길을 끈다. 웅대한 외관이 아닌 땅 속에 둥지를 튼 미술관은 그 자체가 훌륭한 작품이다.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는데 빛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현란하다. 자연광에 노출된 작품들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작품 하나하나를 위해 설계된 미술관은 작품 수는 적어도 큰 잔영으로 기억을 채운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베네세하우스
포구로 돌아가는 길에도 눈은 쉴 틈이 없다. 미야노무라 포구 앞 목욕탕 역시 실제 공중목욕탕을 개조해 독특한 디자인으로 꾸며졌다. 일본 각지의 물품들이 벽을 채운 재미있는 모습이다.

여행메모

▲가는길=인천공항에서 다카마쓰와 마츠야마까지 아시아나 직항편이 운항중이다. 다카마쓰로 입국해 마츠야마로 이동한뒤 출국하는 이동코스가 적당하다. 나오시마로 가는 배편은 다카마쓰 선포트 지역에서 수시로 출발한다. 항구가 JR 열차역과 도보로 연결돼 있어 이동이 편리하다. 나오시마에서는 순환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숙소=다카마쓰에는 선포트 지역의 젠니쿠호텔 클레멘트 다카마쓰가 시내이동이나 나오시마행 배편을 이용하기에 좋다. 나오시마의 혼무라 지역에서 민박을 하며 하룻밤 묵는 것도 독특한 체험이 될 듯. 나루토 해협에 위치한 나루토 그랜드호텔은 전통숙소 시설에 바다를 바라보는 노천탕을 갖추고 있다.


가가와현의 세토대교
혼무라 지구의 어촌풍경
현대작품으로 재구성된 목욕탕.
나오시마 해변에 들어선 야요이 구사마의-호박-작품.
호박 작품이 깃든 앙증맞은 골목풍경.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