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 음식 기본… 전통식 장 사라져

함씨네밥상
쉽고 편하게 만든 장 '개량' 아닌 '개악'… 재래 전통 맛 없고 감칠맛·단맛 넘쳐
'횡재먹거리한우' 제대로 띄운 청국장찌개… '' '선동' 청국장·된장 수준급
'' 된장·간장·청국장 두루 잘해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이 발생했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진지하다고 해야 할지 헛갈리는 이야기다. 선조는 이미 임진왜란 초기 피난길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임진강을 건너는데 "겨우 상(上, 국왕 선조)의 반찬은 구했으나 동궁과 기타 여러 궁중의 어른들, 대신들의 음식을 구하지 못했다. 동궁도 반찬 없이 밥을 먹었다"고 했다.

정유재란이 닥쳤다. 또 피난을 가야 한다. 피난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음식, 식재료는 '장(醬)'이다. 마침 궁중의 대신 중 신잡이 있다. 평안도절도사를 지냈다. 피난 예정지인 평안도 사정에 밝다. 신잡을 미리 보내 군량과 더불어 '장'을 챙기기로 한다. 뜬금없는 반대의견이 나온다. 신잡은 '申(신)' 씨다. '신'은 '매울 辛(신)'과 발음이 같다. 장은 매우면 망친 것이다. '신일(辛日)에는 장을 담그지 않는다. '신불합장(辛不合醬)'의 뜻이다. 조선 후기의 기록 <연려실기술>이나 <용사일록> 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의 소중함'을 엿볼 수 있다. 피난길에도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장이다. 장만 있으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선조들은 장을 이토록 소중하게 여겼다.

고려시대에는 거란의 침입이 있었다. 많은 백성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음식물을 챙기기 힘들다. 조정에서는 백성들에게 된장을 공급한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가뭄이나 장마, 흉년이 들면 국가에서는 메밀 등 곡물과 더불어 반드시 장을 마련했다.

안동할매청국장
태종 11년(1411년) 11월 25일, 황해도 감사의 보고다. 흉년을 맞아 각 고을에 있는 묵은 콩 5백석으로 장을 담가 백성을 구제하겠다고 한다. 궁중이나 민간 모두 음식의 기본은 장이었다.

몇 해 동안 '우리 장'을 찾아 다녔다. 방송에서는, 그릇에 담아서 예쁜 음식, 맛있는 음식만 내세운다. 출연자들도 맛있다고 입맛을 다신다. 그 맛은 감칠맛과 단맛이다. 장의 맛은 모두 잊었다. "장맛은 집집마다 다르다"고 했다. 장이 음식의 기본이다. 장이 달라야 다양한 음식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좋은 장, 맛있는 장을 찾고 싶었다. 이제 좋은 장, 제대로 된 장은 사라지고 있다.

장은, 한자로 '醬'이라고 쓰고 술은 '주(酒)', 초(식초)는 '醋' 혹은 '酢'라고 쓴다. 이 모든 글자에 '유(酉)'가 들어 있다. '유'는 동물 '닭'을 뜻하지만 글자의 모습은 술독에서 따왔다. 간장, 술, 된장 등을 넣는 독의 모습이 바로 '酉유'가 되었다. 그래서 간장, 술, 된장을 뜻하는 한자에는 모두 '유酉'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젠 술, 식초, 장을 담그면서 독을 이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재래 전통 장'을 만드는 곳에서도 모두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한다. 가마솥을 사용하는 곳도 드물다. 불을 지피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장작을 사용했지만, 이젠 전기 혹은 가스 불 등으로 끓인다. 콩의 품종도 달라졌고 소금도 달라졌다. 메주를 만들 때 바람이 통하는 곳에 메주를 거는 경우는 드물다. 모두 열풍 건조를 하거나 인위적으로 온도를 높인 건조실에서 메주를 띄운다. '개량'되었다고 하지만 '개악(改惡)'일 때도 많다. '개량'은 일하는 사람들의 몸이 편해졌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다. 식재료, 음식의 질이 개량된 것이 아니다. 만들기 편해졌다는 뜻이다. 그동안 음식의 깊이, 맛은 모두 개악되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장을 만드는 곳들도 엉뚱하게 일본 방식일 때가 많다. 메주를 만들고 물, 소금을 섞어서 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삶은 콩에 '코지(국, 麴)'를 입힌다. 콩 하나하나에 균을 입히는 식이다. 이렇게 띄운 콩알들을 모아서 장을 담는다. 얼핏 보면 과학적이고 개량된 방법 같다. 일본 된장 '미소'를 만드는 방식이다. "잡균이 들어가지 않으니 된장의 질과 양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된장은 단맛이 강하고 짠맛은 약하다. 장의 깊은 맛은 없다. 만드는 기간도 퍽 짧다. 2∼3개월이면 먹을 정도의 된장을 얻을 수 있다. 색깔도 밝다. 우리 된장은 메주 만드는데 2∼3달이 걸린다. 소금물에 메주를 넣고 몇 달을 기다린 다음, 장 가르기를 한다. 된장, 간장을 분리, 숙성시키는데 또 1년 이상이 걸린다. 제대로 된 장을 얻는 방법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방심하면 장을 망치기 일쑤다.

횡재먹거리한우 청국장찌개
일본식 미소된장은 정확한 레시피가 있고 실패 확률도 낮다. 지방의 상당수 '전통 된장, 간장 제조업체'에서 이런 방식을 따른다. 들척지근한 맛이다. 된장 특유의 칼칼한 짠맛은 없다.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다. 몇 달 만에 만든 장의 영양이 더 좋다는 말만 되뇐다.

청국장도 고유의 맛을 잊은 지 오래다. 모두들 냄새가 나지 않는, 깊은 맛이 없이 달기만 청국장을 찾는다. 인공적인 균을 이용해 적당하게 발효시킨 청국장이다.

경북 영주 풍기의 '횡재먹거리한우'에서는 제대로 띄운 청국장찌개를 내놓는다. 고기 집은 다른 반찬이나 장류는 수준 이하일 때가 많다. 이 집은 고기 가격도 싸고 질도 수준급이다. 감동적인 것은 청국장이 예전의 향이 강한 것이라는 점이다.

성북동의 ''도 청국장찌개가 좋다. '선동'은 된장찌개와 비빔밥이 좋은 집이다. 두 집 모두 전형적인 '밥집'이다.

전주IC부근의 ''도 된장, 간장, 청국장 등이 아주 좋은 집이다. 콩을 잘 다루는 주인이 콩 관련 발효음식과 두부 등을 수준급으로 마련한다.

선동 비빔밥과 된장찌개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dasani8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