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때나 장마철에 등산을 하다보면 지천으로 깔린 하얀색이나 보라색을 띤 예쁜 도라지꽃을 볼 수 있다. 제법 줄기가 굵고 키가 커서 3∼4년 근은 족히 될 법해서 캐보면 뿌리가 새끼손가락의 한 마디처럼 가늘고 짧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심어보지만 잘 살아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늦가을로 접어들면 어르신들의 기침소리가 밤낮없이 고즈넉하게 서리 내린 산야를 냅다 가로지른다. 그럴 양이면 우리네 어머님들은 겨울철 불어닥칠 감기를 예방할 요량으로 배와 꿀, 도라지와 생강, 대추를 준비해서 배 속을 파내고 나머지 재료를 넣고 중탕으로 오랜 시간 가마솥에서 배를 쪄 내서 즙을 내서 먹인다. 요즘 슈퍼스타-K나 K-Pop Star같은 굵직굵직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참가자 중에서 많은 연습으로 컨디션조절에 실패해서 정작 경연 당일 목이 붓거나 아파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사람들을 보면 많이 안타깝다. 필자의 한의원에도 성악하시거나 목소리를 과도하게 써서 목이 아픈 환자들이 많이 온다. 대개는 당장 공연을 해야 하거나 2∼3일 정도 목을 써야 하는 경우인데 이 때는 임기응변으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매침(埋鍼)이라고 스티카 안에 침이 있어서 혈자리에 꼽아서 본인이 수시로 혈자리를 자극할 수 있도록 한 침이 있는데 그걸 2∼3개 혈자리에 꼽고 수시로 누르게 하면 거짓말같이 목이 아파 발성이 안 되는 것이 사라지게 된다. 물론 2∼3일치 한약을 달여주는데 주된 한약이 오늘 말하려는 청화열담약(淸化熱痰藥)이다. 청화열담약은 열담(熱痰) 즉 열 때문에 진액이 졸여져서 가래가 된 것을 치료하는 한약이라 그 성질이 차거나 서늘한 한량(寒凉)할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폐의 열기를 잡고 진액이 졸아 들어 건조한 것을 촉촉하게 해줘서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해 주고 뭉친 것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열이 너무 강하면 열을 끄는 청열사화약(淸熱瀉火藥)과 함께 써야 하고, 진액이 너무 말랐으면 음분을 보해서 건조한 폐를 윤택하게 하는 양음윤폐약(養陰潤肺藥)과 함께 써야 한다. 도라지 즉 길경(桔梗)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 평소에도 많이 먹는 음식 중의 하나다. 제사상이나 비빔밥에는 반드시 들어가는데 다른 한약과 달리 성질이 차거나 서늘하지 않기 때문에 음식으로 섭취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독은 없고 맛이 쓰고 맵다(苦辛). 맵고 알알한 맛이 싫은 사람은 물에 반나절 담갔다가 먹기도 한다. 도라지는 오직 폐경(肺經)으로만 들어간다. 동의보감에서 길경을 보면 ‘도라지는 모든 한약기운을 끌고 위로만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다. 기혈도 끌어올린다. (한약의 기운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한약이라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인경약(引經藥)이다’고 했다. 보통 한약은 작용하는 부위가 정해져 있지만 때로는 나룻배인 인경약을 타고 다른 곳까지 가서 질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이 때 사용되는 것이 인경약(引經藥)의 개념이다. 동의보감 탕액편 ‘제경인도(諸經引導)’에 보면 12경락의 인경약이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길경의 주치는 선폐이인(宣肺利咽), 거담배농(祛痰排膿)이다. 폐를 잘 숨 쉬게 해주고, 목을 부드럽게 해주며, 가래와 농(膿)을 배출한다고 되어있다. 길경은 성질이 치우치지 않아 한열(寒熱)에 관계없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목이 아프고 목소리가 안 나올 때 두루두루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약재다. 일반적으로 처방을 할 때 가장 불편한 증상인 주소증(主訴症)외에 부가적으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목이 아프면 길경과 몇 가지 한약이 부가적으로 더 처방 속에 집어넣게 된다. 이것을 가미(加味) 혹은 가감(加減)한다라고 하는데 가미(加味)는 한약을 첨가하는 것이고, 가감(加減)은 주처방에서 한약을 넣고 빼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는 길경과 지각, 목이 아플 때는 길경과 감초를 기본적으로 가미한다. 폐옹(肺癰, 폐에 농이 찬 것)으로 가래와 함께 고름과 피를 토할 때 작약(芍藥), 지실(枳實)과 함께 쓰는데 배농산(排膿散)이라는 처방이다. 농을 잘 배출한다는 뜻이다.

김철규 하늘꽃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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