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

건장하고 활기 넘치는 중년남자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무릎에 물이 자꾸 차서 MRI검사를 받고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은 환자였다. 수술까지 할 정도로 심해졌지만 수술만큼은 절대 할 수 없다며 비수술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 정형외과 무릎 전문의인 필자를 찾아온 이 날도 상태가 확연히 좋아지지 않아 약간은 실망을 한 표정이었다.

“원장님은 안 믿으시겠지만 한번 들어봐 주세요. 어느 고명하신 스님이 퇴행성관절염에 특효라고 비법을 하나 가르쳐주셨는데요. 죽은 지 3년 이상 된 노루의 뼈를 푹 고아 즙을 내어 먹으라고 하네요. 냄새나 맛 때문에 너무나 먹기 힘들지만 참고 먹기만 하면 정말 효과가 있다는데요.” 그 환자는 실제로 그 스님 비법대로 얼마 전 부터 실제로 노루뼈를 먹고 있다고 했다. 건강에 대한 환자의 절박하고 필사적인 마음이 느껴져서 순간적으로 의사로서의 판단과 설명도 잊은 채 그냥 듣고만 있었다.

퇴행성관절염은 어떻게 보면 불치병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다. 연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없어지기만 할 뿐, 수술이 아니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다시 재생되지 않기 때문.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인공관절수술을 하면 되지만, 인공관절수술이라는 단어는 퇴행성관절염이 악화돼 걸을 수조차 없어서 수술대에 오르기 전 까지 환자들에게 금기어나 마찬가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암이나 그 외 모든 난치병ㆍ불치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이 퇴행성관절염에서도 나타난다. 그건 바로 음식이나 건강식품 중에서 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을 거라는 믿음. 지금 이 글을 읽는 중장년층 독자들 모두 한 번쯤은 이런 주제가 매스컴이나 지인들 입에서 흘러나올 때 분명히 귀가 쫑긋해졌으리라. 하나의 예를 들자면 글루코사민이 아주 대표적이다.

건강식품의 대명사처럼 여겨진 글루코사민이 사실은 벌써 5년 전에 보건의료연구원에서 관절염 치료에 효과가 없다고 발표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도 크게 다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오히려 백화점이나 마트에 있는 건강식품 코너에서 크게 진열되고 계속해서 잘 팔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유는 뭘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보는 우리네 마음가짐 때문인 듯하다. 실제로 인터넷에 ‘퇴행성관절염’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병에 대한 설명이나 병원홍보가 절반 정도 보이고 나머지 절반은 뭘 먹으면 좋다는 건강식품 관련 회사들의 광고로 채워져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너무 높아지다 보니 방송에서도 이런 주제는 단골로 다루어진다. 의학계에 종사하는 저명인사들도 TV에 출연해 이를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글루코사민 효능에 대한 과학적이고 엄밀한 설명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어떤 방송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정확하지 않은 다양한 답변들(예를 들면 관절염에 좋은 음식 10가지라고 리스트를 제시하고, 뼈를 튼튼하게 하는 음식들을 설명하는 경우. 명확한 근거는 전혀 없이 고전문헌을 언급하면서 먹다보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하고도 무책임한 대답 등등)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의 마음을 안심시켜주는 선생님들은 대개 인기가 좋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저런 방송국마다 고정 출연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필자 같은 의사는 방송에 그리 적합하지 않고 인기도 없는 의사인 모양이다. 필자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 간혹 나가서 이런저런 증상들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그 때 마다 꼭 ‘무엇을 먹으면 관절염에 도움이 되나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런 질문에 필자는 한결같은 대답을 한다. “뭘 먹어도 관절염을 좋아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방송이 아니라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 퇴행성관절염을 진단받으면 열 명 중 다섯은 ‘앞으로 뭘 먹어야 도움이 되나요?’라든지 ‘영양제를 하나 샀는데 이게 도움이 될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그 때도 역시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현재까지 관절염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관절염이 나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방법만 있습니다. 그건 바로 무릎 주변 근육을 튼튼하게 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지요.”

필자의 거두절미ㆍ무미건조한 대답에 환자들이 얼마나 실망할지를 필자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실, 필자도 그렇게 말하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솔직히 하루 빨리 약이 아닌 관절염에 좋은 식품이 개발되어 필자의 환자나 가족에게도 권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관절염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기도 하다. “무슨무슨 약이 관절염 치료에 그렇게 좋다네요”라며 환자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희망도 안겨주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닌 것을 어쩌랴.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도 잘 팔리는 그 건강식품은 관절염에 있어서만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퇴행성관절염 환자들을 속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뜻. 효심 지극한 자녀들이 호주나 미국 같은 나라에서 우편으로 보내주는 글루코사민도 마찬가지. 외제라서 약효가 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호주산이나 미제나 효과가 없기는 둘 다 똑같다.

환자들이 실망할까봐 적당히 기분을 맞춰주는 게 오히려 환자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란 걸 필자는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인기 없는 길을 외롭고도 재미없게 묵묵히 가고 있다. 대신에 퇴행성관절염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한 마디만 하고 싶다. “제발 명절 선물로 관절염에 좋다는 건강식품은 하지 마세요. 그 돈으로 실내자전거 좋은 거 하나 사드리면 분명 효과 있을 겁니다.”



달려라병원 손보경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