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본 큐슈에 가면 몸과 마음이 느긋해진다. 온천 수증기 속 몽환적인 상상은 기분을 노곤하게 만든다. 노천온천에 누워 화산과 바다를 조망하거나, 아담한 온천마을을 거닐며 따뜻한 겨울 오후를 보낼 수도 있다. 전통 료칸과 맛깔스런 특산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큐슈의 고즈넉한 온천 마을은 쿠로가와 산 너머 북동쪽 오이타현에 흩어져 있다. 벳푸 인근의 온천마을 유후인은 높게 솟은 대형 온천호텔 대신 낮은 담벼락의 전통가옥에서 모락모락 수증기들이 피어나는 아늑한 곳이다. 애니메이션 속 소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거리의 상점들은 소담스럽게 열을 맞추고 예쁘게 채색돼 있다.

이곳에서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 2층집이 찻집이고 고양이와 강아지로 단장된 가게가 공예품점이다.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카페까지 어우러져 일본에서 연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로 뽑히기도 했다. 마을 한가운데 긴린코 호수는 아침이면 마을 전체를 안개로 뒤덮고는 한다.

해질 무렵이면 골목 모퉁이에서 구입한 온천 달걀로 호기심과 배를 채운뒤 앙증맞은 온천이 곁들여진 숙소에서 하룻밤을 청하면 된다. 하루를 머물며 온천, 쇼핑, 휴식, 산책 등을 두루 향유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유후인이다. 유후인 인근의 ‘물의 마을’ 야나가와는 수로가 마을 곳곳을 연결한 고장으로 수로에서 직접 잡은 장어요리 맛이 또 일품이다.

일본의 3대 미인 온천 '우레시노'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한국과 접해 있는 사가현은 미인 온천과 단정한 음식으로 명함을 내민다. 피부미용에 좋은 스베스베(매끈매끈)온천으로 알려진 우레시노 온천은 히노카미 온천, 기츠레가와 온천과 함께 일본의 3대 미인온천으로 꼽히는 곳이다.

우레시노 온천은 1,300년 역사를 지녔는데도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친근하게 다가선다. 골목 모퉁이에서 족욕을 즐긴 뒤 저녁이면 동네사람들이 모이는 낯선 선술집의 문을 두드린다. 이곳 특산물인 온천물두부를 안주 삼아 뜨끈한 일본 술 한잔을 기울이며 온천마을의 밤을 맞으면 된다. 사가현 북쪽 카라츠에서 넘어온 오징어회는 이 일대의 훌륭한 야식거리다.

사가현에서 좀더 그윽한 하룻밤을 원한다면 요요카쿠 료칸 등 이곳의 전통 료칸을 두드려볼 일이다. 이곳에서는 나무 복도와 아담한 일본 정원, 욕탕이 어우러진 전형적인 일본 료칸 체험이 가능한데 료칸 여주인인 오카미상이 내어주는 녹차 한잔은 은은한 맛과 향으로 감동을 더한다.

화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온천욕

큐슈 서부의 운젠은 지옥온천의 원조격인 고장으로 화산에 얽힌 과거와 흥미로운 온천체험이 어우러진 곳이다. 운젠은 산자락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운젠지옥으로 유명한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나무데크 길을 따라 지옥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운젠지역은 예전 후겐다케산의 화산분출로 용암이 바다까지 흘러내리는 재앙을 겪었다. 당시 피해마을을 그대로 보존한 흔적또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운젠지옥 인근에는 유황온천들이 곳곳에 형성됐는데 이 일대는 1930년대 일본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남부인 가고시마 기리시마 온천은 산으로 둘러싸인 온천지대다. 가고시마의 대표적인 활화산인 사쿠라지마 같은 활화산만 인근에 20여개다. 그 활화산을 배경삼아 계곡마다 능선마다 뽀얀 수증기가 뒤덮는다. 구리가와, 마루오 온천 등이 이곳의 대표적인 유황온천으로 마루오 온천에서는 사쿠라지마의 일몰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수 있다.

가고시마 최남단 이브스키 해변은 바다를 바라보며 천연 모래온천욕을 즐기는 명소다. 이곳 모래는 인근 화산지대 마그마의 영향으로 땅속 온도가 60∼70도까지 올라간다. 이브스키 앞바다인 긴코만 지역의 화산폭발로 해변의 수심은 깊고 안쪽 바다가 잔잔해져 모래사장에서 편안하게 찜질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바닷물은 한겨울에도 미지근해 발을 담가도 아늑한 느낌이다.

여행메모

▲가는길=인천에서 큐슈 후쿠오카, 오이타, 가고시마. 나가사키 등의 공항으로 직항편이 운항 중이다. 공항에서는 각 온천지대까지 JR열차노선도 다양하게 연결된다.

▲음식, 숙소=온천지 인근에는 건강을 테마로한 웰빙 음식들이 즐비하다. 사가현은 오징어회가 명물이며 우레시노 온천에서는 이곳 녹차로 만든 녹차죽과 온천물두부가 유명하다. 팥으로 만든 오기 양갱도 맛있다. 유후인이 있는 오이타현의 분고 소고기는 육질이 졸깃하고 담백하다. 료칸 온천 체험을 위해서는 이브츠키의 백세관이나 사가현의 요요카쿠 료칸이 품격 높다.



글ㆍ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tour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