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은 서양식으로 재구성한 한식 밥상

한식 주인공은 밥… 한정식은 ‘코스요리’ 중심

한식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상차림 음식

‘두루담아’ 장(醬)ㆍ지(漬)ㆍ초(醋) 바탕 이룬 제대로 된 밥상

‘두레’ 경상좌도 반가의 음식, 호남풍 더해져

‘석란’ 개성음식으로 서구화한 한식 맛볼 수 있어

‘석파랑’너비아니 으뜸… ‘토밤’ 남도 한식

한정식은 한식의 곁가지다. 뿌리는 같지만 성격도 외양도 전혀 다르다. 우리 밥상은 당연히 한식이다.

한정식의 역사는 짧다. 1980년대 초반, 연세대 동문회관 무렵에서 시작하였다.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의 부인 김영호씨가 문을 열었다. “반찬낭비가 심하고, 음식의 온도를 맞추기도 힘든 한상차림 한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정식’을 고안했다. 김영호씨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인 개성이다. ‘개성음식’이라지만 서울, 중부지방의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과 개성 사이 거리는 70Km 남짓이다. 한 시간이면 갈 거리다. 간이 약하고 심심하다. 그리 맵지도 짜지도 않다. 식재료 원래의 맛을 살린다.

김영호씨는 외국인들을 위한 밥상을 오랫동안 차린 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의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우리 한식을 만든 것이다. 한정식의 시작이다. 한정식은 정식(定式)이다. 정해진 순서가 있는 ‘코스(course)요리’다. 속은 한식이되 겉에는 서양식의 플레이팅을 더했다. 손이 많이 가니 가격이 올라갔고, 한정식은 고급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졌다. 주로 간단한 죽이나 샐러드의 애피타이저에 요리 몇 가지, 밥과 찌개, 몇 가지 찬을 내놓는 간단한 식사를 내고 마지막은 간단한 후식 정도로 구성한다. 서양식으로 재구성한 한식밥상이다.

한식은 명쾌하게 한상차림이다. 상을 차리는 이는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상에 올린다. 밥과 국이 중심에 자리하고, 나머지 반찬들과 밑반찬이라는 부르는 장, 지, 초가 자리한다. 여러 반찬이라 부를 요리들과 찌개와 국, 장아찌나 김치마저 한상에 놓는다. 무엇을, 어떤 순서로 먹을지는 상을 받는 이가 선택한다. 한식의 주인공은 밥이다. 한정식은 ‘코스요리’를 중심으로 운영한다.

한식과 한정식의 차이를 후식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정과(正果)와 같은 다과 종류들을 후식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과나 떡, 차나 화채와 같이 지금 우리가 후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음식들은 후식이 아니다. 궁중이나 반가의 음식이고 식사를 보조하는 후식이 아닌, 독립된 음식이다. 조선 초기부터 제사에 쓰였고, 왕실에서도 별식인 귀한 음식이었다. 민간에서도 두루두루 먹었지만 쌀로 떡을 만드는 건 불필요한 낭비라고 보았다.

곡식의 안정적인 확보는 조선 시대 내내 중요한 문제였다. 먹고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문제다. 성종 때 “지금 술을 금하는 것은 쌀을 소비하기 때문인데, 떡시루를 가지고 다니는 자는 금하지 아니하니, 떡에 곡식이 허비되는 것이 술보다 더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금하소서.” 라고 이세좌가 주청하고 왕은 “옳다”라고 답을 한다.

흔히 조선을 삼금(三禁), 금육(禁肉), 금송(禁松), 금주(禁酒)의 나라라고 부른다. 쇠고기 먹지 말고, 소나무 베지 말고, 술 마시지 마라는 뜻이다. 모두 곡식을 수확하고 아끼는데 그 초점이 있다.

병과, 정과, 음청류는 궁궐의 ‘낮것상’차림이었다.

차(茶) 역시 조선 시대에 그리 즐기지 않았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는 대궐 안에서도 차를 쓰지 아니하니” 라고 말한다. 조선 후기 정조 때의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에서도 차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다례 의식과 중국 사신을 대접할 때 정도나 썼다. 조공품목에는 여러 번 언급한다. 인삼차나 생강차와 같은 발효차는 약으로 썼다.

궁중과 민가 가릴 것 없이 한식의 유일한 후식은 ‘숭늉’이었다.

호남지역으로 가면 한정식이 혼돈스럽다. 메뉴에는 한정식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막상 받아보면 한상차림의 한식이다. 그날 그 식당에서 내놓을 수 있는 음식을 모두 내놓는다. 게다가 일정 숫자 이하의 손님은 받지 않는다. 있는 것을 안 내놓자니 마음에 안차고, 다 내놓자니 손해가 난다. 그래서 4인 이상만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한정식이 아니라 한식이다.

한식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상차림의 음식이다. 한정식은 역사가 짧지만 변화, 발전하고 있는 음식이다.

경기도 여주의 ‘두루담아’는 가게업력은 짧지만 주방의 업력과 내공은 길다. 장(醬), 지(漬), 초(醋)가 바탕을 이룬 제대로 된 밥상이다. 진귀한 식재료를 자랑하지 않고 진정성을 가지고 만드는 음식이다. 음식에 들어간 간장, 된장, 식초 등이 모두 자가 제조다. 서울 반가의 음식이 뼈대를 이룬다. 버섯전골은 별다른 육수 없이 버섯 맛을 제대로 살렸다.

인사동의 ‘두레’는 밀양에서 서울로 이전한 집이다. 경상좌도 반가의 음식을 내놓는다. 주인의 어머니가 밀양에서 오랫동안 음식점을 운영했다. 인사동 ‘두레’도 30년을 넘겼다. 최근에는 간이 강해지고 호남풍이 더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절제를 키워드로 하는 경상좌도의 음식이다.

김영호씨의 친척이 운영하는 ‘석란’도 가볼만 하다. 개성음식으로 서구화한 한식을 볼 수 있다. 연대동문회관 인근을 한정식 골목으로 이끈 집이다.

‘석파랑’도 손에 꼽을 만하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건물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음식 중에서는 너비아니를 눈여겨 볼만하다.

서울 서초동의 ‘토담’은 서울식으로 깔끔하게 정리한 남도한식을 내놓는다. 나주 출신의 여주인이 이끄는 집으로 남도한식의 정체성이 분명하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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