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미식 칼럼’써, 강릉과 음식 관계 기록도

허균 부친 호 ‘초당’, 초당두부와 인연

‘원조초당순두부’초당두부 가장 먼저 널리 알려

‘권오복옛날분틀메밀국수’ 국산 메밀 100% 국수

‘기사문’생선 전문점, 방풍나물 요리도 선봬

교산 허균(1569∼1618년)을 두고 흔히 “미식가와 탐식가 사이, 어디쯤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미식가는 음식 맛을 정확하게 아는 이를 뜻한다.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그 음식의 재료와 양념의 내용들을 알고 그게 어떤 맛으로 작용하는지 아는 이를 뜻한다. 미식가는 ‘음식을 아는 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다만, 우리 시대의 미식가는 까다로운 음식 재료를 찾는 이도 포함한다. 이른바 호사가들이다. 외국 혹은 오지에서 먹어본 특이한 음식, 식재료를 자랑한다. 미식가는 입이 짧다, 혹은 음식 선택이 까다롭다는 평을 듣기 십상이다. 탐식가는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다. 진귀한 재료를 찾고, 많은 양을 구한다. 탐식가는 음식을 욕망하는 이다. 먹지도 못할 정도의 양을 요구하고 구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식재료, 음식을 보면 가격을 따지지 않고 구한다. 이런 행동으로 때로는 천박하게 보인다.

허균은 미식가도 탐식가도 아니었다. 웬만한 미식가의 범위를 넘어서는 미각을 가졌으나 음식을 탐하지는 않았다. 미식가들도 흔히 진귀한 재료를 구하나 허균은 음식 재료에 대해서 욕심을 부렸으나 진귀한 것을 찾아 떠돌지는 않았다. 좋은 식재료도 이야기하지만 흔하게 만나는 식재료들이 대부분이었다. 16∼17세기 사이에 ‘미식 칼럼’을 쓴 이는 동서에 모두 드물다. 그는 자신의 문집 <성소부부고_도문대작>에서 우리나라 전역의 음식을 하나씩 평한다. 다 맛봤고 기억한다는 뜻이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을 기술한 곳은 유배지 전북 함열이었다. 식재료도 귀하고 더구나 귀양 온 처지다. 좋은 음식을 맛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저 평생 맛봤던 음식들을 기술했다.

‘도문대작’의 첫머리에 나오는 음식은 엉뚱하게도 외가 강릉의 방풍죽이다. 나물은 제사 등에도 사용했던 식재료다. 귀하거나 구하기 힘든 식재료는 아니다. 오히려 나물은 구황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식재료다. 곡물의 양을 늘리기 위하여 더불어 솥에 넣고 요리하는 식재료다. 나물은 평민들이 즐겨 찾았던 평범 혹은 그 이하의 식재료다. 자신의 음식 칼럼을 적은 책의 첫머리에 방풍죽을 이야기한 것은 놀랍다.

“우리는 나물을 먹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말은 엉터리다. 16∼17세기 곡물 사정은 어디나 좋지 않았다. 우리만 어려웠던 것도 아니다. 유럽도 소빙하기를 지나면서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 중국도 어려웠다. 조선은 막 임진왜란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경제사정은 어디나 어려웠고 조선은 오히려 다른 나라에 비해 나았다.

강릉은 허균의 외가다. 아버지 허엽이 처가인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허균은 강릉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허균의 호(號) ‘교산(蛟山)’은 사천진 해안가의 작은 산 이름이다. 강릉은 허균에게 외가이지만 마치 고향 같은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허균의 ‘도문대작’에서 들먹인 음식과 강릉의 관계다. 높은 벼슬을 가졌던 허균이 ‘도문대작’에서 처음 이야기한 음식은 외가 강릉의 방풍죽이다. 방풍나물은 거제도와 제주도 등에서 이미 유명했다. 외지 관광객들은 신기한 나물로 생각했지만 남해안 바닷가나 제주도 일대의 지역 주민들은 잘 알고 있었던 나물이다. 강릉의 방풍나물, 방풍죽은 허균을 통하여 널리 알려졌다. 강릉의 방풍죽을 처음 내세운 것은 허균의 외가,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이 강릉이어서인지 혹은 진실로 강릉 방풍죽이 뛰어난 맛을 지녀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맛있는 방풍나물은 기온이 차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자란 것이다. 거제, 제주 일대보다는 위도 상 높은 곳인 강릉의 방풍나물이 맛있다는 가설은 진실일 수 있다. 바람의 세기야 제주, 거제, 강릉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야생과 재배 방풍의 맛은 전혀 다르다. 허균이 먹었던 방풍을 찾는다면 자연산 방풍으로 만든 음식을 먹어볼 일이다.

허균의 도문대작에 나오는 음식 중, 재미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것은 두부다. 허균의 아버지 허엽의 호는 초당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초당두부와 같은 이름이다. 아버지가 초당 마을 두부와 연관이 있어서 호를 초당으로 정했는지 아니면 호가 먼저이고 초당두부라는 이름이 나중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허엽의 호 초당과 초당두부는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허균은 두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한양) 창의문 밖의 두부가 매끄럽고 맛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초당두부는 지금도 수준급의 두부를 내놓고 있다. 당시도 좋은 두부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만든 고향 강릉의 수준급 두부’를 두고 한양 창의문 밖의 두부를 이야기한 허균의 속내를 알기는 힘들다.

겨울철, 강릉에 갔을 때 들를 만한 곳을 몇 곳 소개한다. 초당두부를 가장 먼저 널리 알린 집은 ‘원조초당순두부’다. 초당마을의 노포다. 국산 콩으로, 제대로 만든 두부를 만나고 싶다면 양양의 ‘송월메밀국수’를 추천한다. 겨울철은 콩 수확 후 두어 달이 지난 시점이다. 늦가을 수확한 콩이 숙성, 건조되어 제 맛이 난다. 겨울철 두부가 맛있는 이유다.

겨울철에 맛있는 막국수, 메밀국수를 맛보고 싶다면 강릉의 ‘권오복옛날분틀메밀국수’를 권한다. 예전에 막국수, 메밀국수를 내리던 기계가 ‘분틀’이다. 분틀을 사용하는 메밀국수 집이라는 뜻이다. 국산 메밀 100% 국수를 만날 수 있다.

방풍나물, 방풍죽은 강릉 교동의 ‘기사문’을 권한다. 허균이 음력 2월에 방풍죽을 먹었다니 대략 양력 3월경이다. 재배하는 방풍은 조금 이르기도 하다. ‘기사문’은 생선전문점이다. 겨울철 생선은 맛있다. 더하여 방풍죽, 나물을 만난다면 더 좋겠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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