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걸러서 바로 마시는’우리술

막걸리 마니아들이 손꼽는 ‘송명섭막걸리’

‘이건희 회장의 건배주’로 알려진 ‘자희향’

‘이상헌19’‘문희’‘봇뜰17’ 독특한 맛과 이력

‘세발자전거’ ‘우리 술’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공간

‘무명’제대로 된 우리술, ‘가성비’ 수준급의 안주

‘다모토리’‘셀렉팅 코스’, 막걸리 초보자, 공부하는 이들에 적격

‘수불’ 양식코스 음식들과 우리 술이 잘 어울리는 공간

막걸리의 비밀은 ‘막걸리’라는 이름에 숨어 있다. 흔히 막걸리를 ‘우리 민족고유의 술’이라고 표현한다. ‘고유’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막걸리는 제조 과정에서 다른 술과는 차이점이 있다. 대부분의 술은 발효과정을 거친 후, 일정 기간 숙성과정을 거친다. 술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증류주의 경우 발효주를 증류해 만든다.

수제 맥주, 한국과 일본의 청주, 탁주 등은 모두 발효, 숙성시킨 것들이다.

와인도 발효 후, 상당기간 숙성을 한다. 와인의 빈티지를 따지는 것은 바로 와인을 만든 해의 포도 품질과 숙성과정의 기후 등 여러 조건을 따지기 때문이다.

위스키, 꼬냑 혹은 브랜디, 한국의 증류소주, 중국의 백주(고량주), 일본의 고구마소주 등은 증류주다. 위스키는 귀리, 보리를, 꼬냑과 브랜디는 포도를, 중국 고량주는 수수를, 일본 고구마소주는 고구마를, 한국 소주는 쌀, 혹은 찹쌀을 발효, 숙성한 다음, 증류과정을 거친 것들이다. 종류는 다르지만 모두 과일이나 곡물로 만든다.

굳이 막걸리와 비교할 수 있는 술은 프랑스의 포도주인 ‘보졸레누보(Beaujolais Nouveau)’다. 프랑스 부르고뉴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포도주로, 매년 9월에 수확, 11월에 공개하는 와인이다. 숙성기간은 상당히 짧다. 발효만 거친 후 바로 출시하는 ‘겉절이 와인’이다.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아 맛은 거칠지만 “그해 생산된 포도의 품질을 알아볼 수 있다”는 스토리텔링으로 일본에서 호평을 얻었다. 거품경제 시절, 일본인들이 비행기로 보졸레누보 와인을 운반 시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때 반짝했던 한국의 보졸레누보 열풍은 일본을 본받은 것이다. 물론 수준급의 와인은 아니다. 속성 ‘겉절이’다.

막걸리는 쌀 혹은 찹쌀로 만든다. 와인은 포도를 재료로 사용한다. 더하여 막걸리는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 포도를 발효, 숙성시킨 와인 혹은 ‘겉절이 와인’인 보졸레누보와 다르다. 막걸리는 쌀(혹은 찹쌀)을 독에 넣고 발효, 숙성 시킨 후 ‘막 걸러서 바로 마시는’ 술이다. ‘막걸리의 비밀’은 ‘막 걸러서 바로 마시는’이라는 이름에 숨어 있다. 쌀을 발효시키는데 필요한 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 와인과 다르다. 와인은 포도만으로 발효시키거나 포도에 적합한 대량생산 효모를 사용한다. 깊게는 이 효모의 종류까지 따진다. 막걸리는 누룩을 사용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완성, ‘막 걸러서 바로 마시기’가 가능하다.

올해부터 막걸리 자가제조가 전면적으로 시작된다. 외식업체(식당)에서는 자체 막걸리를 제조, 판매할 수 있다. 생산 설비 등 일정 기준을 갖추어야 막걸리를 만들 수 있던 규정이 완화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러 가게 특유의, 특색 있는 막걸리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일명 ‘하우스 막걸리’의 시대다.

막걸리 마니아들이 손꼽는 ‘잘 만든 막걸리’의 첫 번째는 ‘송명섭막걸리’다. 전북 정읍 ‘태인양조장’에서 송명섭 장인이 만든다. 막걸리 제조에 필요한 곡물을 직접 관리하고 누룩도 직접 제조한다. ‘태인양조장’의 시그니처 메뉴는 ‘송명섭막걸리’가 아니라 죽력고(竹瀝膏)다. 대나무의 진액이 포함된 증류주다. 조선말기,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명주’라는 이름도 얻었다. 죽력고 역시 1차 발효, 숙성시킨 ‘밑술’을 증류시킨 증류주다. 이 밑술을 희석하여 내놓는 것이 바로 ‘송명섭막걸리’다. 주도는 6∼8도. ‘막걸리의 기준’이 되는 술이다.

최근에는 많은 청주, 탁주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건배주’로 이름을 얻은 ‘자희향(전남 함평)’을 비롯해 수제 청주 ‘이상헌 19’, 경북 문경의 ‘문경주조’에서 내놓는 ‘문희’ 경기도 남양주의 ‘봇뜰17’ 등이 권할 만한 탁주, 청주들이다.

술꾼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이상헌19’는 경북 안동 지방의 반가에서 전래된 기법을 잘 활용한다. 맑은 맛의 ‘19도 청주’로 유명해졌다. ‘문희’는 찹쌀, 누룩만을 사용하는 12∼13도의 청주와 탁주, 16∼17도의 청주 등을 선보인다. ‘봇뜰17’은 자체 제조 누룩을 사용하는 독특한 술. 이른바 ‘바디 감’이 강하다.

이런 술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소개한다.

‘우리 술’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은 합정동의 ‘세발자전거’. 최근 술안주, 식사를 제대로 내놓는 주방 시스템을 갖췄다. 한정식의 코스요리 같은 술안주 코스를 개발, 우리 술과 조화를 이루는 요리를 내놓고 있다. 인터넷에서 ‘허수자’로 유명한 주인이 우리 술과 어울리는 안주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접근하고 있다.

홍대 부근 상수동의 ‘무명’은 외진 곳, 2층에 자리하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우리 술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주인의 우리 술에 대한 신념도 각별하고 이른바 ‘가성비’ 수준급의 안주도 만날 수 있다. 새벽 2시까지 문을 연다.

이태원 해방촌의 ‘다모토리’에는 ‘셀렉팅 코스’가 있다. 막걸리를 처음 접하는 이들이나 막걸리 ‘공부’를 하는 이들은 반드시 들러볼 집. 막걸리 5잔을 한 세트로 내놓는다. 각각 다른 막걸리의 맛을 동시에 비교해보고 자신만의 막걸리를 찾을 수 있다. 인근에 거주하는 주한 외국인 단골이 많다.

광화문의 ‘수불’은 양식코스 음식들과 우리 술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샐러드, 육류 등의 안주는 이탈리아식이다. 술은 막걸리, 청주, 탁주 등 우리 술이다. 인근의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다. ‘문경주조’의 ‘문희’와 ‘오미자막걸리’ 등도 만날 수 있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캡션

‘다모토리’ 셀렉팅 코스

‘세발자전거’ 우리술 최고의 공간

‘무명’우리술과 수준급 안주

‘수불’ 양식코스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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