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아우슈비츠는 깊게 웅크린 땅이다. 옛 수도 크라쿠프 인근의 상처 가득한 유산은 유태인 강제수용소로 세간에 알려진 곳이다, 애잔하고 깊은 사연만큼이나 철조망 너머 드리워진 음영은 투박하다.

아우슈비츠의 초입 전경은 동유럽 시골마을의 한 단상을 떠올리게 한다. 수용소 사이로 높게 솟은 나무들의 정취도 언뜻 보면 수수하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식 명칭이고, 폴란드 사람들은 이곳을 오슈비엥침으로 부른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제1수용소와 그곳에서 3㎞가량 떨어져 있는 제2수용소로 나뉘어 있다. 고즈넉한 이 일대에는 수백만 유태인들이 목숨과 눈물이 담겨 있다. 슬픈 과거가 담긴 아우슈비츠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땅

아우슈비츠를 추억하면 9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한 편의 흑백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유태인 학살의 내용을 그린 ‘쉰들러 리스트’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였다는 것도 화제였고, 아카데미 7개 부문을 휩쓴 것도 오랫동안 회자됐다. 영화 전반은 크라쿠프의 유태인 거주지였던 크라코브스카 거리가 배경이었고 마우폴스키에의 아우슈비츠는 영화 후반부를 채색했다.

쉰들러 리스트 외에도 아우슈비츠는 다양한 장르의 아픈 소재가 됐다. 영화 ‘피아니스트’, 소설 ‘안네의 일기’. 만화 ‘쥐’ 등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그려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유태인 수용시설을 활용해 만든 박물관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다. 정문을 통과해 200m를 이동하면 제1수용소 입구가 나온다. ‘일하면 자유롭게 된다(ARBEIT MACHT FREI)’는 기만적인 독일어 문구도 그대로 붙어 있다. 문을 들어서면 고압전류 철조망과 어두운 해골 이정표가 드러나는 음울한 구조다.

수백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을 둘러보면 수많은 유태인과 정치범들이 학대와 굶주림 속에서 강제노동을 하다 생을 마감한 모습을 엿 볼 수 있다. 당시 학살당한 유태인들의 안경, 신발, 사진 등이 헝클어진 채 전시돼 있으며 머리카락, 칫솔, 아기 우윳병 등이 남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가스실, 수용소 등 전쟁의 흔적

수용소 남쪽 끝은 유태인들이 가스실로 이동하는 모습이 담겼던 장소다. 지하에 건설한 가스실과 시체 소각장은 인간의 잔악성에 대한 좌절을 느끼게 만든다. 곳곳에는 숨을 거둔 유태인을 추모하기 위한 꽃송이만이 아련하게 쌓여 있다.

제2수용소인 브제진카 수용소는 2차 대전 당시에는 300동의 막사가 있었다고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굴뚝과 막사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벽돌이 뒹구는 황량한 풍경이다. 폴란드 정부는 자국 청소년들에게 아우슈비츠를 의무적으로 방문토록 해 슬픈 역사를 곱씹고 있다. 현장에 서면, 그 슬픔을 공유하는 데는 민족과 나라의 구별은 따로 없다.

아우슈비츠는 크라쿠프 일대의 또 다른 세계유산인 소금광산 비엘리츠카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비엘리츠카의 어둠은 아우슈비츠와는 다르다. 지하 광산이 얼마나 아름답게 변신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비엘리츠카 동굴의 길이는 총 300km나 되고 역사도 700년이 넘어선다. 한때 폴란드 왕궁 전체 수입의 30%가 이 소금광산에서 나왔다는데 광산 노동자들은 지하에서 오랜 세월 일하고 묵으며 암염으로 조각된 예술품들을 만들어 냈다. 소금광산에만 3000여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20여개의 독특한 방들이 일반에 공개중이다. 복잡다단한 폴란드의 역사는 이렇듯 서로 다른 반전의 의미를 지닌 채 크라쿠프 일대에서 숨쉬고 있다.

글ㆍ사진=서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메모

▲가는길=아우슈비츠 여행의 거점 도시인 크라쿠프까지 한국에서 직항편은 없다. 체코 프라하나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차로 크라쿠프로 가는 루트가 일반적이다. 아우슈비츠행 버스는 크라쿠프 중앙역 뒤편 시외버스 정거장에서 1시간 단위로 출발한다.

▲음식=폴란드에서는 현지인들이 즐겨찾는 ‘밀크바’에 들려본다. 이곳에서 주민들에게 우유를 배급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국가의 보조를 받기 때문에 음식값이 저렴하다. 대표적인 음식은 ‘비고스’로 그릇 모양의 딱딱한 빵 안에 고기와 양배추 절임이 들어 있다.

▲기타정보=크라쿠프 일대는 5월초까지 추운편이다. 이곳 트램, 버스에서는 수시로 티켓검사를 하니 반드시 개찰구에 티켓을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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