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는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라는 두 걸출한 유세객으로부터 그 종말을 맞는다. 소진과 장의는 둘 다 귀곡자(鬼谷子)라는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소진이 먼저 벼슬길에 올라 전국시대 가장 강성했던 서북부의 진(秦)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전국 7웅 중 나머지 6개 나라가 서로 연합해서 견제하는 합종책(合縱策)을 내세우며 6개국 합종 의장이 된다. 그 당시 변변찮았던 장의를 소진이 진(秦)나라 재상이 되도록 남몰래 뒤를 돕는다. 장의가 이 사실을 알고 소진이 죽기 전에는 절대로 합종책을 방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소진이 자객에게 피살당하자 진(秦)나라와 나머지 6개국이 연횡(連橫)하면서 한 나라씩 깨부수고 결국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 하는데 초석을 세운다. 굴원(屈原)은 초나라 재상으로 장의가 초나라와 제나라를 이간질시켜 진나라에 이롭도록 하는 것을 보고 제나라와 초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자고 왕에게 말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왕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자 장편 서정시인 ‘이소(離騷)’를 써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이소는 ‘근심을 만난다’는 뜻이며 이 시(詩)는 아직까지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후 굴원은 동정호(洞庭湖) 남쪽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졌다. 뒷날, 굴원이 투신한 음력 5월 5일에는 한을 품고 죽은 굴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가 열리게 되는 데 이것이 단오의 유래다. 음양으로 보면 짝수는 짝을 이뤄서 안정적이라 변화가 없으므로 음(陰)으로 분류 되지만 홀수는 짝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를 더 얻거나 하나를 버려야 하므로 역동적이 되어 움직여야 하므로 양(陽)이 된다. 양수인 3, 5, 7, 9가 겹치는 날은 모두 양이 중복된다고 해서 중양절(重陽節)이지만 9월 9일을 특히 지칭한다. 하지만 단오는 5라는 양(陽)이 두 번 겹치므로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단오는 모내기가 끝나고 비가 많이 오는 계절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풍년을 기원하는 동시에 장마 때의 습병(濕病)이나 액을 예방하기 위해서 몸을 정갈히 하면서 생긴 풍습인 것 같다. 그런 의식 중에 하나가 창포(菖蒲)에 머리를 감는 의식인데 이를 ‘단오비음(端午庇蔭)’이라고 했다. 창포 삶은 물로 머리도 감고 얼굴도 씻고, 창포뿌리를 깎아 붉은 물을 들인 비녀를 머리에 꽂아 나쁜 귀신의 접근을 막는다는 뜻이다. 창포(菖蒲)는 한방정신과 한약이라 일정부분 이런 이론적인 근거를 뒷받침해준다. 창포는 석창포(石菖蒲)라는 한약재를 줄여서 부른 말이다. 석창포는 개규약(開竅藥)이다. 한마디로 집나간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약이란 뜻이다.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맵고 쓰다.(溫辛苦) 맵고 따뜻하면서 방향성이 있는 관계로 구멍이나 혈맥을 막고 있던 가래같이 걸죽하고 탁한 습탁(濕濁)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배?하는 능력이 있다. 이를 할담개규(豁痰開竅)라 한다. 꽉 막힌 혈맥이나 칠규(七竅)를 뚫어줘서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다는 뜻이다. 위장은 습기를 좋아하고 건조한 것을 싫어한다고 앞에서 말한 적이 있다. 청양한 습기가 아니라 습탁(濕濁)이라면 위장도 역시 싫어하므로 석창포의 기운을 빌려 이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이를 화습개위(化濕開胃)라 한다. 위장의 습탁을 제거해서 위장을 정신 차리게 해서 소화가 잘 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맑고 서늘한 기운을 칠규에 공급하면서 정신이 들게 하고 더욱 지혜롭게 한다. 동의보감 건망(健忘)편에 보면 건망증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총명탕(聰明湯)이 나오는데 장기간 복용하면 하루에 천 마디 말을 외울 수가 있다고 나와 있다. 처방을 구성하는 한약재는 3개 밖에 안 된다. 원지(遠志)와 백복신(白茯神)과 석창포(石菖蒲)다. 물론 한의원에서 수험생들에게 쓰는 한약인 총명탕은 이 세 가지 외에 체질에 맞게 기력을 보(補)하거나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한약재가 더 들어가서 구성된다. 머리가 맑지 못하고 치매가 있을 때 사용할 수 있지만 마른사람은 3-5푼 정도 소량 사용해야한다. 석창포와 항상 따라다니는 원지(遠志)는 그런 제약이 없다. 대개 아이들 총명탕은 쌍화탕이나 자음건비탕, 어지러우면 반하백출천마탕에 원지, 석창포, 백복신을 추가로 가미해서 쓴다.

하늘꽃한의원 원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