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열차를 타는 순간 중세로 떠나는 보헤미아 여행은 시작된다. 변해 가는 동유럽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 고풍스럽고 아득한 중세 마을의 호흡이 그립다.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는 체코 체스키크루믈로브는 ‘원초적’ 동유럽의 향수를 간직한 땅이다.

두 칸짜리 붉은 색 열차를 타고 들어서면서부터 설렘은 시작된다. 보헤미안들의 사연이 서려 있는 중세마을로 향하는 기찻길에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가득하다. 체스키 크루믈로브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와 프라하 사이에 위치한 소도시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던 체스키 부데요비체에서 간이 열차로 다시 갈아타야 한다.

블타바 강변,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간이 열차가 닿는 체스키크루믈로브는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아담한 마을이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체스키 크루믈로브 성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은 엽서 속 그림을 재현한 듯하다. 붉은 색 지붕이 수놓은 오래된 마을을 블타바 강이 휘감고 흐른다.

1992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도시는 300년 동안 변화 없이 중세마을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그 유구하고 사연 가득한 정취 때문에 주말이면 사람들이 고풍스런 휴식을 위해 찾아 든다. 마을의 절반은 유적과 상점이고 나머지 절반은 펜션과 오래된 레스토랑으로 채워진다.

체스키크루믈로브에서는 온종일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녀야 한다. 마을로 들어서면서부터 길바닥을 채운 둔탁한 돌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관문인 부데요비츠카 문을 지나면 작은 상가들과 진열대들이 늘어서 있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작은 책방과 골동품 상점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한적하게 블타바강에서 래프팅을 즐기며 중세의 유적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연중 공연이 열리는 축제의 마을

체스키 크루믈로브의의 상징은 체스키 크루믈로브성이다. 체코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 성은 르네상스 스타일의 방, 바로크 스타일의 홀 등 귀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계 300대 건축물의 반열에 올랐으며 4개의 정원과 40여개의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1257년에 세워진 흐라데크 탑으로 꼭대기에 오르면 구시가를 ‘S’자로 감싸고 흐르는 블타바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인상파 화가인 에곤 쉴레의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고 체코 인형극의 인형들을 보관한 마리오네트 박물관에서 이곳만의 정취를 즐겨도 좋다.

주말에는 흥겨운 공연들이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에서 열린다. 13세기 형성돼 마을의 중심이 된 광장에는 옛 보헤미안 복장을 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즉석 무대에서 노래와 춤이 펼쳐지며 광장시장에서는 빵과 음료와 조각상들이 팔린다.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한꺼번에 만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은 강변펜션에 숙소를 마련하고 중세의 호사스런 주말을 보내게 된다. 취할 정도로 맥주를 마셔도 값이 비싸지 않고 쓸 만한 펜션에 묵어도 다른 대도시 호텔의 절반 정도 가격이다. 프라하가 우울하도록 값 비싸고 위압적이었다면 프라하에서 버스로 3시간 떨어진 이 마을의 분위기는 저렴하고 포근하다. 뿌연 불빛 스며드는 바에 들어서면 밤이 이슥하도록 중세도시의 투박하고도 쾌활한 선율이 귓가에서 멈추지 않는다.

글ㆍ사진=서 진(여행칼럼니스트)

여행팁

▲가는길=체코 프라하를 경유하는게 일반적이다. 인천~프라하 구간은 대한항공 등이 직항편을 운항중이다. 체코 입국때 별도의 비자는 필요 없다.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루믈로브까지는 열차나 버스로 3시간 소요된다.

▲음식=체코사람들은 맥주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필스너 우르켈 외에도 버드와이저의 원조인 부드와이저의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스보르노스티 중앙광장 주변으로 식당들이 밀집돼 있다. 강변 레스토랑들도 운치를 더한다.

▲숙소=체스키 크루믈로브는 마을 규모와 달리 펜션 등 숙소가 꽤 많은 편이다. 주말에는 예약이 필수. 중앙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 짐을 맡길 수 있으며 숙소도 알선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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